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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게재]진보진영 후보 단일화, 민주노동당이 적극 나서야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민당 등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부들은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심지어 부시의 전쟁을 돕기까지 한다. 이 때문에 생겨난 그들 왼쪽의 공백을 새로운 좌파 재결집체들이 메우며 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영국의 리스펙트나 독일의 좌파당은 그 성공적인 사례다.

전쟁과 신자유주의 추진 정부에 대한 반대운동 세력의 정치적 결집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에서도 유사한 진전이 가능하다. 노무현은 처음에 사회 진보와 개혁을 바라는 광범한 대중의 염원 덕분에 집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 평택 미군기지 확장, 비정규직 양산, 한미FTA 추진 등 대중의 진보 염원을 배신하는 짓을 저질러 왔다. 최근 바닥을 기는 열우당의 지지율은 대중의 환멸이 얼마나 깊은지를 반영한다.

그러나 전쟁과 신자유주의 추진에 반대해 열우당에서 이탈한 사람들 대다수가 곧바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이들에게 적절한 정치적 표현체를 제공하기 위해 온갖 모색을 해야 하며 대선 국면인 지금 이 문제가 특히 중요하다.

현재 이명박에 대한 지지가 높다지만 사실 그의 정책에 대한 지지는 별로 높지 않다. 국민의 90퍼센트가 자이툰 철군에 찬성했고, 과반수가 한미FTA에 반대한다. 게다가 국민의 60퍼센트가 다음 정권이 진보적이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민주노동당은 이 기회를 적극 잡기 위한 정치적 실험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민주노동당 의견그룹 ‘다함께’는 지난해 12월 16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민주노동당이 노무현·열우당의 개혁 배신에 환멸을 느끼고 왼쪽으로 이탈한 사람들과 민주노동당보다 좌파적인 세력들을 포괄하는 광범한 진보진영 대선후보 단일화를 추진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민주노동당 지도부 내 논의가 늦어지는 사이에 이 정치적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가 재빨리 나타났다. ‘창조한국 미래구상’(이하 미래구상)이 그런 경우다. ‘미래구상’은 반한나라당·비열우당·한미FTA 반대·한반도 평화 등을 표방하고 나섰다. 이것은 한나라당·조중동을 혐오하고 노무현·열우당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구호이다.

그러나 ‘미래구상’은 열우당(과 그 후신)의 후보까지 포함한 예비 경선으로 후보를 단일화하자고 주장하는데, 이는 노무현·열우당과 그 후신을 배제하자는 ‘다함께’의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 주장과 다르다.

'미래구상’의 ‘여당 후보 지지 가능성 허용’과 ‘한미FTA 반대, 한반도 평화’는 서로 모순이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과 한미FTA를 앞장서 추진한 게 노무현과 열우당이기 때문이다.

노회찬 의원도 ‘미래구상’의 모순을 잘 지적했다. 하지만 “결국 열우당 재집권을 위한 방법 아니냐”고 단칼에 자른다면 대중에게 예단처럼 비쳐질 수 있다. 설사 ‘미래구상’ 주도자들의 내심의 의도가 열우당 신장개업 세력의 재집권을 도모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그들이 표방하는 구호와 가치를 공감하고 지지하는 광범한 사람들을 고려해야 한다. 즉, 한미FTA 반대, 한반도 평화라는 내용에 공감하면서도, ‘미래구상’이 왜 그것들을 성취할 수 없는지 모순을 지적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진정한 진보 쪽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은 지금이라도 폭넓은 선거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제는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친제국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광범한 세력과의 연대에서 출발해야 하며 진보진영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후보 단일화로 나아가야 한다.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 제안 대상에는 민주노동당 왼쪽의 노동·민중운동 단체뿐 아니라 주요 NGO나 그 지도자들도 포함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대체로 이들이 노무현·열우당에 환멸을 느껴 왼쪽으로 이탈한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사실, 주요 NGO들은 그 자신이 노무현 정부에 기대한 만큼 환멸을 키워 왔다. 이 때문에 한미FTA 반대 운동과 반전 운동에서 이들과 ‘다함께’ 같은 급진좌파가 함께 행동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대선을 둘러싸고도 단일 후보를 모색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는 열우당 정부를 심판하면서도 한나라당의 어부지리를 차단하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독일에서 좌파당의 약진은 양대 주류 정당을 모두 약화시킨 바 있다.

진보를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을 결집한다면 사회 전체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왼쪽으로 이동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결집 과정을 능동적으로 주도한다면 민주노동당은 훨씬 더 광범한 대중 속에서 뿌리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

또, ‘반한나라당 전선’만을 앞세우는 ‘비판적 지지론’도 약화시킬 수 있다. 노무현·열우당이 차지했던 정치 공간은 적절한 대안이 없다면 자동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안적 선택지가 없으면 한나라당이 끔찍이 싫은 사람들은 눈 딱 감고 열우당(과 그 후신)에 투표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프랑스에서 반신자유주의 좌파들이 대선후보 단일화에 실패하고 분열하자 우익의 집권을 막기 위해 신자유주의 지지자인 사회당 후보 세골렌느 루아얄을 지지해야 한다는 ‘차악론’이 급부상했다.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로 열우당 왼쪽의 정치 공간을 메울 수 있다면 ‘비판적 지지’ 압력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관련기사 '프랑스 좌파 대선후보 단일화 논쟁'참조)

그리고 진보진영 단결 논의에서 개방적인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물론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진보진영의 단일 후보로 선출되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를 선언하는 것으로는 단결을 이룰 수 없다.

지금은 지난 2002년 대선에 비해 민주노동당이 후보 단일화 논의를 주도하기에 좋은 상황이다. 민주노동당은 수년 간의 선거 활동으로 일정 수준의 대중적 지지를 확보했고 이미 의회에 진출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런 비교우위를 ‘기득권’으로 내세우기보다는 전체 진보진영의 전진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활용해야 한다. 진보 운동의 전진이라는 대의를 우선하며 전체 진보진영의 지지를 획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