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6일 토요일 멕시코의 시민 저항 운동은 선거부정 항의 투쟁의 일환으로 첫번째 전국민주주의대회를 열었다.

그 대회에는 1백만 명이 참가했고, 멕시코 전역에서 선출된 2만 5천7백24명의 대표들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를 "멕시코의 합법적 대통령"으로 지명했다.

또, 그 대회는 7월 2일 대선에서 오브라도르가 승리했다고 선언하고, 오는 11월 20일[1910년 멕시코혁명 기념일] 오브라도르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데 동의했다.

작가이자 활동가인 엘레나 포니아토우스카는 개회사에서 멕시코 헌법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정부가 비민주적으로 행동한다면 국민들은 그 정부를 바꾸거나 교체할 수 있는 명백한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점을 감안해서, 대회는 대표들에게 다양한 제안들을 내놓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브라도르를 합법적 대통령, 즉 시민 저항 운동의 지도자로 승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대표들은 만장일치로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대통령, 대통령"을 연호하며 "오브라도르에게 경의를!"이라고 외쳤다.

그 뒤 그들은 펠리페 칼데론은 대통령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특권 체제의 폐지를 선언했다. 그리고 내각을 인선하고 멕시코시티에 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권한을 오브라도르에게 부여했다.

그들은 기본적인 정책 강령들을 투표로 선정했다. 그 중에는 빈곤·불평등·사유화에 맞서 싸우고, 오직 극소수 부자들에게만 도움이 되는 멕시코의 제도들을 대폭 개선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또, 그들은 시민 저항을 계속하기 위한 광범한 행동 강령들에도 동의했다. 그 중에는 칼데론이 가는 곳마다 항의 시위 벌이기, 문화제 행사들 조직하기, 월마트·코카콜라·사브리타스·빔보·킴벌리-클라크 등 칼데론에게 선거운동 자금을 제공하고 선거운동 기간에 오브라도르를 비방하는 '더러운 선거운동'을 지원한 기업들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등이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운동의 모든 노력을 12월 1일에 집중하자고 호소했다. 그 날은 칼데론이 공식적으로 대통령에 취임하기로 예정된 날이다.

미래

운동은 전국민주주의대회를 몇 주 동안 준비해 왔고, 치아파스와 오악사카에서 티후아나와 몬테레이까지 멕시코의 모든 주(州)에서 선출된 오브라도르 지지자들의 대표단이 멕시코시티에 도착할 수 있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노동자들·학생들·원주민들이 모두 모여 멕시코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멕시코에서 가장 중요한 날 가운데 하나로서 멕시코가 스페인에서 독립한 것을 축하하는 독립 기념일인 주말에 열린 그 대회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전통적으로 그 날은 대통령이 멕시코시티의 중앙 광장에 있는 시(市)궁전에서 '독립의 외침'을 선언한다.[1810년 이달고 신부가 멕시코의 독립을 선언한 것을 재연하는 행사다.] 그러나 올해에는 대통령 폭스가 자신의 고향인 과나후아토 주에서 행사를 진행해야 했고, 소칼로 광장에서는 민주혁명당(PRD) 소속 멕시코시티 시장이 '독립의 외침'을 선언했다.

이미 9월 1일에도 폭스 ― 이제 '민주주의의 배신자'로 유명해진 ― 는 PRD 소속 하원의원들의 저지 때문에 '대국민 연설'을 하지 못했다.

멕시코의 노동계급·원주민들·빈민들에 의해 새 정부가 민주적으로 구성된 뒤 대표단은 다른 멕시코가 가능하다는 자신감과 결의에 찬 모습으로 대회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