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8일 중앙당사에서는 국민연금보험료지원사업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중앙위원회에서 당원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추진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당 지도부가 이를 받아들여 공개토론회를 개최한 것이다.

이 날 주제 발표를 한 오건호 정책전문위원은 그동안 당 안팎에서 비판에 답하며 새로운 논점들을 제기했다.

첫번째는 사회연대전략과 그 첫걸음인 저소득층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사업을 ‘노동자 임금양보론’ 혹은 ‘정규직 책임론’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전에 “발상의 전환”이라는 말로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다면 이제는 그 근거로 사뭇 그럴싸한 분배·재분배 이분론을 더했다.

노동으로 생겨난 부를 임금(노동자 몫)과 이윤(기업주 몫)으로 나누는 ‘분배’ 영역에서는 계급 역관계에 따라 그 몫이 달라지고, 따라서 분배 영역에서의 계급 투쟁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복지 제도 같은 ‘재분배’ 영역은 제도설계에 따라 계급, 계층에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적용되므로 재분배 제도 개혁을 두고 노동자들의 양보라고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건호 위원의 말대로 재분배 영역이 계급 대립과는 관계없는 ‘제도’일 뿐이라면, 앞으로는 복지 개혁 ‘투쟁’이 아니라 복지부에 최고의 전문가, 학자, 교수들을 영입하기 위한 노력만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우리는 정부에 협조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이 주장은 노동자들의 실제 경험에 비춰봐도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매달 월급명세서에서 빠져나가는 건강보험료, 국민연금보험료 등을 보면서 자기 돈의 일부가 아니라 그저 나와는 무관한 제도 비용이 적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까?

실제로는 연금을 포함한 대부분의 복지제도는 그 역사적 기원에서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개선시키려는 모든 시도마다 노동자들의 거대한 힘이 뒷받침 돼야 했다. 스웨덴 등 유럽 복지국가의 탄생 배경도 제2차세계대전 직후의 호황과 그 때 벌어진 노동자들의 거대한 투쟁이었다. 한국에 최초로 국민연금 제도가 생겨난 것이 왜 하필 1988년이었는지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두번째는 사회연대전략이 추진되기 전부터 후퇴하고 있던 민주노동당의 국민연금 개혁안이 “후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건호 위원은 기존 급여율 60퍼센트를 ‘국민연금 40퍼센트 + 기초연금 15퍼센트’로 전환하는 민주노동당의 국민연금 개혁안이 겉보기에는 5퍼센트 삭감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가입자들의 평균가입기간을 고려하면 예전보다 많이 받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악이 ‘현찰’이라면 기초연금 도입은 막연한 ‘어음’일 뿐이다. 미래에 받게 될지도 불분명한 ‘어음’을 위해 지금의 ‘현찰’을 내놓는 게 후퇴가 아닌가? 국민연금 후퇴 없는 기초연금 도입을 주장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해도 실제 수급율은 자기 평균 소득의 50퍼센트가 채 안 되는데 말이다.

기초연금은 정부 재정(조세)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민주노동당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국민연금 급여율 20퍼센트 삭감이 포함된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급여율을 33퍼센트 삭감하고 보험료를 인상하는데 합의해주면 노무현 정부가 기초연금을 도입할 것이라고 생각했거나(선양보론), 기초연금과 무관하게 국민연금 급여율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것이 진실이건 간에 노무현 정부와 열우당의 반응은 확실했다. 민주노동당의 국민연금안을 환영하며 받아들이는 척 하다가 하루도 안 가 뒤통수를 치고 급여율 삭감(10퍼센트)과 생색내기용 기초노령연금(5퍼센트)를 통과시켰다.

“잘 설계된 제도”와 주류 정당들이 “받아들일 만한” 법률안을 내놓는다고 해서 지배자들이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은 굳이 이 사례가 아니어도 지난 수백 년 동안 역사의 검증을 견뎌낸 불변의 진리다.

세번째는 “이건희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군비를 축소해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연금 의제는 연금 영역에서 해답을 찾아 대중에게 제시하는 것이 책임있고 적극적인 대응이라는 것이다.

연금은 연금 영역에서, 건강보험은 건강보험 영역에서, 교육은 교육 영역에서. 그러면 부유세는 거둬 무엇에 쓰자는 것인가? 사실상 부유세 주장에서 후퇴하자는 것 아닌가?

이처럼 복지의 양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복지의 양을 늘리는 ‘투쟁’ 대신 제도 내적인 대안만 찾으려 한다면 하향평준화는 필연적이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바로 이 복지의 양을 줄이는데 혈안이 돼 있는 상황에서는 복지의 양 자체를 지키고 늘리는 투쟁이 가장 중요하다.

진정한 문제, 즉 복지의 양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눈을 감고 그저 현재 있는 복지를 평평하게 만드는 데에만 집착하는 “제도 내적” 사고 방식은 조세 정책에도 반영됐다.

