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다큐멘터리 〈러시아 혁명〉[이하 〈MBC 다큐〉]은 “20세기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전체 5부 중 4부가 방영됐다. 일부 재연 장면들은 다소 우스꽝스럽지만, 쉽게 접하기 힘든 당시 자료 화면들 덕분에 이 시리즈는 매번 볼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심각한 오류들도 많다. 예컨대, 2부에서 제헌의회 해산을 레닌이 민주주의를 불신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것은 사실과 맞지 않다. 제헌의회 해산은 민주주의에 대한 레닌의 불신 때문이 아니라 소비에트 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 간의 모순 때문이었다.

볼셰비키는 원래, 혁명 전부터 제헌의회 구성을 찬성했다.

그러나 주로 지방의 보수적 농민층의 지지에 힘입어 사회혁명당이 의회의 다수파 정당이 됐다. 그들은 소비에트 체제에 매우 적대적이었고, 이에 고무받은 부르주아?지주 들도 소비에트가 아니라 제헌의회로 권력이 집중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래서 볼셰비키는 사회혁명당 좌파의 동의 아래 제헌의회를 해산했다. 대중 저항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안도의 한숨이 전국을 지배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이 점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또, 볼셰비키와 ‘온건’ 사회주의자들(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우파) 간의 갈등도 같은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레닌이 그들을 쫓아낸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노동자 권력 수립에 반대해서 스스로 소비에트 정부에서 철수했다. 그들은 심지어 볼셰비키가 적군을 무장해제하고 케렌스키 군대가 저항받지 않고 수도에 입성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내전을 다룬 3부는 오늘날 학계의 유행을 따라 객관적 상황보다는 볼셰비키의 ‘전시 공산주의’ 때문에 혁명이 ‘타락’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내전과 연관된 각종 끔찍한 사건들 ― 백색 테러에 맞선 적색 테러, 엄청난 인플레이션, 굶주림, 강제 곡물 징발, 적군 내 군사적 규율의 강조, 공장 내 1인 관리자 제도 도입, 크론슈타트 반란 진압 ― 은 분명 피할 수만 있었다면 좋았을 사건들이다.

그러나 그런 사건들이 일어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한 노동자?농민과 볼셰비키에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막고 구체제를 복귀시키고자 학살을 감행한 백군과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있는가?

핵심 문제인 ‘전시공산주의’라는 것도 실인즉 원래는 볼셰비키의 방침이 아니었다. 1918년 3~4월에 볼셰비키의 정책은 사기업을 정부가 감시?감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5월 초 내전이 발발하고 자본가들이 이에 호응해 직장을 폐쇄하자 기아 등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먼저 공장을 접수하고 정부에 국유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또, 독일과의 강화조약인 브레스트-리토프스크 협정에 따른 막대한 배상 책임을 피해 보고자 6월에 국유화가 가속된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도 〈MBC 다큐〉는 서방 제국주의의 개입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처리한다. 그러나 서방의 지원이 없었다면 백군은 1918년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MBC 다큐〉의 설명과 달리 “볼셰비키의 실정”이 아니라 서방 제국주의의 개입 때문에 내전에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희생됐다.

〈MBC 다큐〉가 묘사한 볼셰비키의 이른바 ‘잔인한’ 정책들은 백군들한테서 노동자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처들이었다. 만약 서방 제국주의의 개입이 없었다면 그 중 대다수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당시 혁명 러시아는 독일과의 강화 조약으로 핵심 산업 단지를 잃었다. 이 때문에 철강 생산능력의 80퍼센트, 석탄 생산의 90퍼센트, 그리고 전체 산업 기계와 장비의 절반을 잃었다. 연료와 원료 부족으로 공장이 폐쇄되고 대량 실업이 발생했다. 수많은 선진 노동자들이 굶어죽거나 백군과 싸우다 죽었다. 생존한 노동자의 경우에도 생산 체제 붕괴와 귀농에 따른 탈계급화가 광범하게 일어났다.

‘전시공산주의’는 레닌이나 볼셰비키 이데올로기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이런 엄혹한 상황에 대처하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1921년에 레닌은 이렇게 지적했다. “전쟁과 파괴가 ‘전시공산주의’를 우리에게 강요했다. 이 정책은 프롤레타리아의 경제적 임무와 걸맞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은 임시 조처일 뿐이다.”

〈MBC 다큐〉는 적군이 강제적 조처들에 따라 건설되고 순전히 군사적 편의에 따라 운영된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적군 건설은 훨씬 더 복합적 과정이었다. 사실, 단순히 군사적 조처만으로는 훨씬 더 잘 훈련받고 서방 제국주의가 제공한 더 좋은 무기로 무장한 백군과 싸워 이길 수 없었다. 백군과 맞서려면 최대한 많은 대중의 혁명적 열정에 호소해야 했다.

따라서 적군은 단순한 군사 기구가 아니라 정치 세력이어야 했다. 적군은 계급적 기반을 따라 조직됐고, 짜르 시대와 달리 병사들을 규율로만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발적?혁명적 열정을 고무하기 위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1920년 말에는 3천 개의 적군 학교, 60개의 아마추어 극장과 도서관이 있었다.

