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 칼럼을 시작하며 말했듯이, 마르크스주의의 출발점은 추상적 철학이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결단이자 그런 변화의 주체가 노동계급임을 확인하고 노동계급의 투쟁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그런 출발점에서 더 나아가 일관된 철학적 견해를 순식간에 발전시켰다. 마르크스의 철학적 견해는 그 전의 모든 철학을 바탕으로 해서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철학적 견해를 흔히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부른다.(비록 마르크스 자신은 그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것이 유물론적인 이유는 물질적 세계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과 정신보다 물질이 선행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물질적 생활 조건이 인간의 의식과 사상을 좌우하지 그 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변증법적 유물론은 인간의 역사가 예정된 결과를 향해 자동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취급하는 기계적 유물론이나 숙명론적 결정론이 결코 아니다.

변증법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철학 용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대화, 즉 상반된 주장의 충돌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사상을 변증법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18세기 말에 프랑스 대혁명에서 영감을 얻은 헤겔은 더 발전된 변증법적 방법을 사용해 인간의 의식·사상의 역사 전체가 내적 모순을 통해 발전한 것이라고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헤겔의 변증법은 여전히 관념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받아들이고 변모시켜 그것에 유물론적 기초를 놓았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든 자연의 역사든 역사의 원동력은 상반된 사상이나 개념의 충돌이 아니라 상반된 물질적·사회적 세력의 충돌이라고 생각했다.

유물론

변증법의 철학적 출발점은 우주의 삼라만상이 운동하고 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과학적 사실로 확립돼 있고, 심대한 정치적 함의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 “여러분은 이런저런 것들을 결코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인종차별·불평등·지배자들 등등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따위의 말을 우리가 얼마나 자주 듣는지 생각해 보라 ― 철학적 함의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변화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발전시킨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유력한 사고방식은 보편적 변화의 원리에 근거하지 않고 고정된 상태나 ‘사물’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고방식의 기본 공리는 동일률(A는 A이다)과 모순율(A는 A임과 동시에 A가 아닐 수는 없다)이고, 여기서 삼단논법이라는 그럴 듯한 결과가 나온다. 삼단논법의 예를 들어 보자.

모든 새는 깃털이 있다

백조는 새다

그러므로 백조는 깃털이 있다

이 형식 논리학은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꽤나 훌륭하고 인간의 실제 생활에서 아주 유용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형식 논리학은 변화를 배제한다는 한계가 있다. 변증법적 논리학은 ‘사물’이 아니라 과정, 즉 생성 과정과 사멸 과정에서 시작함으로써 형식 논리학을 뛰어넘는다. 변화 과정을 형식 논리학의 공식에 대입하는 순간 모순이 제기된다. 만약 A라는 상태(예컨대, 낮)가 B라는 상태(밤)로 바뀌려면, 그것은 A이면서도 A가 아닌 또는 A이기도 하고 B이기도 한 국면(황혼)을 거쳐야 한다.

이런 통찰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변화 과정을 반영하(고 분석하)는 변증법의 원칙들을 발전시켰다.

첫째, 현존하는 ‘사물’이나 ‘상태’는 모두 대립물의 통일이자 투쟁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그런 상태를 유발하고 유지시키는 힘과 그런 상태를 해소하거나 변모시키는 힘이 일시적으로 균형이나 평형을 이룬 순간이다. 둘째, 변화 과정은 모두 기존 상태 안에서 점진적 변화나 양적 변화가 누적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런 변화가 어느 순간 질적 변화로 바뀌고, 그리 되면 그 상태의 본질도 바뀐다. 셋째, 모든 변화 과정에서 변화를 유발하는 ‘부정적’ 힘이나 혁명적 힘 자체가 변모하거나 ‘부정’돼서 새로운 상태, 새로운 대립물의 통일이 나타난다.(엥겔스는 이를 두고 ‘부정의 부정’이라고 불렀다.)

부정의 부정

분명히 이 모든 것은 매우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사회 변화 과정, 특히 혁명적 변화 과정을 분석하고 완성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마르크스의 역사이론 전체가 변증법을 적용한 사례다. 역사는 일련의 생산양식(고대 사회, 봉건제, 자본주의 등)으로 이뤄진다. 각각의 생산양식은 수백 년씩 지속되고 겉보기에는 매우 안정적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대립물의 통일,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균형과 적대적 계급들 사이의 균형이다. 생산력의 점진적인 양적 변화는 생산관계와 충돌하게 되고, 계급투쟁의 균형은 이윽고 혁명으로 폭발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낡은 질서는 전복되고 새로운 사회 형태가 나타난다.

또 다른 중요한 사례는 제1차세계대전에 대한 레닌의 반응이다. 독일 사민당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사회주의 정당들이 전쟁을 지지한 것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레닌은 헤겔의 저작들을 다시 읽었다. 그의 헤겔 변증법 탐구는 제국주의 분석(《제국주의 ―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 중대한 구실을 했다. 그 책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격화해서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새로운 국면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레닌이 변증법적 모순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은 그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 해방 운동들을 지지한 데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국제주의자였지만,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로 나아가는 길이 민족 억압 반대 투쟁을 거친다는 점을 이해했다.

그러나 변증법은 운동의 위대한 이론가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파업이나 운동의 동역학과 급격한 우여곡절,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순간들을 파악해야 하는 모든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정치 활동가들, 일상적으로 동료 노동자들의 의식을 다뤄야 하는 모든 사회주의 노동자들에게도 변증법은 엄청나게 유용하다. 왜냐하면 의식도 변증법적으로, 즉 모순을 통해 발전하기 때문이다.

흔히 놓치기 쉬운 마지막 요점 한 가지를 말해야겠다. 변증법은 자연과 사회의 변화 논리를 반영하고 표현하지만, 역사에 대한 마법 열쇠는 아니다. 변증법 자체가 특정 변화가 일어났거나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증명할 수는 없다. 현실 세계에 대한 변증법적 분석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전체와 마찬가지로 변증법도 독단적 교조가 아니라 행동 지침이다.


존 몰리뉴는 《마르크스주의와 당》(북막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책갈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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