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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수정당, 보수언론

이 글은 지난 3월 14일에 ‘다함께’가 주최한 공개 토론회에서 〈한겨레〉 논설위원인 손석춘 씨가 한   강연을 글로 옮긴 것이다. 이 토론회에는 무려 6백50명이 참가했다.

우선,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미국은 여러분의 삶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도 계속 미칠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죠. 지난 1월에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악의 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악의 축”을 몰아내기 위해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부시는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시킨 데 이어 오늘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라크의 후세인을 축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이른바 ‘핵 태세 보고’가 신문·방송에 보도됐습니다. 이것은 북쪽을 어떻게 보느냐, 반북이냐 친북이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미국 〈뉴욕 타임스〉에 윌리엄 새파이어라는 칼럼니스트가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에 소식통을 가지고 있는 그는 최근 칼럼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최근에 작성된 미국 국방성 문건에는 “휴전선에 배치된 조선인민군의 재래식 무기를 주한 미군의 첨단무기로 단숨에 괴멸시키고 평양 근처의 핵 시설을 B-52기가 폭파한다”는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나리오가 어떻게 실현될지는 우리 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미국 대통령 부시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인민군의 재래식 무기를 주한 미군이 공격하면 조선인민군은 당하기만 하겠습니까? 공격하겠지요. 어디를 공격하겠습니까? 미국 본토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주한 미군 기지를 공격할 겁니다. 그런데 주한 미군 기지가 어디 있습니까? 서울 한복판 용산에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서울은 불바다가 되는 겁니다. 평양에 핵 시설과 핵무기가 있는지 없는지 아직 확인된 바 없습니다. 미국은 있다고 주장하고 북쪽 당국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폭파를 한다고 합니다. 만약 평양에 핵무기가 있는데 B-52가 폭격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핵무기가 폭파돼도 미국인은 하나도 다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평양뿐 아니라 남쪽까지 초토화됩니다. “설마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질까?” 하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정권 무너졌죠. 이라크, 필리핀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라크에 대해서는 개전 날짜까지 잡혔다는 말까지 돌고 있습니다. 북쪽도 언제 공격할지 모릅니다. 부시 정권의 성격에 비춰 본다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미국의 패권주의