또, 볼셰비키는 일부 짜르 시대 장교들을 복귀시키면서도 대중이 증오하는 가장 악질적인 분자들을 민주적으로 솎아냈다. 볼셰비키는 적군 창설 과정에서 복귀 예정인 짜르 시대 장교들의 명단을 공표했고, 시민들은 10일 동안 임명돼서는 안 되는 장교들을 선택할 수 있었다.

또, 〈MBC 다큐〉는 볼셰비키 정권이 내전 내내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처럼 묘사한다. 대중은 단지 백군이 더 싫었기 때문에 볼셰비키를 용인했다는 것이다. 분명히 다수의 농민들은 그랬다.

그러나 만약 볼셰비키가 단지 수동적인 대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면 어떻게 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MBC 다큐〉가 묘사한 강제적 수단으로? 그러나 강제와 공포 조처로 말하자면 볼셰비키는 빅토르 세르쥬가 “인간 백정”이라고 묘사한 백군들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만약 볼셰비키 정부가 노동계급의 지지 없이 강제에만 의지했다면 백군보다 먼저 무너졌을 것이다. 억압에만 기초해서 내전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노동자들이 볼셰비키를 지지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노동자 정당(주요하게 멘셰비키)이 혁명을 저버린 것도 한몫 했지만 또한 2월과 10월 혁명을 거치면서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이 급격하게 고양된 것이었다. 또, 당시 노동자들의 파업과 소요는 볼셰비키에 반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대부분 배고픔 때문이었다.

그래서 1919년 7월에 영국 전쟁장관조차 이렇게 말했다. “볼셰비키 정부의 안정성을 테러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볼셰비키가 가장 위험에 처한 듯했을 때, 콜차크[주로 백군부대]에 저항하는 강력한 반격이 시작됐고 콜차크는 아직도 후퇴중이다. 여기에는 테러나 순종이 아니라 열정에 가까운 무언가가 있다. 러시아인들 다수가 현재 러시아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레닌과 볼셰비키는 혁명의 국제적 확산 없이는 후진국 러시아의 노동자 국가가 유지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들에게 러시아 혁명은 국제 혁명의 도화선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MBC 다큐〉는 이 문제를 전혀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물론 〈MBC 다큐〉는 볼셰비키가 조선을 포함해서 여러 나라의 민족해방 운동을 지원한 사례를 보여 준다. 그러나 혁명의 국제적 확산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독일 혁명을 잠깐 스치듯 다룬 것은 정확하지 않다. 만약 독일에서 노동자 혁명이 성공했다면 러시아 혁명의 운명과 내전의 전개 방향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아쉽게도 4부도 혁명의 국제적 확산 문제를 계속 무시했다. 트로츠키와 스탈린의 ‘국제 혁명이냐 일국사회주의냐’ 논쟁을 다룰 때도 트로츠키를 이상주의자로 스탈린을 현실주의자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혁명의 국제적 확산이 실패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이 아니었다. 서구 혁명은 실제로 1918-20년에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바바리아, 이탈리아 등지에서 일어났고, 그것이 실패한 것은 한편으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배신과, 다른 한편으로 신생 공산당의 미숙함 때문이었다.

〈MBC 다큐〉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트로츠키와 스탈린의 투쟁에는 1925∼27년 중국 혁명의 전망을 둘러싼 논쟁이 얽혀 있었다. 당시 중국 혁명의 실패는 불가피했던 것이 아니라, 스탈린이 주도한 코민테른이 단계혁명론에 따라 노동자의 혁명 운동을 억누르고 국민당이 주도하는 부르주아 혁명을 헛되이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국민당은 급진적 노동자·농민 들을 학살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중국으로 노동자 혁명이 확산될 가능성이 사라졌다.

그 뒤 비슷한 일이 1930년대 독일?스페인?프랑스에서 반복됐다. 이들 모두 〈MBC 다큐〉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

반면에 4부는 선진국과 경제적?군사적 경쟁을 위해 시작된 스탈린의 강제 공업화 과정과 그 끔찍한 결과들은 잘 다루고 있다. 스탈린이 공업과 군사력을 발전시키려 농민들의 부를 어떻게 빼앗고 노동자들을 어떻게 착취했는지를 역사가뿐 아니라 생존자들의 진술과 자료 화면을 동원해 매우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MBC 다큐〉는 스탈린이 작업장에 성과급 제도, 음주 제한, 지각 처벌 등 “자본주의의 고전적 노동 통제 방법”을 도입한 것을 묘사하면서도 스탈린 치하의 소련을 계속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당시 소련 사회의 생산 조직 방식이 자본주의적이었다면 소련은 자본주의가 아니었을까? 물론 서방 자본주의와 달리 국가 관료들이 노동자들을 국가를 통해 집단적으로 착취?억압하는 종류의 자본주의 말이다.

이런 관점으로 스탈린 ‘혁명’을 보면 이것이 사실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부활시킨, 오히려 반혁명임을 알 수 있다. 〈MBC 다큐〉는 다루지 않았지만, 스탈린은 그런 단절을 위해 1930년대 중반 고참 볼셰비키들을 대거 숙청해야 했다.

따라서 10월혁명을 성공시킨 레닌과 국가자본주의적 반혁명을 이끈 스탈린 사이에는 질적으로 완전한 단절이 존재하는 것이다. 〈MBC 다큐〉는 이러한 러시아 혁명의 진실을 놓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