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가장 흔한 ― 특히 대학가에서 흔한 ― 비판 가운데 하나는 마르크스주의가 인종 차별, 성 차별, 동성애 혐오 같은 억압[이하 ‘천대’로 용어 변경] 문제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주의가 흑인·여성·동성애자 등은 그들의 투쟁을 계급투쟁에 “종속”시켜야 한다거나 아니면 그들의 문제를 그저 사회주의 혁명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무시하거나 계급 문제로 “환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에 이론적으로 답하기 전에, 역사적 경험은 마르크스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조직들이 이런 문제들을 무시하기는커녕 모든 형태의 인종·성 차별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지도적 구실을 했음을 보여 준다는 점을 먼저 지적해야겠다.

예컨대, 노예제 문제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부를 강력하게 지지했을 뿐 아니라 많은 영국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미국 남부산 면화에 달려 있었는데도 영국 노동자 운동이 북부를 지지하는 태도를 취하게 만드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하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흑인 노동자가 사슬에 매여 있는 한은 백인 노동자도 자유로울 수 없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아일랜드인에 대한 인종 차별 문제(19세기 영국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를 제기하며, 아일랜드인들에게 사회주의 사회를 기다리라고 말하기는커녕 영국 혁명의 필수 전제조건은 아일랜드의 분리·독립이라고 주장했다.

사슬

여성 해방이라는 주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초기 저작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썼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성의 열정적 동참 없이는 위대한 사회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야말로 사회 진보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1884년에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노트를 이용해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썼다. 이 책은 여성 천대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마르크스의 딸인 엘리너 마르크스는 런던 이스트엔드의 노동계급 여성들을 조직했을 뿐 아니라 〈여성 문제〉The Women Question)라는 중요한 소책자를 쓰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제1차세계대전 전에 클라라 체트킨이 남녀 평등과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계급 여성의 대중 조직을 건설했고,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도 러시아에서 비슷한 목표를 추구했다. 러시아 혁명은 여성의 법률적 평등을 철저하게 확립했고 동성애도 합법화했다. 당시 영국 여성들은 아직 투표권도 없는 상태였다.

미국 공산당이 비록 스탈린주의 조직이긴 했지만, 그들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1930년대에 뉴욕 할렘 지구와 미국 남부지방에서 인종 차별에 반대해 싸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흑인 운동과 여성 운동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중요한 구실을 했다. 나찌 홀러코스트의 피해자인 유대인 마르크스주의자 아브람 레온은 《유대인 문제》(The Jewish Question)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유대인 혐오의 기원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서 여전히 아주 중요한 책이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까지 계속돼, 전 세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슬람 혐오라는 새로운 인종 차별에 맞서 싸우고 있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펴본 이런 역사적 경험을 뒷받침하는 정치적·이론적 토대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적 목표는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국내적·국제적 단결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단결을 약화시키거나 위협하는 모든 형태의 구조적·이데올로기적 천대 ― 인종 차별, 성 차별, 동성애 혐오 등 ― 에 맞서 싸울 절대적 의무가 있다.

이론적으로 마르크스주의는 다른 형태의 천대를 계급으로 “환원”하지 않지만, 그런 천대의 근본적 원인이 사회의 계급 분열에 닿아 있음을 보여 준다. 다양한 천대를 계급으로 환원하는 것과 그런 천대의 근원이 계급 분열임을 보여 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가족(가정)

마르크스주의는 여성의 열등한 처지가 가족 구조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한다. 가족 구조는 육아와 가사를 주로 여성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여성을 유급 노동이나 공적 생활과 단절시키거나 여성이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여성에게 이중의 부담을 지운다. 앞서 말한 《가족의 기원》에서 엥겔스는 수렵·채집 사회에서 목축·농업 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남성 지배 가족이 발전했음을 보여 주었다. 또, 사유재산과 계급 분열의 등장과 함께 가족은 재산 상속을 확립하고 아내를 남편의 재산으로 취급하는 수단이 됐다.

가족 형태는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육아와 가사의 주된 장소이고 여성의 종속을 뒷받침하는 주요인이다. 자본가 계급이 입으로는 아무리 남녀 평등을 떠들더라도 그들은 이런 상태를 유지하는 데 막대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그들은 여성 차별 덕분에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최저 수준으로 낮출 수 있고, 값싼 노동력을 얻을 수 있고, 노동자 대중을 확실하게 분열시킬 수 있다. 그들이 동성애를 비난하는 이유는 동성애를 가족 제도로부터의 일탈이자 가족에 대한 위협으로 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인종 차별을 노예 무역의 이데올로기적 반영이자 정당화로 본다. 노예 무역을 통해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아메리카의 면화·담배·설탕 플랜테이션[대농장]으로 옮겨져 강제 노동에 시달렸고, 이런 식민지들에서 진행된 자본의 시초 축적(약탈)은 16·17·18세기의 자본주의 발전에서 결정적 구실을 했다. 인종 차별은 유럽 열강이 전 세계의 대부분을 장악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단계를 거치며 더 세련되고 강화됐다.

오늘날 우리 곁에는 이런 역사적 유산이 “수정된” 형태로 남아 있다. 그것[수정된 형태의 인종차별]은 이민자들과 난민들이 우리를 위협한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민자들과 난민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실패 책임을 떠넘기기에 딱 좋은 속죄양이고 ‘이간질시켜 각개 격파하기’의 또 다른 적용 대상이다. 여기에다 서방 제국주의가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의 부산물인 이슬람 혐오도 더해야 한다. 그들[서방 제국주의자들]은 ‘테러와의 전쟁’ 운운하지만, 사실은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에너지 공급을 지배하고 장차 중국의 도전에 대비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이다.

이런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의 장점은 다른 관점들이 흔히 빠지는 두 가지 함정을 피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첫째는 인종 차별과 성 차별 등이 무지에서 비롯한 편견일 뿐이고, 따라서 교육만으로도 언젠가 극복될 것이라는 피상적이고 자기만족적인 관점이다. 둘째는 이와 정반대로 그런 편견이 ‘자연스런’ 것이고 따라서 어쩔 수 없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이 둘은 흔히 서로 보완한다. 둘 다 천대에 반대하는 투쟁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관점은 천대에 저항하는 투쟁을 강화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인종 차별, 성 차별, 동성애 혐오를 철저하게 근절하려면 자본주의를 전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천대받는 자들에게 혁명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형태의 천대에 반대하는 투쟁이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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