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와 여당은 북 핵실험으로 인한 대중의 안보 불안감을 한미FTA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열우당 정책위의장 강봉균은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으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성사되는 것이 최고의 방책"이라고 말했다. 부총리 권오규도 그 비슷한 주장을 했다.

이 주장들은 집권 내내 반복돼 온 노무현 정부의 실패, 즉 "[한미]협상 과정[은] 북핵 문제로 전전긍긍하는 한국이 미국에 매달리는 형국"서동만, 〈프레시안〉10월 4일치)을 재연하자는 것이다.

사실,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위해 내세운 명분도 북핵 문제 해결이었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미동맹을 통한 한반도 안보 위기 해결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최종 파산했음을 뜻한다.

더욱이, 북 핵실험을 빌미로 한 미국의 제재 압박은 노무현 정부가 주요하게 홍보한 한미FTA 핵심 협상 목표 하나 ―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상품을 꼭 한국산으로 인정받는다"는 ― 를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한미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 한덕수는 "북한의 핵실험이 한미FTA 협상 내용 가운데 하나인 개성공단 문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은 사활적 목표라기보다는 한미FTA 추진을 설득하기 위한 감정적 호소가 짙은 목표였다. 왜냐하면 "현재 시범 단계에 있는 개성공단 사업은 적어도 1단계까지는 한국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었다(송기호, 《한미FTA의 마지노선》, 개마고원).

그럼에도 역설적이게도, 한미동맹을 통한 북핵 위기 해결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한미FTA 추진 논거 중 하나를 허물어뜨린 셈이다.

한편, 강봉균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돼 미국이 우리 나라에 많이 투자하는 것이 … 우리 나라에 투자한 미국 기업들을 보호하는 것과 연결짓는 핵우산 보호와 맞물린다"고 했다.

강봉균의 주장은 세계화론자들이 주장해 왔던 신화, 즉 자유무역과 자유로운 자본 이동 때문에 더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과 흡사하다. "맥도날드가 있는 두 나라는 결코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에만 제1차 걸프전, 나토의 세르비아 전쟁, 러시아의 체첸 전쟁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스와 터키, 중국과 대만, 에콰도르와 페루 간에 소규모 전쟁이나 전쟁 위험이 있었다.

무장한 국가 간의 충돌들은 자유무역 협상과 구조조정 계획만큼이나 현 체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이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은 한미FTA 때문이 아니라 미국 자본주의 자체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일본과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한다.

미국 힘의 한계

북한이 핵실험을 했음에도 미국이 군사 공격을 감행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과의 경제 관계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의 힘과 관계 있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결코 이길 수 없는 게릴라 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전력 소모를 줄이려 해 왔다. 나토의 이름으로 캐나다와 유럽연합을 끌어들여 이 국가들에게 아프가니스탄의 대부분을 넘겨 줬다.

이 때문에 이라크 정복에서 절정에 달한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 외교가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라틴아메리카에서 우고 차베스와 새 좌파의 도전 같은 위기들에 대처하는 능력이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5년 1월에 콘돌리자 라이스가 국무장관이 된 이래 일어난 일들은 미국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라이스는 북한과 이란의 핵 개발 관련 협상에 다른 주요 열강을 포함시켰다(다자주의로 전술적 방향수정). 이 때문에 많은 네오콘들은 부시가 북한과 이란에 "유화적"이라고 불평했다. 다른 한편, 부시의 미사여구는 여전히 미국의 힘을 사용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세계적으로 확산하겠다는 것이다(일방주의).

물론 미국 제국주의의 가용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제2차세계대전은 말할 것도 없고 냉전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미국의 군비 지출은 국민소득 중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미국 국방부가 군사 능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세금을 인상해야 하고 미국 부유층들은 이를 내켜하지 않을 것이다. 또, 동아시아와 유럽의 지배계급들이 미국에 돈을 빌려주지 않을 수도 있다.

요컨대, 오늘날 경제적·지정학적 상황은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과는 무척 다르다. 그 당시와는 달리 미국은 자신의 지도 아래 선진 자본주의 세계와 공조할 수 있는 능력이 감소했다.

따라서 한미FTA를 통한 한미동맹 강화가 경제·안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노무현의 주장 ― "북한 문제로 한미관계에 틈이 많이 벌어졌는데 이걸 메우려면 결국 경제 분야밖에 없다"〈경향신문〉8월 8일치) ― 은 "침몰하는 미국 제국"이라는 난파선에 올라타는 것일 뿐이다.

이 글은 〈진보정치〉296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