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스터디 그룹 보고서〉[이하 〈보고서〉]는 부시 정부 대외정책의 전면 수정을 요구했다. 〈보고서〉는 “이라크는 중동뿐 아니라 전 세계가 미국을 어떻게 여길 것인가를 결정할 중요한 변수다. … [이라크 상황이 악화되면] 주변국이 개입할 수 있고, 알-카에다의 활동 범위가 넓어질 것이고, 미국의 세계적 위신이 추락할 것이고, 미국인들의 내분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가장 논쟁적인 것은 이란·시리아와 협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이라크 문제가 중동 전역의 불안정의 중심이고 이런 불안정이 이라크를 넘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급진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런 사태 전개를 ‘봉쇄’하려면 이라크·팔레스타인·레바논 문제들에 모두 연루돼 있는 이란과 시리아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급진화

〈보고서〉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중동 각국의 급진화가 서로 연결돼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일례로, 〈보고서〉는 레바논 전쟁에서 헤즈볼라가 주도한 민중 저항으로 이스라엘이 패배한 뒤 알-사드르 지지율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중동 전역의 이런 급진화를 ‘봉쇄’하는 방안으로 〈보고서〉는 이란·시리아와의 타협을 제시한다. 이것은 베트남 전쟁 당시 닉슨 정부가 중국과 타협한 것에 비견할 만한 제안이다. 당시 미-중 외교관계 수립은 남베트남의 친미 정권 붕괴를 막지 못했지만, 급진 세력의 승리가 인근으로 ‘도미노처럼 확산’하는 것을 봉쇄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보고서〉의 궁극적 의도는 이란·시리아가 중동 지역에서 반제국주의 세력을 후원하기보다는 미국과 타협해 반제국주의 세력들을 적당히 통제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라크 스터디 그룹의 계산은 타협을 통해 불안정을 진정시키면 미군 ‘재배치’를 통해 미군을 재편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라크에서의 완전 철군은 배제하고 있다.

역설이게도, 그런 재편의 궁극적 목표는 이란 같은 국가들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규모 지상군이 이라크에 발이 묶여 있으면 북한이나 이란 등 다른 지역에서 병력을 동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차기 공화당 유력 대선 후보인 존 매케인이 〈보고서〉의 제안에 격렬하게 반대하며 네오콘을 포함한 우파 진영을 결집하고 있는 덕분에 부시 정부는 다소 덜 곤혹스럽게 〈보고서〉의 주요 권고들을 거부할 수도 있는 운신 폭을 얻었다.

재배치

이들 우파와 부시 정부의 반대에도 이라크 스터디 그룹의 ‘현실주의자’들만큼이나 현실적 이유가 있다. 미국이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인정하면 그것은 미래에 커다란 지정학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이란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 위기를 이용해 중동 지역에서 자신의 위신을 높여 왔다. 이란은 〈보고서〉가 발표되자마자 잽싸게 걸프만(灣)의 친미 국가들에게 미국을 배제한 포괄적 안보조약 체결을 제안했다.

걸프만 국가들이 이 제안을 거부했지만, 미국이 이란의 영향력을 인정한다면 이들이 이란과 안보 협정을 맺을 가능성이 커지고, 이는 미국의 중동 패권을 잠식할 것이다. 매케인과 네오콘들은 지금 필요한 것은 이라크 병력 증파와 이란·시리아 압박 강화라고 주장한다.

주류 언론을 보면 〈보고서〉와 매케인-네오콘의 대안들이 미국 정치권에서 서로 겨루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어느 쪽도 주류 정치권에 흡족한 대안으로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이런 논쟁에서 배제된 대안이다. 대다수 미국인과 이라크인들은 점령군의 완전하고 즉각적인 철군을 바란다. 그러나 미국 지배자들의 ‘다양한’ 견해들에는 이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

결국 관건은 이라크와 중동의 저항뿐 아니라 미국 반전 여론과 반전 운동이 미국 지배자들에게 베트남 전쟁 때처럼 쓴 맛을 보여 줄 것인가다. 지배자들의 분열은 운동이 성장하기에 좀더 유리한 토양을 만들 수 있다. 이라크 스터디 그룹의 보고서는 그런 분열을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