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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알리

정건

아마 조지 W 부시는 〈알리〉를 권하고 싶지 않을 게다. 무하마드 알리는 미국이 베트남과 한창 전쟁 중일 때 국가를 섬기길 거부한 무슬림이고 인종차별주의에 맞선 흑인이기 때문이다.

1964년은 할렘의 흑인들이 폭발한 해다. 또 세 명의 시민권 운동 지도자들이 살해된 해이며 말콤 X가 ‘이슬람국가’(흑인무슬림단체)에서 추방되고 더욱 더 급진적으로 된 해다.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가 소니 리스톤을 꺾고 세계 챔피언이 된 해다. 이 영화는 알리의 어린 시절과 함께 샘 쿡의 음악(앨범 《A Change Gonna Come》)이 흐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21살의 무하마드 알리는 60년대에 봉기한 흑인 노동계급의 일원이었다. 그는 미국을 섬기는 대신 말콤 X의 말을 듣는다.

알리는 “나는 베트콩과 싸우지 않겠다. 베트남 사람 아무도 나를 깜둥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며 병역을 거부했다. 정부의 탄압은 가혹했다. 챔피언 타이틀과 여권, 선수 자격증마저 박탈했다. 언론은 그를 헐뜯는 데 혈안이됐다. 알리는 3년 반 동안 권투를 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미국 제국주의에 도전한 대가였다. 결국 3년 5개월의 투쟁 끝에 알리는 양심적 병역 거부가 인정돼 무죄를 선고받는다.

몇 가지 사건들의 묘사는 아쉽다. 예컨대 알리의 변호사가 호텔에서 전화하는 장면에서는 총소리가 나고, 발코니에 놓인 시체가 어렴풋이 보인다. 그러나 그곳이 1968년의 멤피스고, 죽은 사람이 마틴 루터 킹 목사임을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또 말콤 X가 이슬람국가에서 추방된 이유는 사실과 다르게 나온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말콤 X〉의 묘사가 맞다. 말콤이 존 F 케네디의 암살을 두고 한 말 ― “남을 저주하면 제게 화가 돌아오는 법”― 때문이었다. 이것은 케네디가 콩고와 베트남에서 대량 학살을 확대해온 것을 폭로한 말이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1974년 아프리카 자이르에서 조지 포먼과 맞붙은 “정글 대전”이다. 알리는 1967년 부당하게 빼앗긴 타이틀을 되찾는다. 알리의 승리는 제국주의와 투쟁한 모든 사람들에게 일종의 상징이었다. 1974년은 베트남전 패배에 직면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바로 그 해였다. 〈알리〉는 제국주의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는 영화다. 지금 미국 정부는 그를 “미국민 단합”의 상징으로 껴안고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여전히 우리는 1960∼1970년대의 알리를 기억해야 한다. ※ 우리 나라에서 〈알리〉는 심의에서 5분, 수입사 스스로 28분을 삭제한 채 상영중이다. 시합 장면은 단 한 컷도 삭제하지 않았고 정치적 내용만 삭제했다. 말콤X와 관련된 거의 모든 장면과 자이르 민중이 알리에게 환호하는 이유를 보여 주는 대목도 삭제했다. 항의가 빗발치자 명동의 캣츠21이라는 극장에서만 삭제된 28분을 복원 상영중이다.

존 큐

정건

영화 〈존 큐〉가 미국에서 개봉됐을 때 우익 비평가들은 이 영화가 “국영 의료보험 선전 영화”라고 혹평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공공연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존 큐〉는 민간 의료보험의 횡포를 폭로한다. 영화에는 조지 W 부시도 나온다. 부시는 TV에 나와 “가정마다 카드 빚이 많은 게 문제”라며 역겨운 미소를 짓는다. 바로 그 때, 카드회사의 견인차가 카드 빚 때문에 압류된 존 큐의 자동차를 끌고 간다. 공장 노동자인 존 큐(덴젤 워싱턴 분)의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런데 어린 아들마저 심장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죽게 될 상황에 처한다. 존과 아내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가장 먼저 존 큐는 자신의 회사를 찾아간다. 경영진은 존 큐가 비정규직으로 분류돼 보험 혜택이 턱없이 줄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이다. 존 큐는 집안의 의자와 냉장고까지 다 팔아버린다. 그러나 병원은 돈이 부족하다고 아들을 퇴원시키려 한다. 결국 존 큐는 응급실을 점거하고 인질극을 벌인다. 〈존 큐〉의 캐릭터들은 생생하다. 노동자들은 상투적 인물 ― 반동적인 바보들 ― 이 아니라 생기 있고 똑똑한 인물로 묘사된다. 응급실에서 존과 “인질들”은 힘을 합쳐 여자 친구를 두들겨 팬 인종차별주의자를 제압한다. 경찰서장은 대원들에게 존 큐를 빨리 사살하라고 다그친다. 그는 존 큐를 동정하는 부서장(로버트 듀발)과 논쟁하다가 본심을 발설한다. “이제 곧 선거철인 것도 모르나?” 실제로 미국 대선에서 부시가 당선되면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를 분야로 건강유지기구(HMO : 가장 흔한 민간 의료보험)가 꼽혔다. 주지사 시절부터 부시는 보험회사들의 이윤 지킴이었다.

