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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왕래가 보장돼야 한다

남북 공동선언 3항 ―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 에 따라 8월 15∼18일에 이산가족 방문단이 남북한을 방문했다. 서로 얼싸안으며 울음을 터뜨리고야 마는 이산 가족의 눈물 속에는 지난 50년 동안 사무친 고통이 스며 있었다. 세계 언론들은 세상 어느 곳에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있겠느냐고 보도했다.

지난 1985년에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이 성사돼 남측 35가구, 북측 30가구의 이산가족 해후가 이뤄졌지만 그 뒤 남북 가족간 연락은 다시 완전 두절된 상태였다. 그나마 이것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20년간 70여 회의 회담을 진행한 유일한 성과였다. 1991년 12월에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 제18조1)에 이산가족 문제 해결이 명문화돼 있지만 그 뒤에도 기업주 등 유명 인사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진척이 전혀 없었다. 거액의 돈을 들여 이산가족 주선 단체를 통해 제3국에서 비공식 상봉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이마저 연락을 지속적으로 주고 받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상봉 주선 수수료는 5백 달러에서 1만 달러이고, 서신 교환을 하는 데만 2천5백∼3천 달러가 든다. 상봉 비용이 워낙 거액이라 "실제 소요 비용을 확인하고는 신청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그런데 올해 남북간 합의로 50년 헤어짐의 고통 끝에 피붙이를 만날 수 있게 된 사람들은 고작 1백 명뿐이었다. 가족 상봉 신청을 낸 70세 이상 고령 이산가족이 매달 1백 명씩 만나도 50년이 걸릴 정도로 희망자가 많은데 말이다. 1백 명 규모는 지난해 이산가족 주선단체를 통해 제3국에서 상봉한 195명보다도 훨씬 적은 수치였다.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강원도 '아바이 마을' 주민들은 모두 고향 방문을 신청했지만 단 한 명도 선정되지 못했다. 이번에 생사를 확인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38명은 고향 방문단에서 제외됐다.

생색내기

이산가족이 얼마나 되는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정부가 이산가족 문제를 대북 정책의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고 밝혀 왔지만 정부는 이산가족 실태나 상봉 희망자 수 등 기본적인 통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 접촉에서 남쪽 대표단은 남한 거주 이산가족은 767만 명이며, 이산 1세대가 123만 명이고 이 가운데 이산가족 문제 해결이 가장 절박한 고령 이산가족의 수가 약 69만 명이라고 북쪽에 통보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1970년 호적조사 기준으로 인구 증가율 40.43%를 감안한 추정 수치일 뿐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이산가족이 이제 너무 고령이어서 죽기 전에 상봉을 이루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이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생색내기에 관심이 더 많았다. 〈조선일보〉는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에 "정치성"을 갖고 있고 "체제 선전"에 이용하려 한다고 비난했지만 이 점에서는 북한 당국이나 남한 당국이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이산가족 상봉단 선정 과정에서 정부가 '남북관계와 정부의 대북정책을 잘 아는 실향민'을 비밀리에 포함시키려 했다가 7월 5일 긴급하게 이를 취소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비밀 추진이 들통난 것이다. 이 사실이 폭로되자 통일부 인도지원국장 홍양호는 "북한 이산가족 방문단이 남한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로 구성된 것을 감안해, 우리도 남북관계나 대북정책을 잘 아는 실향민들이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실토했다.2)

또한, 남한 정부는 그 동안 월북자·납북자 문제는 아예 제쳐 버려 왔고, 그 가족들은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온갖 불이익을 당해 왔다. 남북 해빙 분위기 속에서도 이들의 고통은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월북자는 20여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월북자 가족들은 언제 다시 남북 관계가 경색될지 모르고 그렇게 되면 또다시 피해를 당할까 봐 이산의 슬픔을 속으로 삭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도 국군 포로, 북파 공작원들은 존재 자체가 여전히 은폐돼 있다.

