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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 천수이볜 퇴진 운동 탄생 배경

대만의 정치세력은 양대 진영으로 나뉜다. 하나는 '판뤼(泛綠)'라 불리는 녹색진영이고, 또 하나는 '판란(泛藍)'이라 불리는 청색진영이다.

녹색진영에는 현재 집권당인 민진당과 리덩후이가 이끄는 대만단결연맹이 있고, 청색진영에는 마잉지우가 이끄는 국민당, 쑹추위의 친민당이 있다.

청 녹의 대립은 리덩휘가 '양국론'[중국과 대만은 독립된 두 개의 국가라는 주장]을 들고 나오면서 시작됐고, 천수이볜이 '대만인으로서 정체성'을 정략적으로 부각시키면서 더욱 심해졌다. 과거 천수이볜은 선거 승리를 위해 국민당을 '중국 이방인'이라고 배척하고 '대만 본토인'의 단결을 선동했다.

즉, 대만의 원래 주인은 1949년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한 후 중국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대만에 정착해 있던 사람들이란 것이다. 보통 전자를 외성인(外省人)이라 부르고 후자를 내성인(內省人) 혹은 본토인이라 부른다. 그러나 외성인과 내성인은 대만으로 이주 시기만 다를 뿐 모두 한족이고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청·녹 두 진영은 각각 외성인과 내성인을 주 지지세력으로 가진다.

두 진영은 중국과 관계에서 대만을 어떻게 위치지울 것인가란 점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녹색진영은 중국의 '하나의 중국'원칙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대만이 '대만'이란 국호로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현재 대만의 공식 국호는 '중화민국'이다). 반면 청색진영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중화민국으로서'란 단서를 단 채 '하나의 중국'원칙에 동의하고 있고 독립을 반대한다. 이들은 장기적인 통일을 목표로 온건한 통일노선을 표방한다.

대다수 대만인들은 대만은 이미 독립 국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대만을 중국 영토의 일부로 보는 중국식 '하나의 중국'원칙에 반감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굳이 오직 국호상의 독립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대만인들은 현상유지를 바란다.

그러나 천수이볜은 '대만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고, 툭하면 자신의 정치위기를 '대만 독립'카드로 돌파하려 한다. 중국의 무력 위협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게임이다.

천수이볜이 '대만 독립'카드를 빼들면, 이를 절대 용인할 수 없는 중국은 당연히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천수이볜은 그것보란 듯이 중국의 반응을 이용해 '대만인의 단결'필요성과 '대만 독립'을 새롭게 주장하며 자신의 통치명분을 세우고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려 한다.

천수이볜 퇴진 운동은 대만 사회의 뿌리깊은 청·녹 구도를 뛰어넘은 새로운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청·녹과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이 운동에 참가했다. 운동의 도화선은 천수이볜 자신을 포함한 가족과 측근들의 연이은 부패스캔들이었다. 천수이볜의 지지율은 12퍼센트로 곤두박질쳤고 민진당 지지율도 13퍼센트로 동반 하락했다.

이런 가운데 전 민진당 주석 스밍더가 천수이볜 퇴진을 요구하는 '백만인 반부패운동'을 호소하자 폭발적 호응이 있었다. 운동이 시작된 지 1주일 만에 1백만 명 이상이 모금에 동참했다. 지난 9월 15일에는 1백만여 명이 "천수이볜 퇴진"을 외쳤다.

이런 대중의 분노가 단지 한 개인의 부패 문제 때문에 폭발한 것은 아니다. 천수이볜은 집권 6년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공공부문 사유화, 노동유연화를 추진하면서, 기업 세금 감면과 보조금 지급 등 기업을 돕는 정책을 폈다.

반면, 교육비와 의료비는 치솟았는데, 일례로 1995년 대학생 일인당 교육비 지출은 8만 6천 위안[약 1천만 원]이었으나 2002년에는 12만 4천 위안[약 1천5백만 원]으로 증가했다. 반면 2000∼2004년까지 실질임금 평균 증가율은 겨우 0.93퍼센트였고, 작년 실질임금은 오히려 0.9퍼센트 하락했다. 실업률도 상승했는데, 수십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중국으로 건너가 일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미 10퍼센트를 넘었다고 한다. 또, 천수이볜 집권기간 동안 자살증가율이 무려 73.3퍼센트였는데, 카드 빚 등으로 인한 서민들의 생계형 자살 증가가 대부분이다.

현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과 분노가 컸기 때문에 퇴진 운동이 폭발적으로 분출했던 것이다.

집권당은 처음부터 퇴진 운동을 해묵은 청 녹 대립구도 안으로 몰아 넣으려 애썼는데, 여우시쿤 민진당 주석은 퇴진운동을 두고 "대만인 본토정권을 뒤집기 위한 것 … 중국인이 대만인을 능욕하려는 것"이라고 매도하며 녹색진영을 규합하려 했다.

또, 최근 천수이볜은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또다시 '대만 독립'카드를 빼들었다. 중국은 이것이 "법률상으로 독립을 꾀하려는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현재 제1야당인 국민당은 퇴진 운동에 적극 동원하기보다는 이것을 공식 정치로 수렴하려 한다. 국민당 주석 마잉지우는 최근 〈아주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책임 있는 반대당이 돼야 한다. 우리가 내놓는 방안은 반드시 정국을 더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당은 입법원(대만 국회)에 천수이볜 파면안을 제출하려 하는데, 파면안이 통과되면 천수이볜을 퇴진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려 한다. 그러나 현재 파면안이 국회에서 통과될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퇴진 운동의 조직자 스밍더를 둘러싼 심상치 않은 의혹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민진당과 리덩후이가 내각제 추진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스밍더가 리덩후이를 만나 내각제나 연립 정부 구성을 논의했다는 의혹이 있다.

대만의 〈중국 시보〉는 최근 사설에서 "새로운 시민운동을 가져온 거리 정치가 어째서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밀실정치로 이어졌는가!"하고 개탄했는데, 이것은 애초에 이 운동이 가진 약점 때문이다. 운동의 동원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운동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위로부터 철저히 통제됐기 때문에 결국 일부 지도부가 이 운동을 좌지우지하게 된 것이다.

현재 퇴진 운동이 모종의 권력 재편에 이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운동이 어떻게 발전할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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