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 노동자들이 시장 개혁을 거부하다

 

한은솔

중국에서 1989년 천안문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가 발생한 지역은 국유기업들이 집중돼 있는 중국 동북부의 다칭과 랴오양이다. 헤이룽장 성의 다칭은 중국에서 가장 큰 유전 지대다. 3월 1일 다칭석유관리공사 해고 노동자 3천여 명이 회사측의 일방적인 사회노동보험비 인상과 난방비 지급 중단에 항의했다. 시위 대열은 한때 5만 명으로 불어났다. 시위 중심지였던 철인 광장에는 노동자들이 직접 쓴 소자보가 나붙었고,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즉석 강연이 열리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기존의 어용 노조와는 다른 독립노조(‘대경 석유관리국 매단공령직공 임시 공회위원회’)를 조직했다. 어떤 노조 간부는 이를 “자본측의 노조”가 아닌 “노동자의 노조”라 일컬었다. 시위가 장기화하자 회사는 “금년에는 보험비를 올리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럼 내년엔 다시 올리겠다는 얘기냐”며 투쟁을 계속했다. 시위를 주도한 노동자 대표들이 초기에 체포됐는데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4주 연속 시위를 벌여 한때 일부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기도 했다.

다칭에서 남쪽으로 약 650km 떨어진 랴오닝 성의 랴오양 시에서도 3월 11일 20개 국유기업 해고 노동자 5천여 명의 연대 시위가 있었다. 시위 대열은 하룻만에 3만 명으로 늘어났다. 시위에 나선 노동자들은 철합금 공장, 피스톤링 제조공장, 방직공장, 피혁공장 등의 해고 노동자들이었다. 다른 업종 노동자들의 연대가 이뤄진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들은 2년째 밀린 임금 지급·실업수당 인상·부패 경영자 처벌·시 정부 주임 파면을 요구했다. 철합금 공장의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인민을 위하지 않고 부패분자를 비호한다. 우리 대표들을 잡아가면서 왜 부패 분자는 잡아가지 않는가? 몇 억 위안이나 착복한 우리 공장의 판이청은 왜 안 잡아가는가? 크고 작은 좀벌레들이 공장에서 수십 억 위안의 공금을 해치우는데 왜 그들은 잡아가지 않는가? 이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시 정부는 대표자들을 구속하지 않겠다는 당초 약속을 어기고 ‘불법 시위 조직죄’로 야오푸신 등 노동자 지도자 4명을 구속했다. 이에 분노한 4만 명의 노동자들은 지도자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다급해진 시 정부는 체불 임금 일부 지급과 연금 두 배 인상을 제시하며 시위 중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야오푸신이 구류소 안에서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한 노동자들은 시 정부의 제의를 거부했다.

베이징의 중앙 정부는 뻔뻔스럽게도 두 지역의 노동자 시위가 “해외 불순 세력과 결탁돼 있다.”고 호도하면서 시 정부에게 시위를 빨리 진압하라고 명령했다. 지방 정부는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을 달래기 위해 약간의 보상을 해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위 지도자들을 긴급 체포해 노동자들을 위축시키려 했다. 시위의 확산과 연대를 두려워한 중앙 정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에서도 노동자 시위가 연이어 발생했다. 랴오닝의 푸순에서 수천 명이 복지 확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가장 통제가 심한 수도 베이징에서도 자동차 제조공장 퇴직 노동자들이 의료보험비·퇴직금 지급을 요구하며 도로를 점거했다. 쓰촨, 뤄양, 꾸이저우, 광둥에서도 노동자 시위가 잇달았다. 중국 정부의 보도 통제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노동자 시위가 서쪽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시장 개혁

이번 시위의 중심지였던 다칭과 랴오양은 사양길로 접어든 국유기업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당연히 시장 개혁의 충격이 가장 컸던 지역이다. 랴오닝 성만 보더라도 1980년대 시장 개혁이 시작된 이래 전체 노동자의 60퍼센트가 실업자나 불완전 고용 상태로 전락했다. 과거의 일개미들이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쫓겨나고 그나마 회사가 보장해 주던 알량한 복지 혜택도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랴오양의 한 노동자는 “난 지금 무일푼이다. 설사 내가 자살하더라도 장례비조차 마련할 수 없을 것이다.” 하며 절박한 노동자들의 처지를 한탄했다.

과거에 마오쩌둥은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스탈린식 중공업 발전 모델을 채택해 급속한 자본 축적을 이루었다. 시장 개혁 후 중국 지배자들은 또다시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다칭의 한 노동자는 “[과거] 생산 총력전 때 우리는 얼음같이 차가운 만두를 먹어야 했고, 엉성한 흙집에서 자야 했다. 10월에도 공사장 땅이 쇠처럼 얼어붙어 우리는 굴착 작업을 모두 맨손으로 해야했다. 사람 몸으로 석유를 뽑아 낸 거다. 그런데 회사는 ‘감원해서 효율을 높이자’며 우리를 패대기치듯 버리고 있다.”며 분개했다. 이번 노동자 시위는 중국이 사회주의라는 오래된 거짓말을 밝히 드러냈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1조는 이렇게 시작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 계급이 영도하고, 노농연맹에 기초한 인민민주독재의 사회주의 국가다.” 그러나 권력의 주인이라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랴오양 시위대가 제기한 국유기업의 ‘부패 경영자 처벌’ 요구는 사회주의의 꽃이요 상징이라는 국유기업이 사실상 관료들의 사적 소유물과 다름없었음을 보여 주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들이 국유기업 매각·파산 과정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경제적 이득을 챙길 수 있었겠는가. 또, 다칭 노동자들은 일반 노동자와 국유기업 경영자의 소득 격차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다칭 시위 때 뿌려진 “해고 노동자들은 지도자 마오쩌둥을 그리워한다”라는 제목의 전단은 “현 석유관리국 관리는 매달 고액의 임금을 받을 뿐 아니라 상여금도 가장 많이 챙긴다”고 폭로했다. 중국 정부의 ‘사회주의’ 간판과는 달리 노동자들은 사실상 경제적·정치적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됐다.

 

독립 노조

이번 시위에서 노동자들이 새롭게 조직되고 있다는 사실은 눈여겨 볼 만하다. 중국 정부는 노동자들이 ‘귀머거리의 귀’(聾子的耳朶)라고 조롱하는 관제 노동조합 이외의 노동자 조직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불법을 감수하고 독립 노조를 통해 투쟁에 나섰다. 다칭에서와 달리 랴오양에서는 독립 노조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20개 공장 노동자들이 연대투쟁에 나섰던 것을 보면 배후에 독립 조직이 있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시위 발생 직후 중국 정부는 허겁지겁 실업수당과 연금 지급을 위해 860억 위안(약 14조 원)을 긴급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이 양보는 정부가 파룬궁을 희생양 삼아 저항 세력을 억누르고 사회 통제를 강화하는 와중에 이뤄진 것이다. 이번 시위는 노동자들에게 시장 개혁과 정부의 탄압에 맞설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1989년 천안문 항쟁 때와는 달리 현재 크고 작은 소요가 농촌과 도시 모두에서 일어나고 있다. WTO 가입 이후 시장 개혁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고 이것은 더 많은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저항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것이 어떠한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