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정부는 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하라고 북한에 촉구하고 있다. 이것만큼 역겹고 듣기 거북한 얘기도 없다.

지난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합의 정신을 내던진 쪽은 바로 미국이었다. 공동성명 채택 직후 케도 종결을 선언하고 금융제재를 실시한 것은 북한 면전에 대고 '9·19 공동성명? 뻥이야'하고 말한 셈이었다.

한편, 부시 정부의 이런 위선을 신랄하게 들춰내는 진보진영 안에서도 6자회담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부시 정부야말로 6자회담(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담긴 평화적 해결 염원은 완전히 공감할 만하다. 압박과 제재가 아니라 대화를 하는 것이 흔히 국내 민중 운동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한다. 하지만 6자회담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묶어두기

북핵 문제에 대한 "다자적 접근"을 처음 제시한 것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었다(2003년 초). 이를 통해 부시 정부는 미국이 북핵 문제의 유일한 당사자가 아니며, 일본·남한·중국·러시아 모두 북한의 핵포기에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음을 보여 주려 했다.

이라크를 곧 침공할 예정이었던 부시 정부는 이라크에 전념하는 동안 북한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도록 묶어둘 테이블이 필요했고, 일본·남한·중국·러시아가 북한에 압력을 넣으며 테이블을 함께 지켜주기 바랐던 것이다.

최근에 발간된 콜린 파월의 전기는 부시 정부가 6자회담을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의미심장한 폭로를 담고 있다. "체니 부통령은 6자회담을 남한·중국·일본·러시아 등 다른 4개국의 지지 아래 미국이 북한에 협상 불가능한 요구를 개진하는 자리로 여겼다." 물론 "외교적 표현"도 때때로 필요했는데, "북한과 다른 참여국들을 협상에 묶어두기 위해"서였다.

물론 6자회담이 미국이 마음먹은 대로 굴러갔던 것은 아니다. 부시 정부는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국들이 일치단결해 있다고 강조하곤 했지만, 실제로는 다른 어느 국가도 미국과 똑같은 입장이 아니었다.

중국과 남한은 물론이고, 일본도 가끔 독자적 목소리를 냈다. 지난 6월 미국을 방문한 고이즈미는 부시에게 북미 양자회담을 권했고, 부시는 "외국 정상으로서 나한테 직접 그런 얘기를 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고 대꾸했다.

애초 미국은 6자회담을 5 대 1 구도로 만들려 했지만 이제 6자회담이 미국에게 압력을 넣는 장으로 변했다는 희망 섞인 관측이 유행했다. 이것은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한 지적이었지만, 고려하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미국이 합의를 이끌지는 못해도 파투를 낼 수는 있다는 것이었다. 책임을 북한에 교묘하게 떠넘기면서 말이다. 다자간 약속이니만큼 미국이 북미 양자회담처럼 쉽게 합의를 깨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는 9·19 공동성명 채택 이후 현실의 검증을 견디지 못했다.

세계 제패 전략

미국은 북핵 문제를 단순히 대북관계가 아니라 세계 제패 전략에 비춰 다룬다. 중국과 일본 같은 6자회담 참가국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가 북 핵보유에 대한 반대에서는 일치하면서도 서로 다른 해결 방안을 내놓는 것은 북핵 해결과 자국의 패권 유지 또는 확대 방안을 연결지어 구상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불가침조약과 외교관계 수립이라는 별로 어렵지 않은 북한측 요구를 외면해 이른바 "북한 문제"를 온존시켜 왔는데, 그러는 동안 MD(미사일방어체제)를 구축하고 미일동맹을 강화해 왔다. 그리고 이것이 중국을 자극해 동북아 긴장을 높이고 있다.

이처럼 동북아의 불안정을 부추기는 당사자들인 6자회담 참가국들이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의 평화구축을 보장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그들의 분열을 이용하려 한다면 결국 어느 한 쪽에 붙어 긴장을 부추기는 데 일조하게 될 뿐이다.

진보진영은 6자회담 참가국 정부에 조금치도 기대를 걸지 말고 독자적으로 미국의 대북 압박과 제재에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또, 자국 정부의 이해관계를 거슬러 평화를 위한 국제적 연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동북아를 불안정에 빠뜨리는 시도들을 좌절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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