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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

아르헨티나 -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 파산의 결정판이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보여 주는 뚜렷한 사례이기도 하다.

지난 2월 1일 두알데 대통령이 예금 인출 제한 조치를 계속 유지할 뜻을 밝히자 아르헨티나 주요 도시들에서는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생필품을 살 돈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예금 인출 제한 조치가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결정을 반겼다. 그러나 정부는 대법원의 결정을 무시했다. 그러자 시위대는 “모든 정치인은 물러나라”, “우리 돈을 돌려 달라”고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서 대중이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저녁 8시에 광장과 공원, 거리에 모여든 사람들이 서로 토론하고 논쟁하며 서로를 조직한다. 주민들의 대중 의회들이 무더운 여름날 밤에 공개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지역의 대중 의회가 회의를 소집하면 가장 인기 있는 TV 프로의 시청률이 하락할 만큼 그 열기가 뜨겁다.

아래로부터 등장한 운동은 위기에 대한 또 다른 대안을 보여 주고 있다. 살타, 코르도바 등 주요 도시들에서는 대규모 항의 시위가 연일 벌어졌다. 실업 노동자들의 전투적 대중운동인 ‘피케테로스’(piqueteros)가 행진을 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들어오기도 했다. 살타에서는 거리를 행진하는 시위대들이 부패 종식과 은행 계좌 동결 해제를 요구했다. 또한 13퍼센트 삭감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을 원상태로 돌리라고 요구했다.

‘피케테로스’

아르헨티나를 뒤흔든 운동의 핵심에는 상이한 사회 집단들이 모여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피케테로스다. 1990년대에 아르헨티나 정부가 전면적인 사기업화를 추진하자 실업자들이 폭증했다. 이 실업자들이 대량 해고에 맞서 벌인 운동이 바로 피케테로스다. 경제 위기 때문에 지금 실업자 수는 네 명 가운데 한 명 수준이다. 한때 아르헨티나의 생활수준은 유럽과 비슷했다. 하지만 실업자들이 폭증하면서 사회보장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대거 피케테로스로 몰려들었다.

세계 최대의 식량 생산국인 아르헨티나가 빈곤의 공포에 시달리는 것은 비극적인 역설이다. “빵과 일자리”는 피케테로스의 주된 요구가 됐다. 1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중간 계급 사람들은 피케테로스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로 중간계급이 완전히 파산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현 사태에 대한 분노가 과거에는 서로 대립하던 여러 세력들을 결집시키고 있으며, 이들을 더욱 급진화시키고 있다.

노동자들이 거의 살고 있지 않은 지역을 피케테로스 대열이 지나가더라도 주민들은 음식과 음료수를 제공하기도 한다. 대중의 행동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것은 주민 대중의회다. 주민 대중의회는 지역 주민들이 공개적인 광장에 모여 토론하고 활동을 조직하는 기구다.

노동 계급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는 대중의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노동자들이나 실업자들이다. 그런데 이런 대중의회는 노동자 밀집 지구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사회 계층이 혼재된 지역이나 심지어 경제적으로 꽤 넉넉한 지역에도 대중의회가 있다. 대중의회의 규모는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많은 지역에서는 정기적으로 수백 명이 모이는 회합이 열리곤 한다. 비야 델 파르케 지역 대중의회에는 3백 명이 참여했고, 타르타갈 지역 대중의회에는 1천 명이 참여했다.

대중의회

대중의회는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뿐 아니라 지방 소도시에서도 형성돼 있다. 그리고 대중의회에서 주로 제기하는 요구는 은행 예금 동결 해제, 은행과 사기업화한 기업의 재국유화, 일자리 창출, 식량 보조 등이다. 이러한 당면 요구들에는 대중적인 불만이 배어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 바이아 블랑카에서 한 항의 시위자가 한 말이다. 코르도바에서도 한 시위자는 “우리는 새로운 공화국을 원한다. 우리는 더 이상 정치인들을 원하지 않는다!” 하고 외쳤다.

일부 대중의회에서는 외채의 원리금 지급 중단과 은행 및 산업의 국유화뿐 아니라 민족주의적 색조가 가미된 요구도 나오고 있다. 외국 상품 불매 운동과 함께 “국수주의”에 대한 호소가 그것이다.

하지만 산 크리스토발과 보에도의 분위기는 이와 다르다. 이 곳 대중의회는 임금 삭감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것과 실업자와 하루 12시간 맞교대를 해야 하는 노동자 사이에서 일자리 나누기를 요구했다.

보에도와 산 크리스토발의 실업자와 학생과 노동자들은 거대한 대열을 이뤄 5월광장까지 행진하기도 했다. 이 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러한 대중의회와 아래로부터 형성된 운동은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민주적 조직을 건설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런 조직과 운동은 사회를 대중의 이익에 맞게 개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운동이 승리하려면 강력한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또한 대기업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들은 결정적인 투쟁에서 다국적 기업이나 미국의 후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저항 세력들을 극복하려면 조직 노동자들의 거대한 힘을 동원해야 한다.

지금 아르헨티나의 주요한 노동조합 연맹 가운데 하나(CTA)는 가끔씩 항의 시위를 지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두 연맹(CGT와 MTA)은 페론주의 정당과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다. 일부 조직 노동자들은 자기 지도부의 입장을 무시하고 항의 운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코르도바에서는 지자체 노조 대표단 상당수가 항의 시위에 참가했으며, 산타페에서는 수천 명의 교사들이 항의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또, 대중의회의 지역간 회합에서는 처음으로 철도와 통신 노동자 대표들이 참석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대중 운동이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는 노동자 계급의 잠재력을 얼마나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것이 아르헨티나의 미래가 희망으로 갈지 야만으로 갈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