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한미FTA 반대 서명을 받다 보면 종종 "한국이 개방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한미FTA가 한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람들(49.5퍼센트)이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람들(30.1퍼센트)보다 더 많은데도(재정경제부 여론조사, 〈프레시안〉9월 26일치), 한미FTA 찬반 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찬성이 근소하나마 반대보다 더 높은 것(10월 6일 MBC 여론조사)도 이 때문인 듯하다.

요컨대, 한미FTA는 뭔가 문제가 있는데 그렇다고 개방을 반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생각 때문에 52퍼센트(재경부 여론조사)가 협상 신중론("협상 일정을 현재보다 늦추는 것이 좋다")에 기울어 있는 것 같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추진 핵심 논리도 여기에 맞춰져 있는 듯하다. 즉, 개방만이 한국이 살 길이며, 한미FTA 반대는 곧 개방 반대요 쇄국이라는 것이다.

한미FTA 반대 진영에는 다양한 세력들이 포진해 있다 ― 미국 같은 강대국과는 FTA를 통해 얻을 이익이 없다고 보는 일부 주류 경제학자들(조순 등), 한미FTA뿐 아니라 한중일 역내 협력관계를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중론자들(우석훈 등), 보호무역주의 색채가 농후한 반세계화론자들(전농을 비롯한 좌파 민족주의자들), 한미FTA의 핵심은 자본이 세계화를 이용해 대중의 삶과 권리와 운동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보는 급진 좌파들('다함께'와 사회진보연대) 등.

노무현은 "쇄국"이라는 자극적 표현 ― 구한말 위정척사론을 떠올리게 하는 ― 을 사용해 이들을 모두 개방 반대론자들로 싸잡는다. 노무현의 이런 의도적인 싸잡기가 때론 세계 경제로부터 고립될까 봐 우려하는 대중의 불안감을 적절하게 자극하는 무기가 되고 있다.

따라서 운동은 한미FTA 반대가 세계 경제와 단절하는 고립 경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님을 선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즉, 자본이 세계화의 불가피성을 앞세워 대중의 삶을 후퇴시키려 하기 때문에 한미FTA를 반대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지금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를 통해 얻게 될 한국 자본의 이익을 숭상하는 한편, 그로 인해 망가지는 대중의 삶은 "부수적 피해" 쯤으로 여긴다.

따라서 정부의 "쇄국"론 비판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 정서에 기대려는 시도 ― 반미, 국익 손상 등을 부각시키기 ― 와 결별해야 한다.

부수적 피해

사실, 노무현과 한국 지배계급 대다수가 절대선으로 믿는 신자유주의와 자본 세계화는 세계 자본주의 경제를 안정적 성장 궤도 위에 올려놓지도 못했다.

1990년대 내내 유럽연합의 경제는 정체했다. 일본은 1930년대 대공황 이래 가장 심각하게 주요 경제를 괴롭힌 디플레 위기를 겪었다. 미국에서는 클린턴의 '신경제'호황이 심각한 과잉축적 위기로 이어졌다.(최근 포드와 GM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그 후유증이다.)

남반구[제3세계]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중국을 제외한 개도국의 총 연간성장률은 1961~80년에 5.5퍼센트에서 1981~99년에 2.6퍼센트로 하락했다.

이런 형편 없는 경제 실적은 1960년대 말 이래 선진 자본주의 경제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장기적인 수익성 위기 때문이다. 이 경제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해 새로 부흥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중국만이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1990년대 말까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

중국의 놀라운 경제 성장 과정은 다국적 자본(월마트 같은 소매 제국을 포함해)과 토착 자본의 동맹 하에서 이뤄졌다. 사기업조차 국가의 지원에 결정적으로 의존했다. 가령, 국가가 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저리에 융자해 주고, 경제 과열을 막기 위해 국가가 주저없이 개입했다.

또, 경제특구, 대만해협 갈등에서 보듯이 국경과 국익을 강력하게 수호하기, 비대칭적인 대미 관계를 극복할 수단으로서 외환보유액 확대(4천억 달러 보유) 등 중국의 경제 성장 방식은 신자유주의 규범과는 판이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베이징 컨센서스'가 '워싱턴 컨센서스'에 도전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적 개방만이 한국 경제의 살 길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주장은 이런 복잡한 현실과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적 개방은 경제 위기를 막기 위해 생산과 소비를 조율하는, 역사적 맥락에서 등장한 특정한 제도들 ― 이른바 규제 제도들 ― 을 제거하는 것이므로, 경제 위기를 더한층 부추기거나 위기에 대처할 수단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