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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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 중국의 충격 - 대니 셰처 영림카드널
한은솔
1999년 4월 25일, 1만 5천 명의 파룬궁
파룬궁은 창시자 리홍즈가 1992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건강박람회에 참석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도교와 불교에 뿌리를 둔 파룬궁은 기공을 통한 신체 단련과 정신 수행의 결합을 꾀하는 영성 단체이다. 중국정부가 파룬궁을 불법화하기 전에는 중국기공협회에 등록해 합법 활동을 했다. 중국 정부가 ‘미국의 스파이’라 부르는 파룬궁의 창시자 리홍즈는 인민해방군과 경찰을 상대로 강연을 하기도 했고 보안 기관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어떤 관리는 “연간 수백만 달러의 보건관리 비용이 절약된다”며 파룬궁을 탄압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파룬궁은 탄압받게 된 걸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파룬궁 수련자 수가 이미 공산당원 수
종교적 고통은 눈에 보이는 현실적 고통인 동시에 현실적 고통에 대항하는 행위이다. 종교는 억압받는 민중의 한숨이며, 냉혹한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사회의 영혼이며, 민중의 아편이다…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환상을 포기하라는 말은, 환상을 필요로 하는 현실을 잊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구제불능의 난독증 환자인 중국 정부는 고통스러운 현실은 외면한 채 마르크스의 구절을 악의적으로 왜곡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환상을 필요로 하는 현실을 잊으라’며 주먹질을 해대고 있다. 파룬궁은 극심한 탄압에도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더욱 대담해지고 있는데 지난 3월 초 지린성의 한 국영 방송국을 점거해 자신들의 선전테이프를 50분 동안 방영하기도 했다. 파룬궁은 기본적 시민권 자체가 억압된 나라에서 저항의 상징이 되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경악스런 중국의 인권 현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의 위선 또한 꼬집고 있다. 미국은 말로는 중국의 인권 탄압을 비난하면서도 자신들의 경제적·정치적 이익 앞에서는 인권 문제를 외면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클린턴은 중국의 WTO 가입을 성사시키기 위해 중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낮췄다. 또, 미국에서 장쩌민과 정상회담을 할 때 중국 정부에 항의하는 파룬궁 시위대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라고 경찰에 명령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16장에서 미국 정부가 중국 정부의 파룬궁 탄압에 반대하는 글들을 다수 소개하고 있다. 비위가 약한 독자는 이 장을 건너 뛰고 읽어도 상관없다.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 이정전, 한길사
조박은정
올해 읽은 세 권의 경제서 ― 《부유한 노예》,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그리고 이 책 ― 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대중적 경제서로서, 저자들이 좌파를 자처하지 않지만 시장 경제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라는 점이다. 이 책은 그 셋 중에서 가장 왼쪽에 있다. 환경정의시민연대의 대표이자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인 이정전 씨는 시장이 우릴 행복하게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아니오”라는 답을 이끌어 낸다. 그는 먼저 시장숭배자들
고등학교 경제 시간에 배운 ‘효용’과 관련된 주류 경제학 이론만을 알고 있는 신입생들이 이 책을 본다면 마르크스 경제학이 가진 놀라운 설득력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주류 경제학 이론을 적당히 소개하면서 비판을 전개하고 있어, 아예 100퍼센트 마르크스 경제학을 설명하는 책과는 달리 좀더 친숙하게
이런 부적절함들은 아마도 저자 자신의 대안 부재 때문이리라. 시장은 결함이 많긴 하지만, 시장 아닌 다른 대안이 가능할까? 아마도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니오”이기 때문에 저자는 후쿠야마와 공자, 밀, 그리고 케인스 등의 충고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한다. 이미 세계 반자본주의 운동은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고 말해 왔다. 그렇다면 우린 어떤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가?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극렬한 반대자” 마르크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트로츠키의 프랑스 인민전선 비판 - 레온 트로츠키, 풀무질
이원재
“노풍”이 거세다. 진보 진영의 일부도 노무현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트로츠키의 《프랑스 인민전선 비판》은 부르주아 계급 일부와의 연합인 인민전선이 어떻게 노동자 계급을 부르주아 정치에 종속시켜 운동의 전진을 가로막고 혁명의 가능성을 분쇄했는지를 보여 준다. 1930년대 초 세계 경제 위기로 프랑스는 격심한 위기로 치닫고 있었다. 1934년 2월 6일 집권당이었던 급진당이 연루된 부패 스캔들이 터지자 프랑스 극우 파시스트 세력과 왕당파 무리들이 국회 의사당에 난입해 14명이 사망하고 1천3백여 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급진당 소속의 달라디에가 수상직에서 사임하고 우익인 가스똥 두메르그가 뒤를 이었다. 신임 수상 두메르그는 정부 고용 노동자 수를 10퍼센트 감축하고 노동자들에게 임금삭감을 강요하며 철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실업률이 전년에 비해 25퍼센트나 급등했다.
