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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내실화인가 부실화인가

공교육 내실화인가 부실화인가

최승호(전교조 서울지부 정치위원회 준비위원)

현재 한국 교육이 붕괴됐다고들 한다.

하나의 대책이 지난 2월 14일 재경부 산하 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비전 2011’ 속에서 제시됐다. 핵심 내용은 평준화 해제, 기여 입학제 도입, 사립학교와 입시학원의 통합이다. 한 마디로 말해, ‘비전 2011’은 가진 자들을 위해 교육 기회를 확대하자는 방안이다.

또, 지난 3월 18일 교육인적자원부는 ‘공교육 진단 및 내실화 대책’을 내놓았다. 이 대책의 주요 내용은 보충수업의 부활, 체벌 허용, 전국 모의고사 및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2월 학기 및 봄방학 폐지, 학원 심야영업 단속 등이다. 한 마디로 말해, 학교를 입시학원처럼 만들어 사교육과 경쟁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소위 ‘공교육 내실화 방안’을 둘러싸고 찬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적지 않은 학부모들과 입시를 앞둔 학생들이 반기는 이유는 사교육비의 부담을 줄일 수도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 부유한 학부모들은 대체로 반대하고 있다. 이들이 유일하게 환영하는 것은 2월 학기 및 봄방학의 폐지다. 이것은 겨울 어학연수 기간과 겨울방학을 맞추기 위해 일부 학부모들이 몇 년 전부터 계속 요구해 왔던 사안이다. 이 점에서 2월 학기 폐지는 오히려 사교육 강화 대책이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교사들이 수업의 어려움, 전근을 위한 준비 등 때문에 2월 학기 폐지를 오래 전부터 계속 요구해 왔지만 교육부는 행정상 어려움 등을 들며 모르쇠로 일관했던 태도와 대조된다.

이번 대책안의 핵심은 보충수업 부활이다. 교사의 노동력을 쥐어짜서 수업의 양을 늘리자는 것이다. 지금도 교사들은 많은 수업 일수와 잡무로 교재 연구 시간은 평균 30분을 밑돈다. 학생들도 많은 과목과 수업 시간에 질려 있다.

체벌은 학교 권위주의를 강화해 수업의 질을 높여 보겠다는 생각이다. 학생들은 피곤에 절어, 혹은 이미 학원에서 배워서, 아니면 자포자기해 거의 수업을 듣지 않는다. 그러니 ‘사랑의 매’로 수업의 집중도를 높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보충수업과 회초리로 공교육이 내실화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마 교육부에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교육부가 이러한 과거 회귀적인 대책을 내놓았을까? 보충수업과 체벌은 김대중 정부 이후 금지되었던 정책이다. 또, ‘내실화 방안’은 7차 교육과정이 부르짖는 ‘개성 추구와 학습자 중심 교육, 수준별 수업,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함양,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 창의적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 같은 구호와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정부 정책의 모순

교육부가 이번 대책을 내놓은 이유는 정부 내 재정 투입의 우선 순위에서 교육 부문이 밀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추구하는 7차 교육과정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교육 환경 개선과 교원의 질 향상을 위한 교육과 처우 개선, 사회 교육시설 확충을 위해서 엄청난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 이것은 김대중 정부가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그래서 정부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교사 쥐어짜기와 학생 때려잡기뿐이다.

진보적인 교육 관련 단체뿐 아니라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일간지와 보수적인 교육학자들도 이번 대책을 반대하고 있다. 그들은 이번 대책이 공교육의 근본적인 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 대증요법이라며 더 근본적인 조치들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이 요구하는 ‘근본적인 조치’는 경쟁 교육을 더 강화하는 것으로 평준화 해제와 자립형 사립고 확대, 기여 입학제 허용 등이다. 그들은 특히 공교육 위기의 주범 운운하며 평준화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은 좋은 학교에 다니게 하고, 돈 많은 사람이 마음껏 돈으로 교육을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 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더 열악해진 교육을 받는 처지가 될 것이다. 노동자 계급은 이러한 불평등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평준화는 단순한 형식적 평준화에서 더 나아가 오히려 더 강화되고 확대돼야 한다. 농어촌이나 가난한 지역의 학교에 대한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 평준화 지역도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 아직도 평준화 대상에서 제외돼 중학교 때부터 입시지옥에 시달려야 하는 지역이 많이 있다.

평준화 대상도 민주노동당 강령에 나와 있듯 국공립대학교들에까지 확대돼야 한다. 그리고 나서 국가의 재정 지원을 통해 사립대학교들의 교육 여건을 개선해서 점차 평준화 대상에 포함시켜 나가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입시지옥과 암기식 공부 속에서 붕괴된 공교육을 되살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고통을 조금이나 덜어 줄 수 있는 길이다.

오늘날 공교육의 위기는 비단 우리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1980년대 들어 각국은 구조조정과 민영화, 사회복지 축소 등을 통해 노동자 계급을 노골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각국의 교육재정도 점차 삭감돼, 1990년 들어 거의 모든 나라들이 교육의 위기를 말하게 됐다.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가난한 가정의 학생들은 불안한 가정 환경 때문에 공부에 전념하기 어렵고 고액 과외는 꿈도 꾸지 못한다. 더군다나 공교육 재정도 6퍼센트대에서 4퍼센트대로 삭감됐다. 국가는 교사들을 쥐어짜고 학생들을 들볶으며 학부모들에게 교육비 부담을 떠넘겨 교육의 위기를 해결하려 한다. 반면, 부자들은 평준화 해제 등을 요구하며 자신들만의 살 길을 찾고 있다.

노동자 계급은 여기에 반대해서 싸워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도 부자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교육 내실화를 요구해야 한다.

구조조정과 공교육 내실화는 양립할 수 없다. 민영화와 공교육 내실화도 양립할 수 없다. 그리고 FX 사업과 공교육 내실화도 양립할 수 없다. 복지의 축소와 공교육 내실화도 양립할 수 없다. 이 모든 공격에 맞서 노동자 계급이 함께 투쟁할 때만 진정한 공교육 내실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전교조가 발전노조의 파업에 연대하려 했던 것은 좋은 본보기다. 차별이 없는 세상을 위해 힘차게 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