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쌍둥이라는 이론이 개발됐었다. 냉전 종식 후 새로운 적이 필요해진 우파들은 ‘이슬람 파시즘’을 발견했다고 아닌디야 바타차리야는 주장한다.

조지 W 부시는 “이슬람 파시스트들과의 전쟁” 운운한다. 그러나 중동의 이슬람주의 저항 운동들에 뭔가 ‘파시스트적’인 것이 있다는 생각은 근거 없는 억측일 뿐이다. 이 점은 미국의 외교 정책 전문가들도 인정한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다니엘 벤저민은 이렇게 말했다. “지하드주의자들이 무솔리니나 다른 파시스트들이 발전시킨 파시스트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부시와 블레어는 ‘이슬람 파시즘’이나 ‘이슬람 극단주의’운운하며 광범한 추상적 ‘가치’로 제국주의 전쟁을 정당화함으로써 사실상 세계 어느 곳이든 군사 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 됐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테러리즘이나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을 들먹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특히 블레어는 정치적으로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의 간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열린’의 의미는 ‘자유무역’과 ‘이민 통제’를 뜻한다.

‘열린’사회와 ‘닫힌’사회의 차이가 근본적인 정치적 차이라는 사상을 맨 처음 주장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철학자 칼 포퍼였다. 그의 정치 이론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때 유명해졌고 냉전기에 우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유대계인 포퍼는 독일에서 나찌가 집권하자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도망가야 했다. 그는 파시즘에 반대했으나 마르크스주의에도 광적으로 반대했다. 그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결코 대립물이 아니고 실제로는 쌍둥이라고 주장했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모두 ‘닫힌’사회의 표본이고, 그 특징은 ‘전체주의’정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반면에, 자유민주주의는 ‘열린’사회이고, 따라서 극좌와 극우에 모두 반대한다.

미국과 서구의 지배계급들은 이 사상, 그리고 이와 관계 있는 ‘전체주의’이론을 열렬하게 옹호했다. 그런 사상과 이론은 외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개입과 국내의 정치 억압을 완벽하게 은폐해 주었다. 식민지의 해방 운동과 서구의 노동조합원들을 모두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자유의 적’으로 몰아세울 수 있었다.

포퍼의 ‘전체주의’이론의 중요한 특징 또 하나는 좌파와 우파의 차이를 일부러 흐렸다는 것이다.[이것은 오늘날 ‘제3의 길’정치인들도 즐겨 하는 일이다.] 그 덕분에 서구 지배계급들은 필요할 때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좌파’적 색칠을 할 수 있었다. 공산주의는 파시즘과 똑같은 것이고, 좌파는 파시즘에 반대한다. 그러므로 좌파는 소련에 반대하는 미국을 편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이런 주장은 실제로 일부 극좌파에게도 먹혀들었다. 어빙 크리스톨 같은 사람들은 철저한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이 됐다.

이와 대조적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의 다른 경향들은 미국과 소련 가운데 하나를 지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을 창건한 토니 클리프는 양대 초강대국의 미사여구가 겉보기에 아무리 다르더라도 실천에서 그들은 모두 제국주의·자본주의 국가 구실을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둘 다를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점

그러나 ‘전체주의’이론은 냉전기에 우파들에게 유용했음에도 중대한 약점이 있었다. 그 이론은 서구의 지배 엘리트들이 처음에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노동계급 운동을 막을 방파제로 여겨 환영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히틀러의 군사적 야망이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협한 뒤에야 비로소 서구의 ‘민주주의자’엘리트들은 파시즘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똑같은 ‘전체주의’의 두 가지 변형일 뿐이라는 생각은 그런 사회들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데는 아무 쓸모도 없었다. 사실, 소련은 냉전 이데올로그들이 묘사한 것만큼 강력하지 않았다. 1980년대 말에 동유럽 정권들이 갑자기 무너졌다. 갑자기 ‘전체주의’이데올로기는 서방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못 되고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그래서 ‘전체주의’이론의 재판(再版)에서 공산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적을 만들어내려는 우파들의 노력이 1990년대 내내 계속됐다. 지배계급에게는 그런 적이 필요했다. 분명히 그들의 제국주의는 1990년대에도 중단되지 않았고, 따라서 그 제국주의를 정당화할 이데올로기도 계속 필요했다.

새로운 ‘주적’

1979년 이란 혁명과 이후 이슬람 정권의 수립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새로운 적을 찾아내는 데 매우 유용했다. 그 뒤 20년 동안 많은 중동 사람들이 제국주의에 대항해 이슬람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런 사태 전개 때문에 미국의 우파 정치 이론가인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 충돌’― 서구 기독교계와 다양한 적대 문명들, 특히 이슬람의 대결 ― 이 냉전 종식 후 새로운 질서의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점차 이슬람을 악마화하고 이슬람주의를 새로운 전체주의라고 묘사하는 주장은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엄청나게 각광을 받았다. 한때 괴짜 우파들만 사용했던 ‘이슬람 파시즘’같은 개념들이 갑자기 주류 지배층의 견해가 됐다.

그리고 냉전 때 그랬듯이, 일부 좌파도 그런 견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슬람 파시즘’이 당장은 전문용어처럼 유행할 수 있지만, 지배계급 우파의 핵심 인사들은 진정한 적이 누구인지 결코 잊지 않고 있다. 영향력 있는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그이자 광신적인 반(反)무슬림 인사인 다니엘 파이프스는 부시가 ‘이슬람 파시즘’ 운운한 뒤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논평을 내놓았다.

“나는 모종의 이슬람으로 표적을 좁히려는 노력이 늘어나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파시스트’라는 말이 잘못 쓰이고 있다. 파시즘과 급진 이슬람 사이에는 역사적 또는 철학적 연관이 거의 없다. … 급진 이슬람은 역사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훨씬 더 많이 연결돼 있다. … 냉전기에 이슬람주의자들은 미국보다 소련을 선호했다. 오늘날 그들은 강경 우파보다는 강경 좌파와 더 깊고 더 많은 연관을 맺고 있다.”

그리고 토니 블레어의 연설을 자세히 읽어보면 블레어도 파이프스의 말에 동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8월 블레어는 급진 이슬람이 “혁명적 공산주의와 똑같은 특징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다시 불붙인 냉전적 미사여구는 전 세계 인간 해방이라는 위협 ― 평등과 연대의 원칙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 을 집중적으로 겨냥하는 듯하다.

▶파시즘에 대해서는 ‘파시즘이란 무엇인가’를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