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지성 부르디외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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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지성 부르디외를 추모하며
앨릭스 캘리니코스*
지난 1월 23일 프랑스의 탁월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부르디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스트구조주의의 거장 철학자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끄 데리다 등과 같은 세대다. 그는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데리다와 함께 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로서 쓴 책에서 그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구조주의·포스트구조주의 사이의 대립 ― 그는 이것을 쓸데없는 대립이라고 여겼다 ― 을 뛰어넘으려 했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는 개별 주체를 세계의 주인으로 보는 반면, 구조주의나 포스트구조주의는 그런 주체를 비인격적인 구조와 과정의 산물로 여긴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라는 유명한 개념을 통해 이런 대립을 피하려고 했다. 그는 사회 구조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사람들의 몸에 배어 일상 생활에서 행위나 지각 양식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의 많은 저작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구별짓기》
부르디외는 과학이 세계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상대주의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는 스스로를 19세기 말 에밀 뒤르캥의 저작에서 유래한 프랑스 사회학 전통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학적 객관성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도 알고 있었다. 《파스칼적 명상》
생애 말년에 이런 역할을 향해 한발 나아간 사람이 바로 부르디외 자신이다. 1970년대 말에는 프랑스의 소위 ‘신철학자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스탈린주의와 등치시킴으로써 마르크스주의를 지적인 세계의 주변부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1989년 이후에는 신자유주의가 아닌 대안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1995년 11월과 12월의 공공부문 대파업에서 저항은 폭발했다. 그리고 부르디외는 그런 파업을 열정적으로 옹호했다. 그의 초기 저작들에는 피억압자에 대한 공감이 저변에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부르디외는 1995년 12월에 파리 북부역 앞에서 파업 중인 철도 노동자들에게 “문명의 파괴에 맞서서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업자나 난민 들이 직접 행동에 들어갔을 때도 그들을 지지했다. 부르디외는 가까운 협력자들과 함께 그가 ‘연구자 활동가들’의 조직이라고 부른 ‘레종 다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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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릭스 캘리니코스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이며 반자본주의 연설가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