네번째는 증세·감세 논쟁이다. 오건호 위원은 조세 정책에서는 현 제도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자들의 세금을 늘리고 누진세를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조세 체계에서는 누진율을 적용하면 고소득 정규직 노동자들의 상당수도 누진율을 적용받게 된다. 오건호 위원은 그렇다고 감세를 할 수는 없으니 노동자들이 이를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근로소득세와 연금보험료 모두에서 누진율 적용 하한선을 대폭 높여 대부분의 노동자들을 제외시키고 대신 누진율 자체를 대폭 높이면 된다.

예를 들어 월 360만 원 이상을 버는 노동자들에게도 일괄적으로 보험료 누진율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월 7백~8백만 원 이상 소득자에게만 더 높은 누진율을 적용하면 된다. 증세, 감세 논쟁에서 핵심은 어느 계급에게 세금을 부과해서 어느 계급을 위해 쓸 것인가 이다.

다섯번째는 부과식 전환에 대한 신중론, 혹은 반대다. 오건호 위원은 “부과방식 전환은 곧 기금 고갈이며, 미래 연금재정 불안이 가중된다는 이데올로기가 급속히 전파될 것. 이것의 최대 수혜자는 사보험 자본”이라고 한다.

먼저 오건호 동지가 국민연금에 대한 시장주의적 공격과 좌파적 비판을 섞어버리는 것은 진지한 태도가 아니다. 국민연금에 대한 좌파적 비판은 국민연금이라는 사상과 제도를 지지하면서 그것을 더욱 강화하려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비판한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연금을 약화시키고 해체하려는 우파적 비판과 싸잡아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국민연금을 부과방식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반드시 적립된 기금을 탕진해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입자들의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지금까지 적립된 2백조 원 가량의 기금이면 남한의 복지 수준을 현격히 높일 수 있다. 완전한 무상의료 쯤은 일도 아니다.

부과방식도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제도만 도입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해서도 안 되지만 아이러니이게도 오건호 위원 자신이 미래 연금재정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부과식 연금 체계를 적립식으로 바꾼 데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이유들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적립식 연금 체계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펀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었다. 이 나라에서도 연금 보험료 징수가 대대적으로 시작된 것이 IMF 경제 통치가 시작된 직후였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런 연금 펀드는 주식시장을 떠받치고 국채 매입에 사용해 재정을 충당하는 등 기업주들과 정부 운영에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된다. 당연히! 노동자들에게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재정에 대한 불안 요소만 늘어간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오건호 위원이나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신자유주의 정부와 기업주들은 부과식으로의 전환을 강력히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환을 요구해 쟁취하려면 대중투쟁의 분출이 필요할 것이다. 그 투쟁으로 이런 제도 전환을 쟁취한다면 사기충천해 있는 ‘노동자들’은 두 눈 멀쩡히 뜨고 사보험 자본이 이를 빼앗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오건호 동지는 제도에 대한 믿음보다는 투쟁이 발전시킬 노동자들의 조직과 의식에 믿음을 가져야 한다.

여섯번째는, 실종된 과제와 대안들인데 이 날 토론 내내 오건호 동지는 연금 설계가 워낙 복잡해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내가 듣기에도 요즘 오건호 동지의 설명은 지나치게 복잡하다. 하지만 3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국민연금 재정 고갈, 이것은 자본의 시장논리가 낳은 이야기이다. 재정이 부족하다고? 부자에게서 세금을 거두고 국방비를 절약하라. 이건희 회장의 보험료를 정율만큼이라도 올려라. 시장 생명보험에 흘러간 민중의 보험료를 국민연금으로 되돌려라.

“인구감소와 노령화가 문제라고? 애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사회제도를 마련하라. 당장 양육수당을 도입하고 보육과 교육을 국가가 책임져라.

“그래도 연금기금 운용이 걱정이라고? 그래서 투쟁하려 한다. 우리 가입자가 연금기금의 운용권을 찾아올 것이다. 하반기 국민연금투쟁, 우리 진보운동이 시장과 자본에 대항해 싸워 나가는 길에서 중요한 봉우리이다.”(오건호 민주노총 정책부장, 〈다함께〉15호)

또, 민주노동당의 연금 개혁안에는 현재 노동자들이 내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기업주들이 모두 내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물론 이제는 없다. 이것은 허황된 얘기가 아니었다. 1998년 대대적인 연금 개악이 이뤄지기 전에 스웨덴 사람들은 연금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았고 기업주들과 정부가 모두 부담했다.

지금 오건호 위원의 연금 설계가 복잡한 이유는 이런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이를 뒷받침한 사상이 실종되거나 희석됐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오건호 위원은 발표 마지막에 “향후 토론은 원론적인 찬반보다는 사업의 현실화를 위한 방향으로 전개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청중석에서 발언한 이해삼 최고위원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고, 문성현 당대표도 비슷한 취지로 발언했다.

그러나 이 정책이 어떤 것인지 당원들에게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은 상태에서 찬반 토론을 무시하고 그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지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는 것은 대단히 비민주적인 처사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내년 대선 전략의 핵심 축이 될 정책을 마련하려 한다면 당 지도부는 더 광범하고 진지한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가장 원칙적인 수준에서부터 전술적인 문제에까지 당원들과 토론하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