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주의 저항 운동은 오늘날 가장 주요한 반제국주의 세력 중 하나다. 하지만 정작 이슬람주의의 정확한 의미와 성격, 이슬람주의에 대한 좌파의 올바른 태도 등은 여전히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다.

이슬람주의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출발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슬람은 오늘날 13억 명이 믿는 주요 종교다. 반면, 이슬람주의는 이슬람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바탕으로 특정한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 신념이다.이 때문에 '정치적 이슬람'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모든 무슬림이 아니라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슬람주의자다.

이슬람주의에 대한 흔한 편견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현대 세계를 거부하는 반동적 사상이고, 따라서 전통주의와 사회적 보수주의, 과거로의 회귀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우파의 다수는 물론 좌파의 일부도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여 이슬람주의자들과 협력을 꺼리거나 심지어 맞서 싸워야 할 적으로 여기곤 한다.

예컨대, 프랑스 아탁(ATTAC)의 지도자인 베르나르 까쌍은 영국의 좌파들이 무슬림과 함께 리스펙트를 건설한 것을 두고 "좌파가 무슬림들과 협력함으로써 좌파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들을 저버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물론 이슬람주의 운동에 일부 반동적 요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슬람주의 운동의 주된 성격은 아니다.

이슬람주의 운동의 진정한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세에 아랍 세계가 무엇을 경험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슬람주의는 제국주의 ― 그리고 자본주의 ― 의 충격에 상처받은 사회에서 등장했다. 1757년에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벵골 지역을 장악한 이래로 서구 열강은 무슬림 세계와 그 밖의 지역을 체계적으로 지배·수탈·억압해 왔다.

'쇄신'

그러나 이러한 제국주의 지배가 모든 사회 세력에게 동일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제국주의의 영향력 하에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대중의 다수는 빈곤과 불안정으로 내몰린 반면, 토착 지배계급들은 ― 비록 불만이 없지는 않았지만 ― 서방 강대국들의 후원을 받으며 막대한 부와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이들은 섹스와 음주, 복장에 관한 종교적 계율을 거리낌없이 무시하면서도, 신자들의 공동체를 대표하는 경건한 세력을 자처했다.

이슬람주의는 이렇듯 부패하고 억압적인 국가와 제국주의에 대한 도전을 함축하는 모종의 '쇄신'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로서 등장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사회의 특별한 재편을 주장했는데, 그 근거를 이슬람에서 가져와 이슬람의 언어로 제시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제국주의 지배 전의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포함됐다.

그러나 이것이 곧 과거로의 '회귀'를 뜻하지는 않는다. 이슬람주의자들의 다수는 결코 기존 사회의 특징 일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대체로 그들은 현대 산업과 현대 기술 그리고 그 토대인 과학을 받아들인다. 사실, 이 점에서 이슬람주의는 '근본주의'가 아니라 '부흥주의'에 가깝다.

물론 이슬람주의가 처음부터 아랍 저항운동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아니었다.

제3세계의 다른 많은 곳과 마찬가지로 제2차세계대전 이후 아랍 세계를 뒤흔든 급진화와 반제국주의 저항 물결을 이끈 것은 세속적 좌파 ― 특히 아랍 민족주의와 공산당들 ― 였다. 이슬람주의의 부상은 이러한 세속적 좌파가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을 이끄는 데 실패한 것과 큰 연관이 있다.

아랍 민족주의는 이집트의 나세르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1967년 전쟁의 패배 이후, 그 운동을 기반으로 집권한 아랍 정권들은 제국주의와 세계 자본주의와 타협하는 쪽으로 급속히 나아갔다. 나세르의 뒤를 이은 사다트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1970년대 내내 아랍 정권들은 일련의 긴축 정책들을 실시했다.

스탈린주의 전통에 충실하던 아랍 공산당들은 '단계혁명론'을 고수하며 노동계급 독립성을 팽개친 채 좌파 민족주의(때로는 이슬람주의)에 용해되거나 결정적 순간 거듭 무능력을 드러냈다.

아라파트와 그가 이끈 민족주의 세력인 '파타'의 계속되는 타협과 부패에 신물이 난 팔레스타인 대중은 2006년 총선에서 이슬람주의 단체인 하마스에 투표했다.

모순

이슬람주의가 오늘날 아랍 반제국주의 투쟁의 가장 유력한 이데올로기로 부상했지만, 장래 이슬람주의 운동에 어떠한 위기도 없을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사실, 역사적 경험은 이슬람주의 운동이 성공에 근접할수록 그 근본적 모순 또한 분명히 드러났음을 보여 준다.

권력을 장악한 이란의 이슬람주의자들은 가장 세속적인 문제들(예컨대, 개인적 축재, 경제 개발 계획들)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분파 투쟁 ― 흔히 종교적 수사들로 치장되긴 했지만 ― 을 벌여 왔다.

1990년과 1991년 일련의 선거에서 승리한 알제리의 이슬람구국전선(FIS)은 대중에게 보수적 생활방식을 강요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와 파업에 반대했다. 1991년 5월 군부의 선거 무효화 위협에 직면한 FIS는 명망 추구와 봉기 사이에서 오락가락했고, 이슬람주의 단체들은 분열했다.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은 사다트 암살 뒤 대규모 국가 탄압에 직면해 일종의 '이슬람 개량주의'로 변모(일부는 순전히 준(準)군사적인 활동으로 전환)해 왔는데, 정부가 협상을 통해 국법 체계에 샤리아(이슬람법)를 도입하기 시작하자 점차 정권과의 충돌을 피하려 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도 자신의 노동계급 기반의 불만을 표현하는 한편(예컨대, 2001년에 사유화에 반대하는 주요 파업들을 이끌었다) 그러한 불만을 누그러뜨리려 애썼고, 이 과정은 헤즈볼라가 레바논 국가로의 통합을 추구하면서 더 강화돼 왔다.

이슬람주의 운동의 이러한 모순과 약점은 핵심으로는 운동의 계급적 기반과 관련이 있다.

이슬람주의나 이슬람주의자들을 획일적 사상이나 집단으로 묘사하는 주류 언론과 학자들의 설명과는 달리 이슬람주의 운동은 그 기반을 이루는 사회 집단에 따라 그 성격이 다르다. 착취자들의 이슬람주의와 빈민들의 이슬람주의는 강조점이 사뭇 다르다.

그 중에서도 오늘날 부흥주의적·정치적 이슬람을 지탱하는 결정적 요소는 신(新)중간계급의 이슬람주의다. 근대화를 경험하고 현대적 교육을 받은 이 계층은 이슬람주의 운동의 활동가들을 배출하는 진정한 토대다.

제3세계 민족주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이 운동의 주된 기반이 중간계급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제국주의와 부패하고 무능한 아랍 정부들에 대한 반대에 기반을 두고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지만 체제에 일관되게 저항하지 못하고 타협하거나 그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또, 그들은 흔히 그러한 활동을 반동적인 방향으로, 즉 종교적·인종적 소수파들과 여성들을 겨냥하는 쪽으로 이끌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약점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이 반제국주의 투쟁에서 이슬람주의자들과 기꺼이 협력할 필요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주의자들은 온갖 형태의 이슬람주의에서 완전한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함과 동시에 이슬람주의를 지지하는 개인들을 진정한 급진적 투쟁으로 끌어당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