〈존 큐〉는 계급 분단을 직시한다. HMO, 병원, 고용주, 정부, 언론, 경찰은 모두 한패다. 그들은 결코 평범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 존 큐는 말한다. “선을 넘은 건 내가 아니라 이 체제다.”많은 사람들이 존 큐의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가족이 중병에 걸렸을 때 경제적 어려움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존 큐〉의 모든 대사들은 깜짝 놀랄 만큼 선명하고 감동적이고 재기가 넘친다. 이윤 지상주의에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를 꼭 봐야 한다.

칸다하르

한상원

영화 〈칸다하르〉에는 아프가니스탄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영화는 대테러전쟁 이후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주인공 나파스는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해 캐나다에서 저널리스트로 살아간다. 어느 날 나파스는 칸다하르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20세기 마지막 일식이 있는 날 자살할 것이라고 쓴 편지를 받는다. 절망에 빠진 동생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나파스는 테이프 레코더에 자신의 목소리를 기록하며 홀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난다. 아프가니스탄은 절망의 땅이었다. 모든 여성들은 부르카를 뒤집어쓴 채 살아가야 한다. 포장 도로 하나 없는 길 곳곳에는 강도들이 도사리고 있다. 국경 지대에 사는 아이들은 지뢰를 밟으면 어떻게 되는지 교육받아야 한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지뢰를 밟을 정도로 많은 지뢰가 묻혀 있기 때문이다.

나파스는 칸다하르로 가는 길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한 노인의 네번째 부인으로 위장한 채 국경을 넘던 나파스는 강도를 만난다. 모든 것을 빼앗긴 노인의 가족은 이란으로 되돌아가고 나파스는 홀로 남아 소년 칵을 만난다.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칵은 나파스를 칸다하르로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칸다하르로 가던 중 나파스는 마신 우물물 때문에 배탈이 나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흑인 미국인이었다. 그는 가난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과 함께하면 신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은 그들의 실제 삶과 일치한다. 영화는 실제 일어난 사건을 토대로 실제 인물을 배우로 고용해 사건을 복원한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에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특성이 모두 반영돼 있다. 이란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17세부터 반정부 이슬람 조직에 가담해 활동하다가 1974년 체포돼 1979년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투옥됐던 인물이다. 캐나다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닐로우파 파지라(나파스 역)는 칸다하르에 사는 친구의 편지를 받았다. 탈레반의 억압에 못 이겨 자살하겠다는 친구의 편지를 받고 아프가니스탄으로 잠입을 시도하던 중 마흐말바프 감독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과 동행해 줄 것과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해줄 것을 부탁했다. 마흐말바프는 거절했지만 1년 뒤 다시 이 이야기를 영화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리하여 영화 〈칸다하르〉가 만들어지게 됐다. 마흐말바프 감독은 이렇게 회상한다.

“그렇게 기아로 죽어 가는 사람들은 어디서든 언제든 볼 수 있었다. 나는 식사를 할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우리 촬영팀은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용소에 약 한 달 간 식량을 공급하기로 했다. 그 곳에는 어린 아이서부터 80세 노인에 이르기까지 4백여 명의 난민이 수용돼 있었다. 우리 촬영팀은 그 곳에서 내내 울 수밖에 없었다.” 감독은 아프가니스탄의 절망적인 상황을 고발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 조지 부시는 이 영화의 내용을 고의적으로 악용했다. 작년 10월 22일 부시는 백악관에서 이 영화를 관람했다. 부시는 탈레반을 몰아낸 뒤 아프가니스탄 민중이 해방이라도 된 양 떠들어댔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절망스런 현실을 만들어낸 것은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이다. 이미 황폐해진 아프가니스탄에 융단폭격을 자행한 자가 바로 조지 W 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