북한 당국의 태도도 이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는 남한측이 요청하는 상봉 대상자가 월남한 가족이기 때문에 남한의 월북자 가족과 비슷한 문제가 있다. 그래서 북한은 그 동안 이산가족 상봉 문제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었고, "이산가족 문제는 정치적 고려에서 나온 정치적 문제"라는 태도를 취해 왔다. 이번에 가족을 만나러 서울로 온 방문단은 전원이 월북자 출신이고 유명 인사가 10여 명이나 포함돼 있다. 북한 당국은 정주영처럼 북한 출신 기업인들의 방문은 적극 추진하지만, 평범한 사람들 다수가 자유롭게 가족을 만나는 데는 남한 정부와 꼭 마찬가지로 소극적이다.

이산가족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때에 자유롭게 만날 수 있어야 하고, 지속적인 연락을 취하며 언제든지 상호 방문할 수 있어야 한다. 이산가족들은 고향방문단 같은 '이벤트성' 행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번 이산가족 방문은 방문자 수가 너무 적었을 뿐 아니라 만남의 방식과 횟수 등 통제도 심해 뭇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드는 사정이 한둘이 아니었다. 남북한 당국은 이번 고향방문단이 특정 장소에서 만나도록 허용하고 고향도, 가정도 방문하지 못하도록 했다.

지난 7월 통일부장관 박재규는 "장기적으로 이산가족은 남이든 북이든 원하는 곳에서 결합할 수 있다"고 했다가 오히려 지탄을 받았다. 이 발언에 대해 청와대는 "남북기본합의서에 있는 것을 언급했을 뿐 먼 장래의 일"이라고 서둘러 얼버무리며, "사려 깊지 못해 나온 사단"이라고 노골적인 불쾌감을 나타냈다. 이것도 부족해 김대중이 직접 박재규에게 전화를 해 신중하라고 질책했다.

탈북자

이산가족뿐 아니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남과 북을 자유롭게 여행하고 거주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1990년에 통일된 독일은 1972년부터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로 상호 방문의 여건을 개선했고 우편과 통신 교류도 허용해 왔다. 그런데 남북한 당국은 입으로는 화해와 교류와 협력을 얘기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유 왕래와 주민 접촉을 막는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은 제한된 구역만 허용해 남북한 주민들의 접촉이 없게끔 하고 있고, 신원조회를 통해 부적격자를 솎아내고 있다. 올해 안에 추진될 예정이라는 개성 관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뒤 경의선 복원이 남북 연결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이것을 타고 자유롭게 남북을 넘나들면 왜 안 되는가? 휴전선 부근 지뢰 제거와 경의선 복원은 중국 시장을 겨냥한 수송로로만 쓰이지 말고 평범한 사람들의 자유 왕래를 위해서도 이용될 수 있어야 한다.

자유왕래의 견지에서 보면 탈북자들이 원하는 곳에 가서 살 자유도 보장해야 한다. 탈북자 지원 단체인 (사)좋은 벗들에 따르면 탈북자는 약 30만 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은 지금껏 탈북자들을 잡아다가 처벌하고 있다. 중국은 김정일의 중국 방문을 앞둔 올해 5월 초에 탈북자 단속을 강화해 수천 명을 강제 송환했다고 홍콩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가 보도한 바 있다. 지난 5개월 동안에 두만강 국경을 통해서만 약 5천 명의 탈북자가 북한-중국 합동 탈북자 검거 작전에 의해 북한으로 송환됐다. 이 신문은 다른 국경을 통해서도 비슷한 인원이 송환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남한 당국도 탈북자에 대해 위선적인 선별 수용 정책을 펴 왔다. 남북 정상회담이 발표되자 언론에서는 북한 경제가 이제 살아나기라도 한 양 보도하고 있지만, 북한 당국은 8월 초에 배급량을 더 줄였다. 식량을 구하러 국경을 넘은 사람들은 원한다면 남한에 와서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남북한 정부는 자본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투자하는 것은 허용하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출입국은 철저하게 규제하고 있다. 남북한 당국이 화해와 협력 그리고 통일을 얘기하려면 최소한 자유왕래를 허용해야 할 것이다.

1) 18조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자유로운 서신거래와 왕래와 상봉 및 방문을 실시하고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실현하며, 기타 인도적으로 해결할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다.

2) 〈조선일보〉, 2000년 7월 6일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