우익의 공세에 직면한 노동총동맹
그러다 1934년 6월 공산당은 사회당에 반파시즘 공동전선을 제안했다. 10월에는 당시 프랑스에서 자유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던 급진당에게 인민전선 정부 수립을 제안했다.
공산당 노선의 180도 전환은 소련의 국제연맹 가입을 위해 제국주의 세력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형성하려는 코민테른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트로츠키는 프랑스 인민전선을 “적이 아군의 진지를 공격하면서 기동전을 준비하는 동안 진지전 전략을 구사하여 노동계급을 소부르주아 계급에 종속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트로츠키는 인민전선이 아니라 노동자 공동전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동계급이 부르주아 일 분파와 동맹하여 부르주아 지배 분파에 대항해야 된다는 사고, 이 사고를 노동계급 대오 내에서 분쇄할 수 있는 가장 믿을 만한 방법 중의 하나는 노동자 계급 전체의 동맹을 통해 부르주아 계급 전체에 대항해야 한다는 사고를 지속적으로 결연히 주창하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인민전선을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동맹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말을 타고 있다고 해서 사람과 말이 동맹한 것은 아니다.”고 쏘아 붙였다. 트로츠키는 중간계급을 노동계급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파시즘 앞에서 동요하는 급진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반파시즘 공동전선을 통해 노동계급의 단호한 힘을 보여 줄 때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급진당에 인민전선을 제안한 공산당과 사회당은 파시스트들의 위협에 대해서 대중 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급진당 정권에게 반파시스트 정책을 펴도록 호소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파시즘에 대한 투쟁을 확대했다. 노동총동맹의 조합원 수는 1936년 3월 1백만 명에서 7월에는 5백만 명으로 불어났다. 공산당원 수는 몇 년 새 5만 명에서 35만 명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공산당은 증대하는 영향력을 급진당을 지지하는 데 사용했다. 1936년 6월 사회당 당수인 레옹 블룸이 초대 인민전선 정부의 수상으로 뽑혔다. 그러나 블룸이 취임식을 열기도 전에 파리의 금속 노동자들은 공장 점거 파업에 들어갔다. 6월 초에는 프랑스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인 2백만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이 투쟁은 1871년 파리꼬민과 1968년 5월 투쟁 사이에 벌어진 최대의 투쟁이었다.
블룸은 “국민은 인민전선에게 대표권을 위임했으며 우리는 이 대표권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며 노동자들의 투쟁을 억누르려고 했다. 결국 블룸 정부의 붕괴에 이어 급진당이 다시 정권을 장악했다. 급진당은 “더 큰 이윤과 더 높은 생산성”이라는 모토로 프랑스 노동자들을 산업 노예로 격하시키려 했다. 공산당은 여전히 인민전선 정부를 옹호하고 노동자들의 분노를 달래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1938년 급진당은 인민전선의 충실한 협력자였던 프랑스 공산당을 불법화하고 노동자 운동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맞서 1938년 11월 30일 총파업이 벌어졌지만 이미 노동계급의 사기는 떨어지고 공산당의 노동계급 기반은 무너진 뒤였다.
결국 1940년 독일이 프랑스 전역을 점령하고 친나치 정권을 세웠을 때에도 프랑스 노동계급은 무기력했다. 트로츠키는 이러한 무기력의 원인을 인민전선에서 찾고 있다. “1936년 6월 총파업이라는 거대한 투쟁이 분출하면서 노동계급이 급진화됐 이 격동이 오래 지속되었으나 투쟁은 혁명의 성공으로 귀결되지 못했다. 공산당, 사회당에 의한 ‘인민전선’의 반동 정치극으로 노동계급은 전망을 상실하고 극도로 사기저하했다.”이 책은 파시즘이냐 사회주의냐는 갈림길에 놓여 있던 프랑스 노동자 운동을 분석한다. 트로츠키의 프랑스 민중전선 비판은 70여 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우리에게 소중한 역사적 교훈을 제공한다.
