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는 “할 말이 많지만 한 가지만 얘기”한다며 ‘사회연대전략’ 알리기에 초점을 맞춰 연설했다.

IMF 경제 위기 이후 10년 동안 수많은 노동자들과 저소득층 서민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은 더 어려워지고 대학 등록금은 1천만 원 시대로 접어드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 때문에 연금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불안한 노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6백44만 명에게 나눔과 공생의 손길을 내밀자”는 문 대표의 말은 공감할 부분이 있다.

그런데 문 대표는 이런 “사회적 나눔”의 첫 시도로 ‘저소득층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사업’을 내놓았다.

정규직 노동자들과 ‘덜 가난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미래에 받을 연금을 일부 포기해 4조 원의 기금을 마련하고, 정부와 기업주들도 돈을 더 내서 그 돈으로 앞으로 5년 동안 저소득층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빈민들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 주자는 것이다. 문 대표는 이를 위해 “노조부터 설득해 나가겠다”고 했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노후에 연금 한 푼 못 받을 현실을 생각하면 민주노동당이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제안이 실제로 정부와 기업주들에게도 호소력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양극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비정규직을 늘려 온 것이 정부와 기업주들이고, 이들은 지난 연말에도 비정규직을 늘리는 비정규직 악법을 통과시켰다.

또, 일부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의 보험료를 내지 않으려고 법을 어기면서까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이 양보한 돈으로 이런 자들까지 지원하는 것이 과연 ‘함께 부담’하는 사업일까?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먼저 나서서 양보할 테니 당신들도 양보하라’는 말은 앞부분은 잘 들려도 뒷부분은 들리지 않기 마련이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이 정부와 열우당의 연금 개악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기초연금제를 도입하자고 ‘양보 교섭’을 한 지 하루 만에 저들은 민주노동당의 뒤통수를 치고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기초연금제가 빠진 연금 개악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10년 동안 바로 이런 방식으로 ‘노사정 합의’, ‘사회적 합의’가 실패를 거듭하며 민주노총의 발목만 잡아 왔다는 평가를 문 대표와 당 지도부는 진지하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노동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려다 보니 문 대표는 현재의 국민연금 제도를 정규직 노동자들이 누리는 ‘특혜’로 격상시켜 버렸다.

물론 국민연금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의료보험과 함께 정부와 기업주들한테서 쟁취한 중요한 성과다.

그러나 그 급여 액수가 형편없어 “연금 제도가 좋다는 것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는 문 대표의 말에 착찹한 표정을 지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문 대표와 당 지도부는 애써 현재의 국민연금을 과대 포장해 어느 정도의 양보는 불가피하니 우리끼리라도 나누자고 할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 자체를 더 나은 제도로 만들자고 해야 한다. 그래야만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악에도 일관되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회적 ‘특혜’를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나누라고 하다 보면 본래 의도와 상관 없이 노무현의 ‘정규직 책임론’과 맞닿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특혜’를 나눠야 할 사람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을 떼어간 것이 아니라, 기업주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을 떼어간 것이다.”(김유선, 《한국노동자의 임금실태와 임금정책》)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 월급의 1천 배나 되는 연봉을 받고 어마어마한 주식차액을 챙긴 정몽구와 온갖 탈세로 수십조 원의 재산을 상속한 이건희 일가 등 기업주들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이런 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이가 지구의 남극과 북극 차이라면 노동자들 사이의 ‘양극화’는 기껏해야 서울과 부산 정도다.

이 부자들은 소득의 0.1퍼센트도 안 되는 보험료를 내고 낸 돈보다 많은 연금을 받아가는데 왜 ‘덜 가난한’ 노동자들이 양보해야 하는가.

양보 교섭

결국 문 대표는 진정한 ‘나눔과 공생’의 정신을 파괴하는 자들을 비판하지는 않고, 그들 앞에서 당이 노동자들의 양보를 설득하겠다고 ‘읍소’한 셈이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은 이 모든 문제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인 정부와 기업주들을 통렬히 비판하며, 정규직 노동자들의 진정한 ‘책임’은 이들에 맞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 투쟁하는 데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연대전략’은 여전히 당내에서 토론중이며, 최고위원회 상위의 어느 공식 의결기구에서도 정식으로 토론되고 결정된 바 없다.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도 선거운동 당시 ‘사회연대전략’에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문 대표는 당내에서 민주적 토론과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정책을 언론에 발표해 이견들을 묵살해선 안 된다.

문 대표가 생방송 중계의 소중한 기회를 일종의 ‘고통분담론’, 차별성 없는 ‘대기업 노동자 양보론’으로 허비한 것은 정말 아쉽다.

주류 정당들에 대한 환멸이 커지는 지금, 당은 더 통렬한 비판과 진정한 대안 제시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