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 재연장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고 우겨왔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힐의 발언으로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노무현이 이라크 파병 재연장과 레바논 파병을 밀실 야합했다는 게 드러났다.

회담 결과는 한미동맹이 한반도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주한 미대사 버시바우도 "한미동맹이 한반도 안보라는 기본 임무를 넘어서 더 큰 중요성이 있다"고 했다.

지금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은 위기에 처해 있다.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이라크 사태가 진전중"이라고 했지만, 지난 5일 그가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 저항세력의 로켓 공격 때문에 바그다드 공항에 착륙하지도 못하고 45분간 떠돌아야 했다.

부시의 일방주의도 한계를 드러냈다. 랜드연구소의 제임스 도빈스는 "9·11 이후 미국의 외교는 테러리스트보다는 자신들을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비아냥거렸다. 부시는 유엔을 무시하고 프랑스더러 ‘옛 유럽’이라고 비웃으며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레바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하자 프랑스를 다시 끌어들여야 했고, 이란 핵문제를 다룰 때도 유엔에서 다른 열강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처지다.

이 때문에 자이툰의 주둔 연장은 부시에게는 매우 고마운 일이다. 표면상 자이툰이 이라크에서 "뜨개질 가르치기"따위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이툰은 "테러와의 전쟁"이 맞고 있는 정당성 위기를 가리는 구실을 한다.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은 자이툰이 "다국적군에 포함돼 있는 것 자체가 전쟁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트남전 때도 미국은 '더 많은 깃발 정책'파병 규모와 무관하게 많은 국가의 참전 유도하기)으로 전쟁의 정당성을 옹호하려 했다. 특히, 아시아 국가인 한국의 이라크 점령 참가는 미국으로 하여금 동맹의 '광범함'을 과시하게 할 수 있다. 또, 자이툰이 없었다면 가뜩이나 병력 동원이 힘든 미국은 아르빌에도 군대를 보내야 했을 것이다.

자이툰이 '삽질'만 하는 것도 아니다. 자이툰은 UNAMI(유엔이라크재건지원기구) 경비 임무를 수행한다. 게다가 자이툰은 쿠르드 민병대를 훈련시키고 있는데, 최근 레바논 전쟁에서 패배한 이스라엘도 이란 공격의 전초 기지로 활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쿠르드 민병대를 훈련시키고 있다.

본전

이런 점에서 이라크 파병이 "경제적 실리가 없기 때문에 철군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확한 반박이 아니다. 이런 식의 주장은 심지어 자이툰이 기업 진출에 "족쇄"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열과 성을 다해 자이툰 파병을 찬성해 왔다. 전경련은 김선일 씨의 비극이 채 가시기도 전에 파병에 따른 '실익이 2008년까지 1백2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기대한 적이 있다. 최근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이라크 시장은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이며, "기회 포착은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지금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정부도 슬슬 본전 뽑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올해 6월 한미 상무에너지장관 회담에서는 “이라크 에너지 플랜트 사업에 한국과 미국이 공동 참여”를 협의해 "우리 기업의 중동지역 플랜트 수출을 위한 계기를 마련"했다. 그래서 한국 기업 진출을 안전하게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자이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다.

더 근본적으로, 파병은 일부 기업의 단기적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한국은 현재 12개 나라에 군대를 파병했지만 이들 중에는 즉각적 '실익'과 무관한 곳도 많다. 하나의 계급으로서 한국 지배자들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편승해 한국 자본주의 전체가 세계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기를 바란다.

자이툰이 이라크에서 아무 하는 일이 없이 괜시리 주둔하고 있으니 철군해야 한다는 주장은 뒤집으면 자이툰이 별 해악을 끼치지 않으니 그냥 거기 남아 있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자이툰 주둔 자체가 미국과 한국의 지배자들 전체에 대해 갖는 정치적 역할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이툰 철군의 필요성에도 다시금 주의를 돌리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