노향리에서 노근리까지 - 노근리에서 매향리까지 발전위원회, 깊은 자유
김정숙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 다오”를 뻔뻔하게 합창하는 세력이 있다. 바로 주한 미군과 미국이다. 주한 미군은 중금속·폐유로 오염한 기지 땅을 반환하는 조건으로 새 땅을 요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한 미군은 인권·환경 같은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 주한 미군 기지 이전에 대한 기지 예상 지역 주민들을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들의 반대가 거세다.
《노근리에서 매향리까지》는 1945년 9월 미군정 때부터 한반도에 주둔한 미군 문제를 사건과 투쟁 과정 중심으로 상세하게 다뤘다. 그 동안 남한 정부는 매향리, 윤금이 씨 살인 사건,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에 대한 대응에서 볼 수 있듯이 주한 미군 범죄 대응에 주권 국가라 할 수 없을 만큼 무능했다. 이 책은 미군 문제와 SOFA 재개정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연대하고 싸워야 하는지 잘 보여 준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피난민들을 보호한답시고 충북 영동군 노근리 쌍굴 다리로 끌고 갔다. 3일 간의 기총 사격이 있었고 죄 없는 4백여 명의 피와 눈물이 냇물을 이뤘다. 미군 지휘부는 미군에게 명령했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죽여 버려.”현재 남한에는 90개의 미군 기지가 있다. 미군 기지 때문에 도시는 기형적으로 됐고 ‘공여지’로 묶인 땅을 빼앗겼으며, 국민들은 미군 범죄의 희생자가 됐다. 그런데도 김대중 정부와 냉전 우익들은 주한 미군의 필요성을 들먹이며 이들을 두둔한다. 북한을 핑계 삼아 기지 주변 주민의 인권을 무시한 채 미군의 훈련과 인권이 먼저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노근리 대학살, 차라리 전쟁터인 매향리, 66세의 기지촌 여성 서정만 씨 살해 사건, 미군 기지 때문에 재산권을 침해받은 주민들 사이에는 진상 규명이 제대로 안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근리 학살의 주범인 미국은 오히려 법적 책임을 왜곡·축소했다. 2000년 6월 매향리 오폭 사건에 대한 한미 합동 조사단은 오폭 피해는 없다고 주장했다. 소음 때문에 짐승도 살기 힘들다는 매향리에 50년 넘게 산 주민들을 거짓말쟁이로 내몰았다. 대한민국 국가가 말하는 안보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분단 이후 들어선 정권은 하나같이 분단 상황이라는 이유로 생존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박살냈다. 김대중도 마찬가지다. 김대중은 매향리 주민들이 더 이상 대한민국의 국민이기를 거부하며 주민등록증을 반납할 정도로 이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결국 정부의 친미 사대주의 덕분에 미군은 부담 없이 범죄를 저지른다. 사대적인 한미상호방위 조약에 근거한 SOFA 때문에 미군 범죄에 대한 1차 재판권을 남한 정부가 가질 수 없다. 그 결과 1999년 남한 정부의 미군에 대한 재판권 행사는 전체 사건 중 3.6퍼센트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미군 가족이 저지른 범죄도 SOFA의 적용을 받는다. 반면 실직 가장이 먹고살기 위해 저지른 범죄는 준엄한 법의 심판을 들이민다.
《노근리에서 매향리까지》를 읽으면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 책의 중심 주제인 미군 범죄, 양민 학살 진상 규명, 국민 차원의 연대라는 당위적 결론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이 주한 미군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주한 미군 철수의 당위론에 대한 주장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쉽다. 북한의 핵 미사일을 들먹이며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말하는 미국의 속셈이 무엇이겠는가? 한반도 분단 상태를 이용해 천문학적 금액의 F-15 강매 등 이윤을 얻기 위함이다. 이 땅에 주한 미군의 존재 이유는 남북의 대치 상태에 있다. 그러나 남북이 화해 분위기를 타거나 통일을 하면 미국 군산복합체는 남한이라는 황금 시장을 잃게 된다. 결국 미국은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을 고조시키며 주한 미군 주둔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남한에 있는 미군 시설과 군인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방해하며 남한을 강점하고 있는 미국의 지배 도구인 것이다. 통일 이후에도 주둔할 것이라는 미국은 “미군에 의한 피해 보상과 기지 이전 문제는 언제까지나 한국의 문제고, 미군은 손님의 입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군의 양민 학살, 미군 범죄 문제, 소파 개정 문제에서 미국은 끊임없이 우월한 지위와 면책 특권을 요구한다. 권리는 알뜰히 챙기고 의무는 회피하겠다는 미군이 과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킬 수 있을까? “주한 미군으로 발생한 문제와 철수는 일부 국민의 의사이므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정부의 입장과 그것에 무심한 국민이 많다면 미군에게 ‘솜방망이’인 SOFA 안에서 미국의 오만함은 계속될 것이다. 주한 미군과 관련한 모든 과오와 양민 학살은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전쟁을 한다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주의와 맞닿아 있다. 때문에 미군 철수 운동은 미국이 세계에서 벌이는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과 결합해야 한다.
