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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되는 레바논의 정치 위기

지난 11월 22일 레바논 산업부 장관 피에르 제마엘이 암살당했다. 레바논의 기독교 권문세가 출신인 제마엘은 오랫동안 레바논의 기독교 우익 진영에서 득세했던 팔랑헤 당의 지도자였다.

제마엘의 죽음은 시니오라 정부와 헤즈볼라가 이끄는 반정부 운동 사이의 갈등이 한창 고조될 때 일어났다.

지난 7월 저항 운동이 이스라엘의 침략 시도를 패퇴시키고부터 레바논 정치는 시니오라가 이끄는 우파 정부 진영과 반정부 진영(헤즈볼라, 상대적으로 작은 시아파 정당인 아말, 공산당, 퇴역 장성 미셸 아운의 기독교계 정당 자유애국운동 등이 포함된)으로 양극화했다.

이러한 추세는 헤즈볼라가 정부에서 철수하기 전에 주도하던 야당연합이 ‘거국 내각’ 구성을 요구하면서 더욱 심화됐다. 11월 초에는 친 헤즈볼라 성향 장관 6명 전원이 정부의 거국 내각 구성 거부에 항의해 사퇴했고, 그 뒤로 헤즈볼라 지도자들은 대규모 정권 퇴진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정부 진영이 주장하는 거국 내각 요구는 지난 70여 년 동안 레바논 정치를 지배해 온 종파적·억압적 지배 체제의 변화를 뜻한다.

이 체제의 골간은 1930년대에 레바논을 식민 통치하던 프랑스가 세웠는데, 소수파인 기독교 세력과 극소수 권문세가의 수중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게 그 목적이었다.

비록 1990년 초에 부분적으로 수정됐지만, 이 체제의 종파적·억압적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올 여름 저항 운동의 승리로 인한 대중의 자신감 상승과 종파간 단결 정서 덕분에 드디어 대중 투쟁을 통해 이 체제를 끝장낼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났다.

그러나 제마엘의 죽음은 전전긍긍하던 우파들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했다. 사건 직후 부시도 아무 근거 없이 “이란과 시리아가 배후에 있다”고 주장하며, 시니오라 정부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또, 미국은 시니오라 정부에 대한 군사 지원 확대 방침을 발표했다.

제마엘 암살 여파로 반정부 시위들은 일단 연기됐다. 반면, ‘3월 14일 운동’ ― 레바논 연정 내 친미 정당들의 연합으로, 지난해 이른바 ‘백향목 혁명’의 핵심 배후 세력이었다 ― 은 레바논의 부패한 종파 정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지지 세력을 결집시킬 짬을 얻었다.

11월 25일 시니오라 정부가 2005년 하리리 전 총리 암살 사건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의 조사를 승인함으로써 이제 정부와 헤즈볼라가 이끄는 반정부 세력 사이의 갈등은 더 격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서방과 레바논 우익은 하리리 암살 사건을 시리아·이란 비난과 헤즈볼라 공격에 이용해 왔다.

헤즈볼라는 내각의 이러한 결정을 거세게 비난하며 현 내각이 정당성을 잃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 헤즈볼라 지도자들은 방송에 출연해 1주일 동안의 제마일 추도 기간이 끝나는 대로 언제든 대규모 시위를 벌일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금요일에는 헤즈볼라 지지자 수백 명이 도로를 점거한 채 타이어를 불태우며 시위를 벌였고, 헤즈볼라 지도자들의 만류 끝에 점거를 풀었다.

헤즈볼라의 공언대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다면 우익의 대응에 따라 심각한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난 여름 쓴맛을 본 세력들 ―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레바논의 친미 우익 ― 이 이 위기를 이용해 어떻게든 저항 운동에 보복하려 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