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탈북자의 망명을 허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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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탈북자의 망명을 허용하라
정진희
남한의 노동자·학생 운동가 들은 탈북자들의 한국 입국을 환영해야 한다. 죽음의 문턱을 몇 차례나 넘나들며 온갖 역경 끝에 한국에 온 이들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다.
지금 중국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 수는 30만 명에 이른다. 탈북자들은 중국 당국의 박해로 매우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다. 중국 당국은 1960년에 맺은 조-중 국경협약을 준수해 탈북자들을 강제 송환해 왔는데,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의 경제난 심화로 탈북자들이 급증하자 갈수록 국경 통제를 강화해 왔다. 중국이 북한으로 송환하는 탈북자 수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 산하 한 국책 연구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1996년 5백89명, 1997년 4천4백39명, 1998년에는 6천3백 명이다. 탈북자들은 강제 송환될 경우 처벌을 받기 때문에
대다수 탈북자들의 탈북 동기는 참혹한 기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오로지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절망을 벗어던지고 희망을 찾아 북한 노동자와 민중은 위험을 무릅쓰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한 것이다.
혹심한 기근 때문에 적어도 1백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식량계획은 1995년 이후 사망자 수가 1백만 명 가량이라고 밝혔다. 탈북자 지원단체인 ‘좋은 벗들’은 중국내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북한의 사망자 수가 1995∼1998년 사이에 무려 3백50만 명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사망률은 특히 어린이와 노인에게서 높으며, 살아남은 아이들의 경우에도 대부분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그래서, 북한은 한 세대가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모든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라
이처럼 비참한 탈북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려면, 모든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해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도록 돼야 한다. 탈북자들이 국제법상 난민으로 공식 인정받게 되면, 강제 송환이 금지되고 망명이 허용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난민 판정 절차는 매우 까다롭다. 국제법상 난민 판정을 내리는 곳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러시아와 중국 정부는 탈북자를 난민으로 공식 인정할 경우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이 탈출하는 사태가 일어날까 봐 두려워 난민 인정을 꺼리고 있다. 북한과 국경이 인접해 가장 많은 탈북자들이 머무르고 있는 중국이 이 점을 특히 우려하고 있다. 대량 탈북 사태는 곧 북한의 제도 붕괴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번 장길수 가족의 경우에는 중국 당국이 국제적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북한으로 송환하지 않았으나, 중국은 이들이 난민이 아닌 “불법 체류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가 “북한 내에서 정치적 제한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난민이 아니다”라고 계속 우기고 있다. 그러나,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가혹한 박해를 받게 된다는 사실은 수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
위선적인 선별 수용 정책
김대중 정부는 중국 당국의 탈북자 박해를 못 본 척해 왔다. 김대중 정부는 그 동안 중국이 탈북자들을 강제송환할 때 “조용한 외교”를 내세우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2000년 초 북한으로 강제송환된 7명의 탈북자 사건이 대표적이다. 1999년에 러시아 국경 역에서 체포된 이들 탈북자 얘기를 외국 언론들이 보도했을 때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국 영사관은 사건 발생 후 3주가 되도록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는 “조용한 외교”가 마치 탈북자들을 위한 것인 양 주장하는데 이것은 위선이다. 김대중은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 등 관련 당국과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탈북자 문제의 공론화를 꺼리고 있다. 김대중은 2000년에 탈북자 7명이 북한에 송환됐을 때 ‘유감’을 표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은 우리의 이익과 일치하며, 탈북자 문제가 그런 큰 국익에 의해 협력하는 것에 차질을 주지는 않는다.”김대중은 전임 정부와 마찬가지로 위선적인 선별 수용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선별 수용 정책은 1990년대 들어 탈북자들이 급증하면서 탈북자의 희소 가치가 사라지자, 김영삼 정권 때부터 시행돼 왔다. 남한 지배자들에게 이용 가치가 높은 북한 고위관료·군장성·보안 경찰 같은 출신이 아닌 평범한 노동자·민중 출신의 탈북자는 냉대받아 왔다. 그 동안 중국과 러시아 등 제3국에서 남한으로 망명을 요청한 사람들이 수천 명이 넘었지만, 1994∼1998년 동안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는 고작 2백66명밖에 안 되었다. 현지 한국 대사관은 평범한 탈북자들의 망명 신청을 냉혹하게 거부해 왔다. 1997년 강경호 씨 일가 등 13명의 망명 신청을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관이 거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 대사관은 이들의 망명을 거부하고 베트남 당국에 신병을 넘겨 줬다. 베트남 당국은 이들을 국경의 지뢰밭으로 추방했다. 이들 중 강경호 씨 일가와 차도수 씨는 남한으로 왔지만 나머지 탈북자들은 다시 탈출해 베트남 등지를 떠돌게 됐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장길수 가족이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을 점거한 것도 그 동안 한국 대사관이 평범한 탈북자들을 냉대해 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