김정숙
양인애
바짝 마른 강바닥,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난간에 기대고 있는 한 노인과 어린아이. 두 사람의 등을 내리쬐는 가을 햇살의 각도가 이동하고 이따금씩 모래바람이 이는 것 외에 움직임이란 거의 없다. 햇빛에 바래서 혹은 먼지에 덮여서 본래의 색을 알 수 없는 터번을 푹 눌러 쓴 노인이 하는 일이라곤 씹다 뱉은 나스와르
노인과 손자가 기대고 있는 다리는 아프가니스탄 북쪽에서 카불로 향하는 도로를 타면 반드시 건너는 곳이다. 이 다리를 지나 구불거리는 흙길을 따라가다 보면 노인의 아들이자 어린아이의 아버지가 일하는 카르카르 탄광이 나온다. 노인과 손자는 아버지에게 전할 소식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 소식은 결코 유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티크 라히미는 《흙과 재》에서 그 소식의 발생과 전달 과정을 노인의 심경을 위주로 아주 느리게 서술하고 있다. 작가가 유년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집필한 것이어서 소설의 배경은 소련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상황이다. 그렇지만 노인이 전달할 소식은 현재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토해내고픈 슬픔과 일치한다. “그 날 난 방앗간에서 일을 하던 중이었소. 갑자기 굉장한 폭음이 들리기에 놀라서 뛰어나왔지요. 눈에 보이는 거라곤 온통 불바다와 잿더미뿐이었소…난 매캐한 연기와 불꽃 속을 뚫고 미친 듯이 달려갔소…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소. 완전히 무덤으로 변해 있었지” 노인과 어린아이는 소련군이 폭격한 마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온전치 못하다. “틀림없이 탱크들이 여기에도 온 것 같아. 건널목지기 아저씨도 목소리가 없고…소련 군인들이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를 빼앗아 가려고 온 거지? 목소리를 주지 않으면 죽인다고 했어요?” 손자는 폭격으로 자신이 청각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 모든 것들이 소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참상이라 노인은 대처하는 법을 모른다. 나스와르를 씹고 뱉어내고 또 씹어댈 뿐이다. 그것 말고는 몸 밖으로 쏟아지려고 하는 슬픔을 부여잡을 별다른 재간이 없다. 그러면서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닥쳤는가를 곰곰히 따져 본다. 그의 좁은 견해로는, 신께서 사랑하는 마음에 어떤 점을 꾸짖으려 했거나 자신을 버린 것, 둘 중 하나다.
노인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아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그의 아들이 소식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한데 어떻게? 노인의 아들은 쉽게 체념할 줄 모르는 사나이다. 그는 참지 못하고 원수를 파괴하거나 자신을 파괴하고 말 것이다.
아티크 라히미는 서로 다른 성격과 상황에 놓여 있는 삼대를 그리면서 아마도 아프가니스탄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노인에겐 경작할 밭과 거주할 땅이 있어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아들은 아무리 파헤쳐도 사방이 암흑으로 둘러싸인 갱 속에 갇혀 있다. 노인에게서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게 했던 땅이 아들 대에 와서는 폭탄을 피하지 못하게 만든 “망할 놈”의 것에 불과하다. 아들은 세상으로부터 점점 고립된다. 어느 누구도 아프가니스탄이 왜 잿더미로 변해야만 하는지, 자신의 아내가 무슨 이유로 발가벗고 미쳐 날뛰어야 하는지를 답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인의 아들이 복수로 점철된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을 표현한 것이라면 귀머거리가 된 손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린아이는 애초부터 모든 것과 단절되어 있다.
“때때로 고통은 녹아내려서 우리의 눈으로 흘러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말이 되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기도 하지요. 아니면 우리 안에서 폭탄으로 변해 어느 날 갑작스런 폭발로 우리를 파열시키기도 하고 말입니다.” 어린아이의 슬픔은 아직 어떤 형태도 갖추고 있지 않다. 그의 슬픔과 분노가
김인식
노엄 촘스키가 없었다면 세계는 지금보다 불행해졌을 것이다. 《촘스키, 9-11》은 세계무역센터 테러 이후 촘스키가 한 인터뷰를 모아 놓은 것이다. 촘스키는 강대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