전혀 실감이 안 나시는 분들을 위해 다른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1910년에 일본 제국주의에 몽땅 빼앗겼습니다. 나중에는 자기 이름, 우리말까지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일본과 우리가 전쟁을 했습니까? 우리가 전쟁에 져서 식민지가 됐습니까? 전쟁 한 번 안 하고 식민지가 됐습니다. 당시 지배 세력이 그냥 도장 찍어 준 겁니다. 그리고 그 때 미국과 일본의 밀약에 의해서 우리는 식민지가 됐습니다. 미국은 필리핀을 먹고 일본은 조선을 먹기로 합의한 겁니다. 우리는 제대로 총 한 번 쏴 보지도 못하고 나라를 넘겨 줬습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당시 조선의 지배 세력들은 부패할 대로 부패했고 무능했습니다. 민중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습니다. 선비, 지식인은 정치는 더럽다며 정치적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 그냥 나라 빼앗긴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욕 타임스〉 칼럼에까지 소개됐는데도 둔감합니다.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프가니스탄’ 되는 겁니다.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보는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이 이 나라, 이 강산에서 그대로 펼쳐지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제기해야 할 이 땅의 정치 지배 세력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언론은 또 어떻습니까? 조선·동아·중앙일보 모두 환영하고 나섰습니다. 대북 포용정책이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부시야말로 현실을 직시하는 리얼리스트라는 찬양까지 나왔습니다. 그것이 한국의 언론입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몇 년 전에 러시아의 인공위성 하나가 고장이 나서 떨어졌습니다. 그게 만약 도시 위로 떨어졌으면 엄청난 파괴와 인명 살상이 있었을 겁니다. 천만다행히도 바다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최고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의 만평은 “제발 평양에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부시가 “악의 축” 발언을 하기 전에 미국을 방문해서 햇볕정책, 포용정책은 한계가 있다고 신랄히 비판했습니다. 주한미군이 우리 남쪽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관계 없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갈 겁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은 나가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주한 미군 기지 주변마다 위안부가 있습니다. 그들은 미군의 성 노리개로 살아가다가 때로 잔혹하게 살해당합니다. 미군 병사들은 여성의 성기에다 코카콜라 병을 집어넣어 살해하는 만행도 저지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한 미군을 심판하지 못합니다. 재판 권한이 없습니다. 일본의 오끼나와에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2∼3년 전에 미군 한 명이 밤에 기지 주변의 집에 들어가 어린 소녀를 겁탈하려다 실패해 붙잡혔습니다. 일본은 어떻게 했는 줄 아십니까? 마을 주민들이 미군 물러나라고 시위를 벌였고, 반미 운동이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일본 언론도 함께 주일 미군에게 문제 제기했습니다. 그래서 주일 미군 사령관이 그 마을에 찾아가 공식 사과했습니다. 그래도 일본은 분이 안 풀렸습니다. 클린턴 대통령도 사과를 해야 했습니다. 우리와 비교해 보십시오. 한국에서 그런 문제를 제기하면 언론과 정치 지배 세력들은 뭐라고 합니까? 반미는 안 된다며 구속하는 게 이 땅의 현실입니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 항의해 여러분의 선배들이 충무공 동상에 올라가서 시위를 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의 대표들과 원로들, 그리고 젊은 대학생들이 치열한 반미 운동을 했기 때문에 부시가 한국에 와서 그나마 여론 무마용으로 “대북 선제공격은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갔습니다.

친미의 뿌리

얼마 전에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에서 “모두 쏴 죽여라”라는 걸 방영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미군의 양민 학살을 다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런데 KBS, SBS, MBC는 하나같이 그런 방송은 안 합니다. 학생들이 주한 미군 철수와 부시의 사과를 요구했을 때,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의 주필들은 뭐라고 했습니까? 철부지 학생들로 치부하면서 “폭력 학생”들은 절대 안 된다고 떠들어 댔습니다. “폭력 학생”은 안 된다고 했던 그 주필과 논설위원과 편집국장 들이 영국 BBC가 고발한 폭력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더욱 서글픈 것은 바로 그런 신문들이 이 나라에서 발행부수 1,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보수정당, 보수언론은 왜 그럴까요? 저는 그 뿌리가 친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일제 때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반미했습니다. 신문에서 미국을 격렬하게 비판했습니다. 미국을 궤멸시키자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교장이었던 김성수는 학도병에 지원하라고 연설하고 다녔습니다. 또, 신문 1면에는 일본 천황 부부의 사진을 크게 싣고 천황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설도 썼습니다. 이런 언론이 민족지라고 여전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해방이 되자 친일파 청산이 가장 긴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한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친일파들은 미군이 상륙한 뒤에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민중과 민족지성을 빨갱이로 몰아붙였습니다. 이건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1946년에 주한 미군 사령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선 민중의 75퍼센트가 사회주의 체제를 원했습니다. 기록으로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사회주의 이야기하면 분위기가 썰렁해집니다. 그만큼 레드 콤플렉스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겁니다. 제가 1984년에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85년에 일본에 취재하러 갔다가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일본공산당 간판이 붙은 육중한 건물을 보고 엄청나게 놀랐습니다. 명색이 학생 운동을 했다는 제가 말입니다. 일본공산당은 일간지 〈아카하타〉(적기)를 발행해 시내 곳곳에 배달합니다. 당원들이 봉고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연설을 합니다. 일본이 무슨 사회주의 국가입니까?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우리는 어때요? 고려대학교 최장집 교수, 한완상 장관조차 빨갱이로 몰려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나 독일 총리 슈뢰더, 프랑스의 죠스팽 총리가 만약에 대한민국에서 살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장기수로 복역하고 있을 겁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그리고 전향하면, 반성문 쓰면 풀어 주겠다고 나올 겁니다. 그러면 어느 신문은 절대 풀어 주면 안 된다고 주장하겠죠.

