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집에서는 아버지가 히잡을 벗으라고 가혹하게 압력을 가했지요 … 그녀에게 있어 히잡은 단지 신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과 명예를 의미하는 것이었어요.”

오르한 파묵의 《눈》 중에서

최근 유럽 지배자들은 이슬람이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라고 내놓고 주장하거나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그들은 그런 주장을 하면서 흔히 이란 등 중동 각국 무슬림 여성의 상황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사실, 중동보다 다른 지역에 무슬림들이 더 많을 뿐 아니라, 이슬람과 여성의 관계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늘날의 이슬람 학자들은 초기 이슬람 역사에서 일부 여성 무슬림 지도자들이 했던 구실에 주목하고 있다. 또, 당시에 코란은 여성의 재산상속권을 포함해서 다른 종교보다 여성의 권리를 더 많이 보장했다.

물론 코란에 여성 억압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구절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시대상의 반영이었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 만큼 매우 모호한 구절들이다. 그리스도교 성경에도 이런 구절들이 많다.

이슬람을 비난할 때 사용하는 기준을 다른 종교들에 적용해 보면 이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기준

일례로 구약성서의 ‘레위기’에는 노예 소유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구절이 있다. 그렇다고 유대교와 기독교가 오늘날 노예 소유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이스라엘 언론들은 중동의 가정 폭력 사례를 들면서 이슬람이 여성 학대를 고무한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들은 이스라엘의 가정 폭력 발생률이 이웃인 이집트와 비슷하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원인을 유대교에서 찾아야 할까?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여성 억압이라는 주장을 처음 퍼뜨린 것은 서방 제국주의자들이었다.

19세기 영국은 이집트에서, 프랑스는 알제리에서 식민 점령과 통치를 정당화할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이슬람으로부터 여성을 구한다고 주장했지만 제국주의자들은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 통치 하에서 여성 교육은 전혀 확대되지 않았고, 1950∼60년대까지 중동의 여성 문맹률은 90퍼센트에 달했다. 중동에서 여성 의무교육이 실행된 것은 식민 통치를 물리치고 독립 정부가 수립된 후였다.

정체성

더구나, 제국주의자들의 변명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제국주의 점령 하에서 왜 평범한 여성들이 무슬림 정체성을 포기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으려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일례로 1958년에 알제리 민족해방 운동 조직은 이렇게 선언했다. “혁명의 첫날부터, 여성들은 시민으로서의 완전한 존엄성을 얻었다 … 갈수록 많은 여성들이 베일을 착용하고 있으며 … [이것은] 그들의 애국심을 증명하는 상징이다.”

베일의 사례를 보면 제국주의자들의 거짓말을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먼저, 각종 ‘베일’은 사실 쿠란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레일라 아흐마드는 《이슬람에서의 여성과 젠더》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고전 고대 시대에는 베일 착용이 왕실과 귀족의 특권이었다. … 그것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여성들의 공공 생활로부터의 은둔을 보여 주는 상징이었다. 오늘날 이란에서 많이 이용되는 베일의 형태인 차도르는 원래 텐트를 의미했는데, 그것의 기원은 부유한 여성들이 여행할 때 천으로 뒤덮은 가마를 이용하는 이슬람 이전의 전통이다.”

근대 이전 시기의 서구에서 무슬림 여성과 베일을 결합시키는 전통은 없었다. 예를 들어, 서구 중세나 르네상스 문학 속의 무슬림 여성은 베일을 쓰고 있지 않았다. 파에게 쉬라지는 《베일을 벗기다》에서 서구 국가들이 중동을 식민지로 삼기 시작하면서 베일을 착용한 무슬림 여성들이 각종 매체에 무슬림 여성의 전형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베일과 단어들》의 저자인 파르자네흐 밀라니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대중 매체들이 베일을 다루는 태도는 미국과 ‘이슬람 세계’(주로 중동 국가들)의 관계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제국주의 시대 이후 중동의 많은 여성들은 식민 통치와 제국주의의 억압에 대한 항의로 자신의 무슬림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베일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베일이 무슬림 여성의 상징이 됐다.

19세기에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로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바로 이런 일이 발생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현상이 단지 여성에게만 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남성들 사이에서도 ‘전통적’ 무슬림 복장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억압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무슬림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식민지 시대에 한정된 경향이 아니었다.

물론 이슬람을 여성 억압의 이데올로기로 이용하려 한 국가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곳에서 이슬람은 제국주의의 억압과 수탈, 권위주의 국가의 등장,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실패 속에서 여성들이 의지할 수 있는 정신적 안식처이자 때로는 그것들에 대한 투쟁의 상징이 됐다.

1920∼30년대 터키에서 무스타파 케말은 자본주의 ‘근대화’를 추구하면서 억압적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슬람을 전근대의 상징으로, 정치적 이슬람 조직들을 반동세력으로 몰아붙였다.

식민지

케말은 1934년부터 베일 착용자를 차별하는 조치를 취했고 그 뒤 터키의 군부 독재 정권들은 공공 장소에서 베일 착용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베일을 착용한 공무원들을 해고하고 학생들을 학교에서 퇴학시키고 의원들을 국회에서 내쫓았다. 그래서 터키에서는 국가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상징 가운데 하나가 베일이었다. 이런 경향은 터키 세속 좌파들의 패배에 따른, 정치적 공백 상황에서 더 확산됐다. 터키 출신의 노벨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의 《눈》은 이런 상황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 이란 국가는 베일 착용을 강제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란의 많은 하층계급 여성들 사이에서 이슬람과 베일 착용은 여전히 일상의 억압을 견디기 위한 자발적인 선택이다. 이란에서는 이슬람에 근거해 여성해방을 꾀하는 ‘이슬람 페미니즘’의 활동이 활발하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시린 에바디도 그 중 한 명이다. 이것은 이슬람을 국가의 억압 이데올로기로 사용하려는 이른바 ‘신정 국가’ 이란에서조차 이슬람을 단지 여성 억압 이데올로기로만 볼 수 없음을 뜻한다.

이집트에서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의 다른 어떤 조직보다 여성이 많이 참가하고 있는 조직이다. 많은 여성들이 권위주의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정치적 이슬람을 택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슬람 정체성은 불균등한 자본주의 발전 속에서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중동의 도시 노동자와 빈민 다수에게 일상의 삶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안식처이다. 많은 여성들은 자본주의가 약속하고 가져다주지 못한 여성 해방 공약(空約)에 환멸을 느껴 독실한 이슬람 신자로 변신했다.

자본주의 발전 속에서 도시 생활은 한편으로는 농촌의 숨막히는 생활로부터의 탈출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위험, 즉 성적 괴롭힘, 노동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 높은 실업률, 외모 지상주의 등의 압력에 노출되는 것이기도 했다. 이것의 극적인 예로, 이집트의 유명한 ‘배꼽춤 무희’들이 자신의 성적 이미지 착취를 지긋지긋해 하면서 독실한 무슬림이 되고 베일을 착용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제국주의자들과 자본주의 발전을 추구한 권위주의 국가들은 여성의 일상적 고통을 이슬람의 탓으로 돌리려 했지만, 이슬람과 여성의 관계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무슬림 여성의 삶에 미친 영향을 이해할 때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