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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자본에 반대하는 투쟁

3월에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3백만 명이 거리를 뒤덮었다. CGIL(이탈리아노동조합총연맹)이 호소한 이 시위는 전후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커다란 규모였다. 4월 16일에는 총파업이 예정돼 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5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지난해 12월 반란으로 데 라 루아 정권이 타도됐다. 이 나라는 1930년대 이래 어떤 공업국도 겪어 보지 못한 심각한 경제 공황에 봉착해 있다. 국제적 대중 운동은 세계적 규모에서 좌파에게 커다란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물론 그림의 다른 측면도 존재한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적 승리를 거뒀고 조지 W 부시의 국내 인기는 높다. 유럽에서는 우익이 부상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베를루스코니가 집권했고 지금 프랑스 대선에서도 우파인 자크 시라크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사회민주주의(개량주의)는 1930년대 이래 그 어느 때보다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신자유주의의 포로가 됐다. 지난해 7월에 이어 민주노총 상근간부층의 배신으로 발전 파업은 패배했다. 그러나 이것은 훨씬 더 복잡한 양극화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모든 사회 위기 때마다 균열이 생긴다. 1930년대에도 그랬다. 길게 보자면, 오늘날에도 좌우 분열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1999년 말 시애틀 시위는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정치적 급진화 과정을 극적으로 자극했다. 그 때 이래 2년 반 동안 반자본주의 운동은 거대하게 성장했다. 이 운동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심화시켰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반자본주의 운동은 반군국주의·반전 운동과 결합됐다. 반자본주의 운동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한 심각한 좌절을 겪지 않았다. 올바르게도 반자본주의 운동은 민족적·애국적 압력을 견뎌 냈다. 지난해 12월 브뤼셀의 유럽연합 정상회담 때는 두 개의 거대한 시위가 열렸다 ─ 10만 명이 참가한 노동조합 시위와 3만 명이 참가한 반자본주의 시위. 이탈리아의 반자본주의 운동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여름 제노바에서는 30만 명이 참가한 반자본주의 시위가 벌어졌다. 가을에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반전 시위가 열렸다. 아시시에서는 25만 명이 반전 집회에 참가했다. 올해 3월 로마에서는 주말마다 시위들이 열렸다. 베를루스코니에 반대해 12만 명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연대를 위해 10만 명이, 3월 말에는 3백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9월 11일 테러가 운동에 직접 영향을 미친 미국에서조차 운동이 회복되고 있다. 2월 뉴욕에서는 2만 명이 언론의 혹독한 비난과 경찰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WEF(세계경제포럼)에 항의했다. 이것은 반자본주의 시위일 뿐 아니라 반전 시위이기도 했다. 지방 방송국은 이 시위가 지난 10년 동안 뉴욕에서 벌어진 가장 커다란 시위였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고무받아 활동가들은 4월 20일 워싱턴 반전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조지 W 부시는 이런 조직된 반대에 신경써야 했다. 왜냐하면 전쟁 문제에서는 높은 지지를 얻고 있지만 다른 문제들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Time/CNN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1퍼센트가 부시가 “평범한 사람들보다 대기업에 훨씬 관심을 기울인다”고 생각한다. 50퍼센트가 부시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A’를 줬지만, 경제에 ‘A’를 준 사람은 13퍼센트뿐이다. 이것은 미국이 군사적 강국이긴 하지만 경제력은 전후 시기 동안 핵심 경쟁국들에 비해 기울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조지 부시의 “악의 축” 발언으로 미국은 국제적으로 고립됐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지했던 유럽과 중동 지배자들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 계획을 비난했다.

