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 역사상 최대 규모의 총파업

 

외신에서

4월 16일 이탈리아에서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총파업이 벌어졌다. 1천1백만 명이 파업에 들어갔다.

20일 전인 지난 3월 23일 토요일에는 3백만 명의 노동조합원·학생·이주 노동자·실업자·연금 소득자 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시위대를 실어 나르기 위해 약 9천2백 대의 버스, 61량의 특별 열차, 5대의 비행기, 4척의 배가 동원됐다.

언론은 이번 시위가 3월 19일 암살당한 정부 고문 마르코 비아지와 관련한 테러 반대 시위처럼 보도했다. 물론 사람들이 그 암살을 반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시위는 주로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의 복직을 보장하는 노동법 18조를 폐지하려는 정부의 조치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이번 시위는 이탈리아에서 50년 만에 일어난 최대 규모 시위였다. 주최측은 노동조합이었지만, 그 전의 스페인 바르셀로나 유럽연합 정상회담 반대 시위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반자본주의 정신이 로마 시위에서도 드러났다.

밀라노에서 온 이동통신 노동자 안드레아는 “오늘날 우리는 시장의 법칙에 유용한 존재일 뿐입니다. 베를루스코니는 사장들이 우리를 쥐어짜 더 많은 이윤을 뽑아 내게 해주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필요 없게 되면 인간다운 삶의 희망도 간직하지 못한 채 내동댕이쳐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반자본주의

작년 여름 제노바에서 있었던 거대한 반자본주의 시위에서 생겨난 여러 사회 포럼의 참가자 수만 명도 시위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행진했다.

시위 현장에서는 팔레스타인 깃발이나 스카프를 두른 사람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젊은이들뿐 아니라 노동조합원들도 정의를 위한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에 연대감을 표시했다. 이탈리아 사회포럼(ISF)의 비토리오 아넬레토는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반전 입장을 분명히 밝힌 시위대도 많았다. 가장 인기 있는 스티커 중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장군(general)은 오직 파업 장군(General Strike:총파업)뿐”이라는 내용이 적힌 것도 있었다.

시위를 뒤덮은 것은 이탈리아노동조합총연맹(CGIL)의 붉은 깃발이었다. 시위 행진이 워낙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민주좌파당[공산당의 후신]과 마르게리타 정당들[가톨릭과 중도 좌파의 느슨한 연합]도 어쩔 수 없이 참가해야 했다.

이 정당들이 참여했던 “중도 좌파” 연립 정부가 친시장 정책들을 밀어붙여 대중의 환멸을 자아냈고 그 때문에 작년에 베를루스코니가 당선됐다. 언론 재벌인 베를루스코니가 이끌고 있는 연립 정부에는 이민을 반대하고 지역 차별적인 북부동맹(NL)과 파시스트인 국민동맹(NA)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 시위에도 불구하고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94년에도 1백만 명 이상이 참가한 총파업과 시위가 베를루스코니를 퇴진시킨 적이 있었다.

3월 19일의 마르코 비아지 암살 사건은 이탈리아의 과거를 상기시켜 준다. 노동법 18조 개정을 추진하던 비아지는 테러 조직 ‘붉은 여단’의 조직원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암살당했다. 그러나 우파 세력의 연루 가능성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다.

1970년대에도 이탈리아의 우파와 국가 권력은 자기들이 저지른 암살과 테러를 좌파의 소행인 양 날조하곤 했다. 이른바 “긴장 조성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날 시위는 테러리즘의 대안과 사회 변혁의 원동력을 보여 주었다.

 

총파업

4월 16일 1천1백만 노동자들이 정부의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총파업에 들어갔다. 민주좌파당 계열의 CGIL, 가톨릭계의 이탈리아기업노동자동맹(CISL), 우파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이탈리아노동자연합(UIL) 세 노총이 주도한 이번 8시간 파업으로 이탈리아 전역이 사실상 마비됐다. 비행기·기차·버스·여객선 등 대중 교통이 멈춰 섰고, 학교·은행·우체국·공장·관공서도 문을 닫았다. TV도 생방송은 불가능했고, 라디오에서는 간간이 뉴스만 흘러나왔다. 자동차 제조업체 피아트는 파업 불참률이 48.7퍼센트라고 발표한 반면, 노조 측은 파업 참가율이 90퍼센트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국영 전력회사 에넬이 전력 소비가 여느 일요일 수준으로 하락했다고 밝히자, CGIL의 지도자 세르지오 코페라티는 공장이 멈추고 있는 게 분명하다면서 “성공적인 파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제 정부가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업은 사실상 월요일부터 시작됐다. 신문 기자와 인쇄공 들의 24시간 파업으로 화요일자 신문이 전면 발간 중지됐다. 항공 관제사·조종사·승무원 들도 파업에 들어가 항공 운송이 마비됐다.

일손을 놓은 노동자들은 깃발, 배너, 풍선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피렌체에서 30만  명이 모인 것을 비롯해, 로마·밀라노·볼로냐의 거리마다 20만 명 이상의 시위대가 축제 분위기에서 행진을 했다. 피아트 본사가 있는 북부 토리노에서도 10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로마에서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로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로베르토 베니니가 포폴로 광장의 시위대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 굉장한 시위입니다. 모든 게 아름다워요.” 볼로냐의 시위대는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락 밴드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행진했다.

 

무솔리니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노동법을 개악하려는 정부에 불만을 터뜨렸다. 로마 시위에 참가한 지롤라모는 “지질학자인 제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불안정한 임시직 고용 계약 때문입니다. 저는 노동법 18조의 보호 대상은 아니지만, 노동자들의 권리가 축소되지 않고 확대되기를 바랍니다.”공업화학자 주시는 “정부는 이런 식으로 우리의 권리를 짓밟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베를루스코니 더하기 피니[국민동맹의 지도자]는 무솔리니”라는 구호가 적힌 가짜 관을 들고 행진하는 시위대는 정부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있다며 분개했다.

이번 파업은 1982년에 임금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총파업 이후 20년 만에 벌어진 전국적인 총파업이었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쉽게 물러나려 하지 않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는 재계 지도자들과 면담한 자리에서 “파업으로 국가의 일부는 멈추겠지만, 국가를 현대화하겠다는 우리의 단호한 의지는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일부 노조 지도자들이 국가가 운영하는 새로운 실업수당 시스템을 의제 삼아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1994년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베를루스코니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히 저항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