노무현 정권 후반부에 들어선 올 여름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되기는커녕 칼날을 더욱 번득이며 인권을 짓밟고 사상의 자유를 유린하고 있다.

동국대 강정구 교수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강의권을 빼앗기고 현대판 분서갱유인 사상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7·31 교육위원 선거를 앞두고 토론 자료를 문제 삼은 극우·보수 세력은 전교조를 향해 "적교조", "북한 찬양 해방구" 등으로 색깔 공세를 퍼붓고 전교조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을 요구했다.

지난 6월에는 최장기(8년) 수배자인 김기진 범청학련남측본부 의장을 체포하기 위해 대낮에 추격전을 벌였다. 지난 7월에는 민주노동당 이주희 학생위원장이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기소됐으며 지난 8월에는 서울시경이 한국민권연구소 최희정 연구위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모두 악명 높은 7조를 적용했다.

노무현 정권이 '참여정부'를 표방하면서 마치 민주주의가 꽃피는 새 세상을 열기나 할 것처럼 연출은 잘도 했지만 그 결과는 공허함을 넘어 참담했다. 노무현 정권은 지난 3년 반 동안 1백24명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했다. 노무현 정권의 '참여민주'가 수사에 불과한 이유다. 민주주의의 꽃인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과 민주주의·인권·참여는 절대 양립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2년 전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자고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권의 철학 부재와 무능으로 국가보안법을 손질하는 것이 부담이 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자신들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문제를 회피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의 의중을 가장 잘 대변한다는 유시민 의원은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하기 위해서 국가보안법 문제를 2∼3년 미뤄 둘 수 있다는 입장을 아주 도발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했다.

사실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이 내놓은 국가보안법 폐지안은 형법에 이적단체·반국가단체 개념을 변형된 형태로 흡수하는 또 다른 대체입법안일 뿐이다. 그러나 국회 과반수 의석을 장악하고 있었는데도 노무현 세력은 이마저도 해낼 의지도 힘도 없었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은 을지훈련 첫날인 지난 달 17일 국정원을 방문해 제2의 국가보안법이 될 테러방지법 입법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표방하기까지 했다.

박물관

국가보안법의 역사는 참으로 길다. 일제가 조선을 삼킬 때 맨 먼저 만든 법률이 보안법과 신문지법이다. 그 때가 1907년이다. 사람의 생각과 말을 통제하기 위한 행동부터 시작한 것이다.

1920년대에 들어오면서 대중적인 힘을 얻어 가던 사회주의 운동과 국내외 독립운동을 막아보려고, 일제는 치안유지법을 만들었다. 국가보안법의 모태가 된 법이다. 일제 패망 이후 일본에서는 치안유지법이 폐지됐으나 남한에서는 국가보안법 이름으로 부활했다.

1948년 국가보안법이 제정된다. 조선에 스스로 점령군이라고 선언하고 들어온 미군과 친일 부역자들, 남한 자본은 국가보안법 제정을 통해 자신에 적대적이거나 비판적인 세력, 곧 사회주의 세력과 중도파 세력의 기반을 송두리째 파괴했다. 법 제정 다음 해에만 1백32개 정당과 사회단체가 해산당하고 11만여 명이 투옥되게 된다. 조병옥을 포함한 초기 남한 경찰 구성의 80퍼센트를 차지한 일제에 부역한 경찰 집단이 이에 앞장을 선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국가보안법은 이승만 독재정권과 군사정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김영삼·김대중 정권 10년 동안 무려 3천47명이나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 '찬양·고무'의 7조를 적용한 비율이 90.6퍼센트에 이른다.

세상이 변혁되지 않는 한 국가보안법은 이름은 바뀔지 모르지만 내용은 존속하게 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계급 지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사망하는 날은 계급 지배를 끝내는 날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끈질기게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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