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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대선 - 산디니스타의 재집권?

11월 5일 니카라과 대선에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이하 산디니스타)의 다니엘 오르테가의 당선이 확정적이다. 오르테가 당선의 핵심 요인은 심각한 경제난과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였다.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의 거리에는 거지들이 우글거리고 맨발의 어린이들이 쓰레기로 가득 찬 시궁창에서 뒹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올해 초 니카라과 교육부는 적어도 80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파이낸셜 타임스〉11월 2일치.)

국민의 약 80퍼센트가 하루 2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실업·불완전고용 비율이 거의 50퍼센트에 이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두번째로 가난한 나라"의 빈민들이 "야만적인 자본주의" 종식을 주창한 오르테가를 지지한 것이다.

또, 미국의 집요한 오르테가 당선 방해 공작도 오히려 역효과를 낸 듯하다.

미국은 오르테가가 당선해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와 공동 보조를 취하는 것을 가장 우려했다. 그래서, 오르테가가 당선하면 니카라과 출신 미국 이민자들의 본국 송금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둥 노골적인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최근 라틴아메리카의 거센 반미·반신자유주의 '바람'때문에, 흔히 미국의 대외정책 기구 노릇을 하곤 했던 미주기구(OAS)조차 미국에게 니카라과 대선에 개입하지 말라고 볼멘소리를 할 정도였다.

이에 맞서 오르테가는 미국에 반대하는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올해 발효된 중앙아메리카자유무역협정(CAFTA)의 재협상을 주창하며 인기를 끌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오르테가의 당선은, 크게 볼 때, 미국의 패권 정책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에 반대하는 대중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오르테가 스스로 인정했듯이, 오늘날의 오르테가와 산디니스타는 1979년 혁명 당시의 오르테가·산디니스타와 사뭇 다르다.

이번 선거에서 오르테가는 사유 재산의 몰수 같은 과거 산디니스타의 급진적 정책들을 포기했다. 그는 자신이 더는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은 1979년 혁명의 지도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니카라과의 만연한 빈곤을 완화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자신의 주된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런 태도 변화를 잘 보여준 쟁점 중 하나가 낙태 문제였다.

지난 8월 말 산디니스타혁신운동(MRS)의 대선 후보 에드문도 하르킨이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 경우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종류의 낙태는 니카라과에서 1891년 이래로 합법적이었다.

그러나 가톨릭 종교계가 하르킨을 비난했고, 이에 자극받은 다른 후보들은 낙태 반대를 천명했다. 오르테가도 산디니스타의 기존 입장을 뒤집고, 치료 목적의 낙태조차 불법화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도록 도와 줘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또, 역겨운 보수 우익 인사들과 오르테가의 '동맹'도 '진일보'했다. 이미 오르테가는 부패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 대통령 아르놀도 알레만과 동맹을 맺어 현 대통령 엔리케 볼라뇨스에 대항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나아가 과거 악명높은 콘트라 반군 대변인 출신의 하이메 모랄레스를 자신의 부통령 후보로 선택하고 그의 집을 선거운동본부로 사용했다.

또, 오르테가의 선거 동맹 세력 중에는 YATAMA라는 원주민 정치 조직뿐 아니라 기독교민주연합(UDC)·기독교통합운동(MUC)·민중보수동맹(APC)과 자유당이나 보수당에서 떨어져 나온 소규모 세력들, 심지어 옛 소모사 추종자들도 있다.

오르테가의 이런 변신과 우경화 때문에, 1990년 대선에서 오르테가를 패배시킨 비올레타 차모로의 아들이자 보수적 주간지의 편집자인 카를로스 페르난도 차모로는 오르테가의 승리를 그다지 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페르난도 차모로는 오르테가가 실용주의자이며, 따라서 미국을 놀라게 할 만큼 너무 급진적인 정책은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파이낸셜 타임스〉11월 2일치.)

진실은 다니엘 오르테가가 더는 대중 운동의 지도자가 아니라 권력욕에 눈이 먼 정치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평범한 니카라과인들을 빈곤에 빠뜨린 부패하고 수치스런 정치인들과 공공연하게 동맹을 맺는 것은 혁명적 해방 전선을 대표한다는 주장을 조롱하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