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에 열린 '한미FTA 저지 범국본'전략 토론회에서 이해영 교수는 3차 협상을 이렇게 평가했다.

"본격적인 주고받기 게임이 될 것이라던 3차 본협상이 맥없이 끝났다. … 이나마 강력한 반대 진영과 여론이 없었다면 거의 가능하지 않았을런지 모른다."

이해영 교수가 한미FTA 협상 전망에서 반대 운동과 여론을 주요 변수로 주목한 것은 옳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은 "정부가 한미FTA를 이대로 강행하면 6월항쟁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말은 FTA 반대 정서가 얼마나 큰지를 힐끗 보여 준다.

반대 운동과 여론이 만만치 않자 일부 정치인들은 운동을 대미 협상력 제고에 이용하고 싶어한다. 김근태는 "지금의 한미FTA 반대 운동이 한국의 협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했고, 손학규도 "농민들의 반대 운동이 반드시 협상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 나라의 협상력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때 민주화 운동에 참가했던 이들은 음흉한 책략을 부리고 있다. 약삭빠르게 FTA 반대 운동에 한 다리를 걸치는 한편, 운동을 협상 압력 수단으로 제한하고 싶어한다.

한미FTA 반대 운동이 커다란 반신자유주의 결집을 이뤄내고 있지만 FTA를 침몰시키기 위해서는 더한층 거대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한미FTA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핵심인 데다, 한국 자본주의에는 신자유주의적 개방 말고는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여기는 노무현 정부가 엔간한 반대에는 물러서지 않을 태세이기 때문이다.

물론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 말고도 '자발적'자유화 ― 민간 기업에게 가스 도입권 허용 등 ― 를 통해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미FTA는 노무현 정부가 명운을 건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3차 협상 직후 미국을 방문한 노무현이 미국 재계 인사들에게 "한미FTA에 대한 한국 정부의 추진 의지는 확고하다"고 거듭 확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므로 우리도 반신자유주의 결집의 계기인 한미FTA 반대 운동으로 최대한 집결할 필요가 있다. 이 운동의 팽창 속도와 규모에 따라 정부의 이러저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도전할 수 있는 우리의 힘도 그만큼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운동의 폭 넓히기

지금 열우당 내부에서조차 노무현의 한미FTA 추진에 질겁하는 의원들이 생겨났다. 이들이 정부 정책을 공공연하게 반대하고 운동에 새로운 목소리를 보태는 것은 환영할 만한 사태 전개다. 이것은 광범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운동을 더한층 대중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 되면 노무현의 정책을 중단시킬 만큼 충분한 압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전진', '노동자의힘', '사회진보연대', '평통사'등 일부 좌파들이 제기하는 "노무현 퇴진, 열우당 해체" 요구는 바로 이런 과정에서 발전시켜야 할 과제이지, 운동에 참가하기 위한 선결조건이 돼서는 곤란하다. 불필요하게 쟁점을 확대하거나 다른 쟁점들로 돌리는 시도는 오히려 운동에 분란만 일으킬 뿐이다.

물론 이 단체들이 초기부터 투쟁했고 애착을 갖고 운동을 건설한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한때 우리 운동을 반대했거나 우리의 목표를 의심했지만 이제 FTA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새로운 지지자들을 되도록 광범하게 운동의 대열 안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매우 분명하게 제한된 쟁점들 ― 한미FTA 반대 ― 주위로 다양한 정치 경향의 사람들을 불러모아 운동을 되도록 광범하게 건설함으로써 FTA를 추진하는 노무현을 가련한 소수파로 만들 수 있을 때 "노무현 퇴진"이 정서를 넘어 구체적 요구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이 한미FTA 저지 운동에 헌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운동에 긍정적 구실을 할 것이다. FTA 저지 운동 건설을 통해 지방선거 후 침체해 있는 당 분위기를 "혁신"하겠다는 것도 좋은 징조다.(민주노동당이 노무현 정부의 정책 중 FTA 반대에만 주력하고 미국의 대테러 전쟁 지원과 이라크 파병 ― 열우당 대변인 우상호가 "정치인으로서 가장 괴로"웠고 "두고두고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실토한 ― 은 소홀히 여긴다면 노무현의 전쟁 정책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을 제대로 당으로 끌어당길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의 국민투표 제안은 시기상 부적절하다. 다른 단체들과 조율 없이 당이 언론에 발표하는 바람에 운동에 혼선을 빚은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자칫 운동에 자율주의적 조직 방식 ― 힘을 집중하기보다 단체들마다 선호하는 것을 알아서 하기 ― 을 조장할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한미FTA를 폭로하고 반대 운동 건설에 주력해야 하는 시점에서 국민투표 여부 서명 운동을 하는 것은 의도와 무관하게 전선을 교란시킬 위험이 있다.

민주노동당이 국민투표 전술을 거둬들이는 것이 운동의 협력과 힘의 집중을 위하는 일이다.

한미FTA와 안보 맞바꾸기?

한미FTA 반대 운동에는 한미FTA가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를 원하는 노무현의 선물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분석의 오류는 잘못된 예측으로 이어졌다. 이를테면, 한미정상회담과 시기적으로 겹쳐 있는 한미FTA 3차 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경제(한미FTA)를 내주고 안보(미국의 대북 정책 변경)를 챙기려 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 그런 경우다.

또, 한미FTA 3차 협상이 지지부진했던 것은 북핵 문제가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런 분석에 바탕을 둔 것이다.

먼저, 한국 정부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자본가의 경제적 이익을 미국에 넘겨줄 것이라는 생각은 두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적 경쟁을 간단히 무시하는 것이다.

둘째, 한미 두 국가는 안보에서도 협력과 경쟁을 오가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핵심 대외 정책인 이라크 점령을 적극 지원하지만 대북 정책에서는 견해 충돌이 잦다. 이런 모순 때문에 한국 지배계급 내부에서 심각한 분열이 생겨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등장은 지배계급 내부에서 1991년 옛 소련 블록의 해체 이후 가속화하고 있는 세계 체제의 정치적·경제적 다극화 추세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한미동맹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분파들이 생겨났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론으로 말해, 경제와 안보는 밀접하게 관련돼 있지만(지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지배 전략이므로), 동시에 그 둘의 관계가 직결되는 것은 아니며 모순을 빚을 수 있다.

예컨대, 미국 다국적기업들은 중국을 거대한 잠재적 시장으로 여긴다. 또, 중국은 미국의 주요 채권국 중 하나다. 그와 동시에, 미국 지배자들은 중국이 세계 규모에서 미국의 경쟁자가 될까 봐 두려워한다.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는 그런 우려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의 중국 정책은 경제적 협력과 군사적 경쟁 사이에서 동요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한미FTA 추진 동기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적·경제적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접근하는 시각도 협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