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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90주년 토론회:
러시아 혁명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2월 4일 ‘다함께’가 주최한 ‘러시아 혁명의 희망과 좌절’ 토론회는 대성황이었다. 5백 명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토론회 연사들이 집필한 《러시아 혁명과 레닌의 사상》, 《마르크스와 트로츠키》가 금세 동나 러시아 혁명과 레닌·트로츠키 등에 관심이 높음을 보여 줬다.

이날 토론은 러시아 혁명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제정 러시아와 10월 혁명’을 발제한 최일붕 동지는 1917년 2월 혁명의 교훈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첫째, 2월 혁명은 철옹성 같은 국가도 아래로부터 투쟁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오늘날에도 1998년 인도네시아, 2001년 아르헨티나, 2005년 볼리비아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둘째, 2월 혁명은 반전 운동에서 시작했다. 따라서 반전 운동을 단순한 평화주의 운동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셋째, 자율주의자들의 평가와 달리 2월 혁명은 순전히 자생적인 혁명은 아니었다. 기층 차원의 조직과 지도가 있었다.

넷째, 2월 혁명을 부르주아 혁명, 10월 혁명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도식화해선 안 된다. 2월 혁명은 토지 개혁을 전혀 실행하지 못한 반면, 당시 이미 소비에트, 즉 노동자 권력이 탄생했다. 러시아의 ‘부르주아적’ 과제들은 10월 사회주의적 혁명을 통해 비로소 해결된다.

다섯째, 1905년과 1917년 2월, 1917년 10월에 이르는 과정에서 대중은 역사적 경험에서 배운다는 점을 입증했다. 일례로, 1905년 초 노동자들은 짜르에게 환상을 갖고 청원했지만, 1917년 2월에는 처음부터 “짜르 타도”를 외쳤다.

여섯째, 혁명의 초창기엔 미조직 노동자들이 선두에 섰지만 금세 기존의 조직된 부문이 선두에 서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에서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경원시하는 일부 좌파들은 러시아 혁명의 역사적 교훈에서 배워야 한다.

교훈

최일붕 동지는 레닌도 1905년에는 혁명에 대해 ‘단계론’적 도식을 갖고 있었지만 1917년 ‘4월 테제’에서는 사실상 트로츠키의 ‘연속혁명’적 관점을 받아들였고, 이를 바탕으로 10월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17년 10월 혁명은 전쟁 중단, 토지개혁, 노동자 민주주의, 소수민족의 자결권 보장, 이혼·낙태·동성애 합법화, 종교의 자유 보장, 국가와 교회의 분리, 교육과 교회의 분리 등 수많은 진보를 러시아 사회에 가져온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이어진 청중 토론에서는 스탈린주의 비판이 주를 이뤘다. 1920년대 말 스탈린이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1917년 혁명과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어떻게 왜곡했는지, 또 반스탈린 투쟁에 헌신한 트로츠키의 사상이 오늘날 왜 유효한지 등.

정리 발언에서 최일붕 동지는 오늘날 북한 같은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 스탈린주의 국가가 소멸했고, 한국의 스탈린주의자들이 대부분 개량주의자가 됐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2단계 혁명이냐 연속혁명이냐’가 아니라 ‘개량이냐 혁명이냐’가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또, 스탈린주의자들과 차이점을 부각하는 데 주력하다 보면 자칫 종파주의로 흐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처럼 발전이 더딘 곳이나 중국처럼 노동계급이 인구의 다수가 아닌 곳에서는 연속혁명의 문제제기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지적했다.

‘내전과 소비에트 러시아’의 발제에서 최일붕 동지는 혁명 이후 러시아가 겪은 끔찍한 내전과 내전중에 왜 볼셰비키가 몇몇 억압적 조처들 ― 특히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 진압 ―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했다.

또, 내전 이후 노동계급 기반이 파괴되고 국제 혁명 확산이 실패하자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당 관료들이 반혁명을 추구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특히 독일 혁명과 중국 혁명이 실패해, 고사할 수밖에 없었던 러시아 혁명의 운명을 지적하며 혁명의 국제적 확산이 중요함을 거듭 강조했다.

플로어에서는 한 발언자가 최근 박노자 씨가 쓴 ‘1917년 러시아 혁명, 배울 것 배우고 미화하지 말기’란 글을 언급하며 비밀경찰 ‘체카’의 억압적 활동, 적군에 배치된 제정 군대 장교 출신들의 가족을 인질로 잡은 것, 탈영병 총살 등 내전기 볼셰비키 정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질문했다.