투쟁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

대학 4학년생들은 지금 청년 실업 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전망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별로 안 보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실업자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일단 결혼을 못 해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가정을 꾸리지 못합니다. 뭐 함께 노숙자가 되겠다면 결혼해도 되겠지만 이건 불가능한 얘기죠. 이게 엄혹한 현실입니다. 여러분이 4년 뒤에 진출할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더군다나 한국의 자본주의는 아무런 사회보장 제도가 없습니다. 유럽에서는 실업자가 돼도 굶어죽지 않습니다. 첨단 의료시설만 이용하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병도 돈이 없어서 치료하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보내는 게 한국 자본주의입니다. 고교평준화도, 의약분업도 “사회주의적 발상”, 빨갱이로 몰아붙입니다. 전교조 선생님한테도 색깔 공세를 폅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청년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주5일 근무제 하자고 싸웁니다. 그리고 노동시간 단축 운동을 벌입니다. 그런 싸움을 벌일 때 학생들이 도와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메랑이 돼 여러분 자신에게 갑니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 주5일 근무제 같은 것이 바로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하루 8시간 일을 하는데 4시간 일을 하면 두 사람이 필요한 거죠. 일자리 나누기입니다. 일자리 늘리기입니다. 실업 문제는 그런 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린 지금 주5일 노동제도 안 돼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학 졸업하고 직장 생활하다가 40대가 되면 전 세계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은 40대가 됩니다. 노동시간이 가장 깁니다. 브라질·아르헨티나·필리핀도 주5일 근무제 된 지 오래입니다. 과로사로 지금도 하루 평균 1.5명씩 숨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작년 11월에 노사정위에서 주5일 근무제 어렵게 타결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인 2000년 11월 7일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는 약속이나 한 듯이 사설을 통해 “시기상조”라고 주장하고 나섭니다. 도대체 뭐가 시기상조라는 겁니까? 과로사로 숨져가고 있는데, 세계 최장 노동시간인데, 40대 최고 사망률인데 말입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이던 1978년에 벌어진 일입니다. 서울 근처 공장[동일방직]에서 노동조합 만들겠다고 여성노동자들이 모였습니다. 법에 보장된 권익을 되찾자고 노조 창립 대회에 참가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건장한 사내들 3명이 한 조가 돼 다가옵니다. 그러더니 양쪽에서 한 명씩 두 팔을 딱 붙잡습니다. 갑자기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가 싶었는데, 한 사람이 병에 준비해 온 인분, 말 그대로 똥과 오줌을 입에 쏟아 붓는 겁니다. 블라우스를 풀어 헤치고 가슴에다 쏟아 붓습니다. 속옷을 당겨셔 거기에다 쏟아 붓습니다. 1978년에 이 땅에서 벌어진 실화입니다. 그 현장에는 경찰도, 기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신문·방송에는 단 한 줄,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한 여성 노동자들 중에는 충격을 받고 정신병원에 실려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경찰은 오히려 여성 노동자들이 산업 평화를 해쳤다며 그들을 체포해 갔습니다. 지금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느 날 회사 사장들이 “노동자들 너무 고생한다.”면서 “우리 다시 이런 나쁜 짓 안 할께.” 하고 안 했을까요? 그런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싸웠기 때문입니다.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서로 힘을 모아 손에 손잡고 싸웠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안 싸웠다면 우린 지금도 노동조합 만들기 위해 그런 수모를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이게 역사입니다. 1978년 당시 대학 캠퍼스 현장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정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2∼3분만 있으면 으레 누군가가 다가옵니다. 사복 입은 40대 형사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일어나서 흩어져야 했습니다. 대학 내에 사복 경찰이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안 그러잖아요. 왜 그럴까요? 박정희가 “나 이제 오래 통치했으니까 민주주의에 위배되지 않게 물러날께.” 하고 물러났어요? 아니거든요. 총 맞아 죽어서 나갔죠. 김재규가 총을 쐈지만, 김재규의 방아쇠를 당긴 건 여러분의 선배들이었습니다. 부산·마산에서 대학생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종신 대통령 박정희더러 물러나라고 외쳤습니다. 학생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특히 부산·마산에서는 학생들이 막 두들겨맞고 피투성이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시민들이 합세했습니다. 합세해서 박정희 퇴진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과 경호실장을 안가에 불러서 술 마시며 대책을 의논합니다. 경호실장 차지철이 탱크로 쓸어 버리자고 이야기합니다. 설마 대통령이 그랬을까? 하지만 박정희는 이미 1970년대 중반에 학생들을 처형한 자입니다. 여기서 ‘처형’은 은유가 아닙니다. 자기에게 물러나라고 했다고 해서 ‘인혁당’이라는 조직 사건 만들어 대법원 판결 바로 다음 날 처형했습니다. 그런 작자가 지금 추앙받고 [박아무가] 그 자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는 이런 세상이 어디 있습니까? 그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조·중·동이 박정희를 찬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재규는 [부마항쟁 때문에 박정희에게] 총 쏜 겁니다. 만약 학생들과 시민들이 아무 소리 안 하고 있었다면 박정희가 어쩌면 지금도 “위대한 민족중흥의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전두환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싸웠기 때문에 물러난 거죠.