한국의 반자본주의 운동

한국에서는 아직 바르셀로나와 로마 같은 규모의 시위를 볼 수 없다. 그러나, 2000년 10월 서울에서도 2만 명이 모인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것은 국제 반자본주의 운동의 맥을 잇는 것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2만여 명의 시위 참가자 가운데 압도 다수가 노동자였다는 점이다. 민주노총 소속의 노동자들이 대열의 90퍼센트 가까이 됐다. 이와 함께,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다”는 구호가 인기를 끌었던 것에서 보듯이 다양한 집단들이 이윤 지상주의(사실상 자본주의를 뜻한다)를 문제로 여기고 시위에 참가했다. 그 뒤 노동자 운동은 자본주의가 낳는 특정 폐해와 양상(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 등)을 반대하는 투쟁으로 분산됐다. 노동자 운동의 정치적 투쟁과 경제적 투쟁은 이처럼 갈마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계급 투쟁은 대안을 논의하는 수준으로까지 고양됐다. 3월에 18개 진보단체가 모인 ‘연대와 성찰 : 사회포럼 2002’가 한 예다. ‘사회포럼 2002’에 참가한 단체들은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 공감했다. 논쟁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둘러싼 것이었다. 민주노총 등은 공공성 강화(국가의 재생이용)를 주장한 반면, 시민단체들은 국가 규제가 아닌 국가로부터의 자율성을 옹호했다. 좌파들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해 공공성 강화를 지지한다. 올해 초 공공 3사의 파업도 단지 특정 작업장 쟁점이 아니라 정부 정책인 사유화를 반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유화가 아닌 다른 대안(공공성 강화)을 요구했다. 공공 부문 파업의 이런 정치적 성격 때문에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커다란 연대 파업 압력을 받았다. 비록 발전 파업이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배신 탓에 쓰라린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노동자 운동이 한 단계 도약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보여 주었다. 지난해 메이데이 때는 “김대중 퇴진”을 둘러싸고 운동 내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1년이 지난 지금 김대중 퇴진은 더 이상 논쟁 거리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김대중 퇴진 이후의 대안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정치적 사실이 있다. 발전 파업이 끝난 직후 우파들이 반격(노무현에 대한 ‘색깔’ 공세)에 나섰다. 노무현을 공격하는 것인 동시에 좌파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색깔’ 논쟁은 이념의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의미심장한 여론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문화일보〉와 YTN이 TNS에 의뢰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71.7퍼센트가 진보적 성향의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변했다. 2년 전에는 63퍼센트였다. 반면, 보수적 성향의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17.5퍼센트였다.(2년 전에는 35.1퍼센트였다.)

기회를 움켜 쥐기

양극화와 동시에 모순이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모순의 발전 방향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파괴적 결론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건설적 결론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 동안 양극화는 왼쪽으로 이동해 왔다. 그러나 역류가 존재한다. 너무 강한 나머지 전체 흐름을 뒤바꿀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유럽 사회민주당 정부들의 실패는 1990년대 선거에서 부분적인 패배를 불렀다.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이 그랬다. 김대중의 파산은 우파가 준동할 수 있는 토양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아래로부터의 운동은 심각한 패배를 겪지 않았다. 지금 운동은 강력한 단결과 연대를 요구한다. 따라서 대다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고 그 기반 위에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가장 효과적인 행동에 끌어들일 수 있는 기본 틀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좌파는 강 어귀의 삼각주와 같다. 썰물일 때 좌파는 말라 버린 수로가 된다. 그러나 밀물일 때는 강력한 하나의 물줄기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무엇 때문인가? 부분적으로 노동자 투쟁의 부상이다. 국제적으로는 1995년 공공 부문 총파업 이후 프랑스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1997년 1월 대중 파업 이래 나타난 특징이다. 그러나 더 주된 것은, 자본주의는 우리가 바라는 세계가 아니라는 새로운 각성이다. 대기업과 기성 정치 체제 그리고 그들의 무장 가신들은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의 적이다. 그들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유신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상관 없이 말이다. 우리의 첫번째 임무는 이 운동을 지지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계급 운동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과 자신을 구별짓는 특수한 슬로건에서 체면을 찾는” 것은 종파(주의)다. 그러나 운동의 일부가 되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이미 운동 안에는 위기가 존재한다. 각각의 위기는 중요한 사상적·전략적·전술적 전투를 불러일으킨다. 국제민주연대를 비롯한 적지 않은 단체들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폭력’을 양비론적으로 바라보곤 한다. 그래서 양측 모두에 폭력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 되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일관되게 반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전략적 방향을 둘러싼 논쟁에서 다수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운동의 단결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다수가 근본적 사회 변혁의 원칙 일반에 동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구체적 상황에서 핵심적인 전략·전술 문제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매우 독립적으로 변혁 운동가들과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과 협력해 다수를 공동의 캠페인으로 이끌고 가야 한다. 운동이 성장할수록 변혁 운동가들의 규모도 더 늘어나야 한다. 그래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의 사상이 광범한 운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우리의 투쟁이 운동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는지, 우리의 국제주의가 운동의 국제주의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 줘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운동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활동가들은 세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기꺼이 들을 태세가 돼 있다. 우리가 그들을 운동에 확실히 끌어들이려면 세계를 효과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대중 운동 속에 있다면, 때로 진지한 정치 토론이나 ‘심오한’ 사상 이론을 피해야 단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흔들리곤 한다. 운동의 단결을 위해 이데올로기까지 통일돼야 한다는 압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길게 보면 운동이 직면한 근본 문제들에 대해 주장하고 과거의 역사와 전통을 통해 지금의 문제를 보려는 사람들이 다수파가 될 것이다. 올바른 정치 분석의 기반 위에서 형성된 단결이 서로의 차이를 옆으로 제쳐 둔 채 피상적 의무감으로 건설된 단결보다 훨씬 더 오래 가고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