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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향해 고동치는 심장:
여성 차별은 당연한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다

여성 차별은 가장 뿌리 깊은 천대(억압)이다. 그것은 보통 생물학적·심리적·보편적 차이에서 비롯한 것으로, 그래서 영원한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이런 관점은 우리가 여성 차별을 이해하고 맞서 싸우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성 차별 문제를 유물론적 관점에서 다룬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유물론적 관점에 따르면, 역사를 결정하는 요인은 직접적 생활의 생산과 재생산이다. … 그 하나는 생계수단, 즉 의식주의 생산과 이에 필요한 도구의 생산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자체의 생산, 즉 종족의 번식이다” 하고 말했다.

인류는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주변 세계를 변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변한다.

인류와 다른 동물의 차이점은 세계의 어느 곳에든 적응할 수 있다는 것과,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협력한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사람들의 사회 편제 방식이 계급 억압적이지도, 지배와 차별이 분명하지도 않았음을 증명했다.

인류 최초의 조상은 가장 이르게 잡아도 2백만 년 전에 나타났고, 호모 사피엔스의 존재 기간은 기껏해야 20만 년에 불과하며, 농업은 겨우 1만 년 전에야 시작됐다.

원시 공산주의

따라서 인류 역사에서 95퍼센트의 기간 동안 ‘재산’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었고 비교적 평등했다. 엥겔스는 이를 “원시 공산주의”라고 불렀다. 그 때는 일부일처제를 바탕으로 부부와 그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엥겔스는 이런 공동체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 분업이 존재했지만,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구조적으로 지배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여성은 계급사회의 등장 뒤에 사회적으로 열등한 존재가 됐다.

원시 공산주의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 노동분업이 있었지만 남성이 특권을 누리지는 않았다.

여성은 주로 채집자였는데, 종종 남성보다 권위가 있었다. 공동체가 영양을 섭취하는 주요 원천이 채집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좀더 선진적인 농업이 발전하면서 변했다. 쟁기의 발명으로 공동체의 당장의 필요보다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잉여’를 관리하는 특권층이 생겨났다. 그와 동시에, 여성의 사회적 구실도 완전히 변했다.

사유재산

수렵·채집 사회와 원예 사회에서 여성은 재생산에서 자신의 구실을 하면서도 생산자 구실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심경(深耕)과 가축의 사용으로 상황이 변했다. 임산부나 어린이를 돌봐야 하는 여성은 이런 작업을 하기 쉽지 않았고, 점차 남성에 종속됐다.

농업이 발달하자 일손도 더 많이 필요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자원 고갈을 피하기 위해 아이의 수를 제한했지만, 농업의 경우에는 더 많은 아이들이 밭일을 도우면 그만큼 더 생산적이었다. 그래서 남성은 생산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게 됐고, 여성이 주로 할 일은 아이 낳는 것으로 바뀌었다.

생산성 향상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이득이었다. 그러나 소수가 잉여를 통제하자 불평등과 계급이 생겼다. 사회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구분됐고, 여성은 주로 ‘사적’ 영역을 담당했다.

사적 가족은 개인 재산이 세대를 거쳐 세습되는 장치가 됐다. 이것은 여성 지위의 최종적 격하를 가져 왔다. 남성은 경제적 구실 때문에 가장(家長)이 되고, 자신의 재산을 아들에게 상속했다. 엥겔스는 “모권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였다. 남성은 가정에서도 지배권을 장악하게 됐다. 여성은 노예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가족은 계급 발전의 결과지 영원한 ‘자연적’ 위계질서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도래와 함께 생산의 목적이 점차 사용에서 교환으로 바뀌자 가정은 생산 단위에서 소비 단위로 변했다.

엥겔스의 주장은 경제의 변화가 계급사회와 억압과 차별을 낳았음을 증명했다. 이는 인류가 오늘날 그런 분열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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