노동시간의 역사

모든 역사가 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야 주5일 노동제 이야기하죠. 프랑스는 주4일 노동제, 그리고 일각에서는 주3일제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5일 노동제 된 지 옛날이구요, 주4일인 데도 많습니다. 우린 주5일 노동제 하자고 해도 반대하고 나섭니다. 우리하고 경제 규모가 다르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그 나라에서 주5일제를 도입했을 때가 우리 나라의 GNP보다 낮았을 때였습니다. 한국 자본주의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리는 8시간 노동제가 당연한 거라고 알고 있죠? 당연한 거 아닙니다. 100년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하루 8시간 노동하면서 제발 인간답게 살고 싶다.” 미국의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입니다. 평화적인 집회·시위에 이어 평화적인 행진을 합니다. 미국 경찰은 그런 평화 행진 대열에 발포를 하고 사제 폭탄을 터뜨렸습니다. 경찰 당국은 노동조합 지도부가 혼란을 조성하기 위해서 자작극을 벌이고 사제폭탄을 터뜨렸다고 발표합니다. 언론은 이를 대문짝만하게 보도합니다. 지금 〈조선일보〉를 떠올려 보면 됩니다. 그래서 경찰은 노동자들을 잡아갔습니다. 미국의 사법부는 사형 판결을 내렸고 노조 지도부는 사형당했습니다. 진실은 7년 뒤에 밝혀졌습니다. 사형 집행 뒤에 미국의 지배 세력은 이제 8시간 노동제 주장을 완전히 잠재웠다고 샴페인을 터뜨렸죠.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8시간 노동제는 오히려 전국으로 퍼져 갔습니다. 노동자들이 나선 겁니다. 유럽으로도 퍼져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5월 1일 메이 데이의 기원입니다. 그러나 그 때 노동자들이 아무도 싸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8시간 노동제는 지금도 안 됐을 겁니다. 역사는 그렇게 발전해 온 겁니다. 싸우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1978년과 2002년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나아졌죠. 그러나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아직도 우리는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싸우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도 입시 지옥에 시달리고 40대 사망률이 높은 나라에서 살게 되는 겁니다. 싸우지 않으면 안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