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 천수이볜 퇴진 운동 탄생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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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진영에는 현재 집권당인 민진당과 리덩후이가 이끄는 대만단결연맹이 있고, 청색진영에는 마잉지우가 이끄는 국민당, 쑹추위의 친민당이 있다.
청 녹의 대립은 리덩휘가 '양국론'
즉, 대만의 원래 주인은 1949년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한 후 중국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대만에 정착해 있던 사람들이란 것이다. 보통 전자를 외성인
두 진영은 중국과 관계에서 대만을 어떻게 위치지울 것인가란 점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녹색진영은 중국의 '하나의 중국'원칙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대만이 '대만'이란 국호로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다수 대만인들은 대만은 이미 독립 국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대만을 중국 영토의 일부로 보는 중국식 '하나의 중국'원칙에 반감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굳이 오직 국호상의 독립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대만인들은 현상유지를 바란다.
그러나 천수이볜은 '대만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고, 툭하면 자신의 정치위기를 '대만 독립'카드로 돌파하려 한다. 중국의 무력 위협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게임이다.
천수이볜이 '대만 독립'카드를 빼들면, 이를 절대 용인할 수 없는 중국은 당연히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천수이볜은 그것보란 듯이 중국의 반응을 이용해 '대만인의 단결'필요성과 '대만 독립'을 새롭게 주장하며 자신의 통치명분을 세우고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려 한다.
천수이볜 퇴진 운동은 대만 사회의 뿌리깊은 청·녹 구도를 뛰어넘은 새로운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청·녹과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이 운동에 참가했다. 운동의 도화선은 천수이볜 자신을 포함한 가족과 측근들의 연이은 부패스캔들이었다. 천수이볜의 지지율은 12퍼센트로 곤두박질쳤고 민진당 지지율도 13퍼센트로 동반 하락했다.
이런 가운데 전 민진당 주석 스밍더가 천수이볜 퇴진을 요구하는 '백만인 반부패운동'을 호소하자 폭발적 호응이 있었다. 운동이 시작된 지 1주일 만에 1백만 명 이상이 모금에 동참했다. 지난 9월 15일에는 1백만여 명이 "천수이볜 퇴진"을 외쳤다.
이런 대중의 분노가 단지 한 개인의 부패 문제 때문에 폭발한 것은 아니다. 천수이볜은 집권 6년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공공부문 사유화, 노동유연화를 추진하면서, 기업 세금 감면과 보조금 지급 등 기업을 돕는 정책을 폈다.
반면, 교육비와 의료비는 치솟았는데, 일례로 1995년 대학생 일인당 교육비 지출은 8만 6천 위안
현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과 분노가 컸기 때문에 퇴진 운동이 폭발적으로 분출했던 것이다.
집권당은 처음부터 퇴진 운동을 해묵은 청 녹 대립구도 안으로 몰아 넣으려 애썼는데, 여우시쿤 민진당 주석은 퇴진운동을 두고 "대만인 본토정권을 뒤집기 위한 것 … 중국인이 대만인을 능욕하려는 것"이라고 매도하며 녹색진영을 규합하려 했다.
또, 최근 천수이볜은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또다시 '대만 독립'카드를 빼들었다. 중국은 이것이 "법률상으로 독립을 꾀하려는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현재 제1야당인 국민당은 퇴진 운동에 적극 동원하기보다는 이것을 공식 정치로 수렴하려 한다. 국민당 주석 마잉지우는 최근
현재 퇴진 운동의 조직자 스밍더를 둘러싼 심상치 않은 의혹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민진당과 리덩후이가 내각제 추진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스밍더가 리덩후이를 만나 내각제나 연립 정부 구성을 논의했다는 의혹이 있다.
대만의
현재 퇴진 운동이 모종의 권력 재편에 이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운동이 어떻게 발전할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