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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는 다시 암흑기로 돌아가는가

9월 19일 저녁, 자칭 "푸미폰 국왕에게 충성하는 민주개혁평의회"인 군부 인사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적으로 선출됐지만 논란이 많았던 탁신 치나왓 총리를 몰아냈다.

군사 정부의 공식 이름 - 푸미폰 국왕에게 충성하는 민주개혁평의회 - 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 을 연상시킨다. 이제 '민주주의'는 군사 독재를, '개혁'은 1997년 헌법 파괴와 의회 독립 기구들의 폐지, 그리고 계엄령 선포를 의미한다. 탁신 모습을 TV에 방영하는 것도 불법이다. 〈BBC 월드 서비스〉가 탁신의 모습을 내보내자 난데없이 광고가 화면을 대체했다.

이동통신과 언론 재벌인 탁신 치나왓은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타이 락 타이(타이를 사랑하는 타이인)당을 만들었다. 타이 락 타이는 최근 타이 정치에서 독특한 성격의 정당으로 정책을 개발하기 위해 실제로 상당한 준비를 했다.

그들은 다양한 사회단체들과 모임을 가졌고 2001년 선거에서 첫 승리를 했을 때 실속있는 정책들을 내놓았다. 타이 락 타이는 "포퓰리스트" 정당으로 빈민을 위한 정책들을 폈고, 국가 재정을 지역 개발 계획에 투입해 촌락 단위에서 케인스주의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그와 동시에, 타이 락 타이는 대기업 정당으로서 사유화와 자유무역협정 체결 등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진하기도 했다.

타이 유권자의 대다수인 빈민들은 타이 락 타이의 두 가지 대표적 정책, 즉 타이 최초의 국민의료보장 제도와 각 촌락에서 소기업 활동을 고무하기 위한 1백만 바트 기금 지급에 열렬히 찬성했다.

2005년 총선에서 타이 락 타이는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또다시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가장 중요한 야당인 민주당은 그 이전 4년 동안 의료보장 제도와 각종 사회보장 수당들을 공격했다. 민주당은 그런 정책들이 '재정 규율[건전성]'을 해치고 '의존적 풍토'[소위 '도덕적 해이'와 비슷한 말]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지난 번[1997년] 경제 위기 직후 정권을 잡았을 때 금융제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빈민들로부터 거둔 세금을 사용했다. 당시에 은행들이 위기에 빠졌던 것은 부자들의 무분별한 투기 활동 때문이었다. 지금 민주당은 쿠데타를 지지하고 있다.

탁신 정부에는 어두운 면도 있었다. 탁신 정부는 소위 '마약과의 전쟁'을 벌여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재판도 없이 살해했다.

최남단의 3개 주에서는 말레이어를 사용하는 무슬림들을 상대로 폭력적 군사행동을 벌였다. 탁신 정부는 탁바이에서 평화 시위에 참가한 90명의 청년들을 고의로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들의 손을 등 뒤로 묶은 뒤 군용 트럭에 쌓아올렸고, 여러 시간이 걸려 육군 기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죽어 있었다.

탁신 정부는 경찰이 남부 무슬림들을 대변하는 변호사 솜챠이 닐라파이칫의 죽음에도 책임이 있다. 그뿐 아니라 탁신과 그의 부패한 측근들은 탈세를 저질렀다. 그들은 이동통신 회사를 팔아 7백억 바트를 챙겼지만 한푼도 세금을 내지 않았다. 탁신 정부는 이전 정부들만큼이나 부패했던 것이다.

부패

탁신 정부 하에서 타이 민중 운동은 두 손 놓고 있지 않았다. 탁신 정부에 도전하는 노동계급의 가장 커다란 운동은 2004년 20만 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한 전력 사유화 반대 행동이었다. 이 때문에 사유화 계획이 연기됐다.

탁신 정부의 인권 유린과 사유화에 반대하는 다양한 시위, 무엇보다도 자유무역협정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에도 불구하고, 탁신 정부에 도전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좌파 정당의 부재 때문에 탁신 정부는 빈민들에게서 탄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빈민들에게 주류 우파 정당들은 아무런 매력이 없었다.

2005년 말에 탁신 정부에 반대하는 대규모 항의 운동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탁신의 경쟁 미디어 재벌인 손디 림통쿨(지금 군사 정부를 이끄는 손디 장군과는 다른 인물)이 주도하는 우파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정부 부패를 비판하고 "국왕에게 권력을 돌려주자"고 요구하면서 국왕이 새로운 정부를 임명할 것을 호소했다. 불행히도, 민중운동 내 좀더 보수적인 부문이 이 항의 운동에 참가해서 '민주주의를 위한 민중 동맹'PAD)을 결성했다.

그들은 손디의 항의 행동이 탁신을 몰아낼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는데, 독립적으로 행동하기에는 민중 운동의 힘이 너무 약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이 계급 동맹에 참가했다.

그래서 부패가 탁신 정부 비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됐고, 인권 유린, 남부[무슬림 학살]와 신자유주의 문제들은 거의 무시됐다. 시위대는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색 셔츠를 입었다. 민중 운동 내 많은 사람들은 이런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위에 참가하지 않았다.

문제는 민중 운동이 단일쟁점주의, 자율주의, NGO식 '제3의 길'정치에 그토록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면 훨씬 더 강력했을 것이란 점이다. 그 동안 민중 운동은 정치 정당 건설을 거부해 왔고, 이것은 심각한 약점이었다.

탁신은 의회를 해산하고 4월 총선을 발표했다. 야당이 총선 보이콧을 선언하자 선거는 정부에 대한 신임을 묻는 것이 됐다. 결과적으로 1천6백만 명이 타이 락 타이에 표를 던졌고, 1천만 명이 기권표를 던졌다.

현재 정치 위기의 중심에는 한 가지 정치적 논쟁이 있다. 우파 쪽(여기에는 민중 운동 내 일부와 여러 소위 진보적 학자들도 속한다)은 탁신이 "무식한 농촌 빈민들을 꼬드기는" 방식으로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고 믿는다.

이것은 1천6백만 명의 소망을 무시하기 위한 손쉬운 변명거리에 불과하다. 국왕에게 새로운 정부를 임명하라고 호소한 것과 함께 이런 입장은 군사 쿠데타를 지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좌파가 대안을 제공하지 않는 한 빈민들은 타이 락 타이에게 투표할 실질적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특히 탁신의 인권 유린 때문에라도 일관되게 탁신을 반대했지만, 헌법을 파괴하고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를 박탈하는 군사 쿠데타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올바른 대응은 복지국가[사회보장제도]와 누진세 도입을 주장하고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대안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남부 문제는 지역 주민의 자결권 인정을 포함해서 평화적인 정치 수단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 그러나 당장은 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활동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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