체카

답변에 나선 한 발언자는 박노자 씨가 볼셰비키의 제헌의회 해산을 비판했지만, 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냐 노동자 민주주의냐’의 선택에서 더 진보적 정치 체제인 노동자 민주주의, 즉 소비에트를 선택한 결과라며 볼셰비키의 선택을 옹호했다.

또 다른 발언자는 ‘체카’가 반혁명과 자본가들의 사보타주를 저지하고자 만들어진 조직이며 내전의 상황 전개에 따라 억압 조처가 강화하거나 약화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체카의 활동은 최대한 엄격하게 통제되고 투명하게 공개됐으며 내전의 종식과 함께 폐지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있었던 비극만 주목하다가 모든 혁명은 결국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러시아 혁명이 성취한 여성 해방·완전한 종교의 자유 같은 조처들은 당시 선진 자본주의 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들이었고 러시아 혁명은 조선에서 일어난 3·1운동처럼 당시 억압받던 식민지 민중의 해방 운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또한, 러시아 혁명 당시보다 자본주의가 국제화했고 2003년 전 세계에서 1천5백만 명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것을 보면 오늘날 혁명의 국제적 확산 가능성은 러시아 혁명 당시보다 크다고 덧붙였다.

연사도 정리발언에서 볼셰비키가 일부 불필요한 억압적 조처들을 시행한 점은 물론 사실이지만 이것을 과장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특정 사건을 역사적 맥락에서 떼어내 판단하는 역사적 추상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박노자 씨의 러시아 혁명 비판은 사실 관계조차 정확치 않은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내전 당시 적군이 총살을 집행한 것은 탈영병이 백군에 가담했거나 장교가 탈영해 동료 부대원들에게 큰 위험을 초래했을 때와 같은 상황에서만 있었고, 제정 러시아 출신 장교가 반역 행위를 했을 때 인질로 잡은 가족을 일부(가량 브랑엘을 도운 그의 가족의 경우) 국외로 추방은 했어도 총살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지적했다. 볼셰비키가 탄압한 멘셰비키·사회혁명당원들도 반혁명에 가담한 사람들에 국한됐음을 지적했다.

‘스탈린 반혁명과 스탈린주의 러시아’를 발제한 정성진 교수는 1923~1928년에 기반을 닦은 스탈린이 1928년 반혁명 이후 급격한 강제 농업집산화와 중공업 육성책을 실시했고, 이것은 서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을 단시일 안에 따라잡으려 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것의 주된 목적은 서방 제국주의 국가와 군사적으로 경쟁하려는 것이었고, 대중의 필요는 자본 축적에 종속됐다.

이 과정에서 임노동자가 급속하게 증가했고, 당간부와 일반 노동자·농민 사이의 빈부격차가 갈수록 늘었다.

정 교수는 스탈린주의가 단지 러시아 내부의 반혁명뿐 아니라 러시아 바깥의 여러 혁명 운동에도 커다란 해악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주의는 독일 사민당을 ‘사회파시즘’이라고 부르며 공산당과 사민당의 반파시즘 공동전선 형성 가능성을 차단해, 결국은 독일의 반파시즘 투쟁을 마비시켰다. 1935년 이후로는 국제 공산당 운동이 계급연합 전략을 추구하게 해 재앙적 결과를 낳았다.

계급연합

스탈린주의를 올바로 평가하는 문제는 단지 과거사를 들춰내려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얘기할 때마다 스탈린주의 체제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문제가 대두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스탈린주의 러시아를 제대로 분석하고 올바른 사회주의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국가자본주의 이론뿐임을 강조했다.

청중 토론에서도 국가자본주의 이론이 오늘날 우리에게 왜 중요한지가 토론됐다.

한 발언자는 소련을 모종의 ‘사회주의’ 사회로 보거나, 그 반대로 소련을 서방 자본주의 사회보다 열등한 체제로 보는 것은 모두 잘못된 정치적 실천을 낳았음을 사례를 들어 지적했다.

현재 남아 있는 스탈린주의 체제인 북한에 인접한 한국에서는 더 그렇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면 북핵에 반대하면서도 미국의 대북 압박에 반대할 수 있고, 주체사상에 반대하면서도 ‘일심회’ 마녀사냥 피해자들을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 발언에서 정 교수는 오늘날 남한에서 박근혜·이명박이 부상하는 상황은 옛 소련이 붕괴하고 시장 자본주의가 도입된 뒤 경제가 엄청난 위기에 빠지자 많은 사람들이 스탈린 체제를 그리워한 것과 비슷하다며 진정한 좌파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역설했다. 그래서 스탈린주의에 맞서 일관되게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고수한 트로츠키의 사상에서 배워 21세기의 진정한 좌파적 대안을 건설해 나아갈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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