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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모랄레스 정부 1년:
대중운동과 자본주의적 합법성 사이에서 줄타기하기

볼리비아는 새천년 초부터 라틴아메리카 급진화의 상징이 된 나라였다. 2000년에 코차밤바의 대중은 물 사유화 반대 투쟁을 통해 다국적기업을 내쫓았다. 2003년과 2005년에는 대통령을 두 번 몰아낸 대규모 민중 항쟁이 일어났다.

이런 투쟁의 근저에는 1985년 도입된 신자유주의 ‘개혁’에 반대하는 대중의 분노가 숨어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혁명적 변화의 가능성이 있었다. 볼리비아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조직 수준과 전투성은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최고였다.

MAS[‘사회주의를 위한 운동’]의 지도자 에보 모랄레스가 볼리비아 역사상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대중 투쟁 덕분이었다. 따라서 모랄레스 정부가 운동의 지도자들을 정부 각료에 임명하고,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는 움직임을 보인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모랄레스와 MAS 출신의 주요 정부 관리들의 전략은 자본주의적 합법성의 틀 내에서 개혁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모랄레스와 MAS의 전력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MAS는 최근 볼리비아 대중 투쟁 동원 과정에서 주도적 구실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2004 5년에는 나중에 대중운동이 축출한 카를로스 메사 정부와 협력하기도 했다.

MAS 지도자들 중 어느 누구도 볼리비아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궁극적 목표로 삼지 않는다. 비록 부통령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를 포함해 일부 MAS 지도자들이 볼리비아의 사회주의적 변혁을 위한 생산력 발전에 ‘안데스 식 자본주의 발전’이 필요하다는 미사여구로 그런 정책을 정당화하지만 말이다.

결국 모랄레스 정부의 지난 1년은 이런 두 요소 대중운동과 자본주의적 합법성 사이에서 줄타기한 1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순된 압력

물론 2006년 상반기 동안 가스·석유 국유화를 포함해 중요한 개혁들이 실행됐다. 그러나 이 개혁은 한계가 있었다. 정부 재정정책은 과거 정부처럼 안정을 우선했다. 광산 국유화는 거의 실행되지 않았다.

또, 새로 구성된 제헌의회는 대중의 기대만큼 혁신적이지 못했다. 대중은 볼리비아 사회의 총체적 변화의 내용이 새 헌법에 담기길 바랐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헌의회는 우파 정당들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서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모랄레스 정부가 자본주의적 합법성을 철저히 준수하려 하면서 우파의 눈치를 보고 그들과 타협하려 한 것이었다. 심지어 2006년 하반기에는 석유 국유화 속도를 늦추는 등 우파의 압력에 밀려 우경화하는 듯했다.

대중운동은 모랄레스 정부의 위로부터의 개혁에 대한 여전한 기대와 일부 운동 지도자들의 모랄레스 정부 입각으로 관망세를 취했다.

이런 요인들이 결합해서 2005년 5월의 혁명적 위기 이후 찌그러져 있던 우파들이 다시 세력 결집에 나설 수 있는 기회와 자신감을 얻었다.

특히, 2006년 8 9월 이후 천연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4개 주 산타크루스·타리하·판도·베니 의 우파들이 선봉대 구실을 했다. 이들은 이른바 ‘자치권’을 얻어 천연자원 국유화를 무력화하려 한다.

우파의 이런 움직임 때문에 대중운동은 다시 동원에 나서게 됐다. 2006년 8 9월 이후 우파의 도발에 맞서 모랄레스 정부를 방어하는 시위가 빈번히 일어났다. 이런 시위의 중요한 특징은 단순한 반우파 시위를 넘어 개혁의 전진을 요구하는 시위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좌우파 간 정치적 긴장이 눈에 띄게 첨예해졌다. 9월 이후로 군부 쿠데타 발생 소문이 여러 차례 떠돌았다.

후아누니 광산을 둘러싼 광산 노동자와 협동조합 광부들 간의 충돌은 이런 정치적 긴장이 폭발한 것이었다. 특히, 최근 코차밤바 ‘민중 주정부’구성은 볼리비아 대중운동의 혁명적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 준 사례였다.

코차밤바 주는 2000년 ‘물 전쟁’승리 후 볼리비아에서도 가장 강력한 투쟁 역량을 가진 곳 중 하나로 꼽혀 왔다. 1월 16일에 코차밤바 중심가에 모인 대중, 특히 코카 재배 농민들은 ‘민중 주정부’를 구성하고 그 자리에서 투표로 레이에스 비야를 해임하고 새로운 민중 주지사를 선출했다.

유감스럽게도 모랄레스 정부의 주요 인사들 모랄레스뿐 아니라 알란 가르시아 부통령 등 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주지사를 그런 방식으로 해임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모랄레스는 주민소환제를 대안으로 내놨다.

그러나 모랄레스 정부가 집권하고 개혁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2003년과 2005년 대중의 ‘불법’투쟁 덕분이었다. 또한, 레이에스 비야를 해임한 것은 주민소환의 정신을 실천한 것이기도 하다.

코차밤바

그러나 코차밤바의 민중권력 맹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했다.

먼저, 코차밤바 시위의 다수를 이룬 코카 재배 농민들이 민중권력 요구를 일관되게 지지하지 못했다. 코카 재배 농민 운동은 아직 MAS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농민들의 압력으로 지역 MAS 지도자들이 허둥지둥 급진적 제스처를 취해야 했다. 그러나 이후 많은 농민들은 MAS 지도자들의 설득을 받아들여 코차밤바 시내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결국 ‘민중 주정부’에는 일부 극좌파와 학생, 노동자 들만이 남았다.

둘째, 볼리비아 전체로 보면, 대중운동의 다수는 아직 모랄레스 정부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이것은 부질없는 환상만은 아니다.

최근 모랄레스 정부는 볼리비아 최대 통신사 엔텔, 빈토 광산단지 등이 포함된 국유화 확대 조처를 발표했다. 모랄레스 정부는 아직 대중의 요구와 기대를 일부 흡수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 줬다. 즉, 대중에게 모랄레스 전략의 모순은 여전히 투쟁 과정에서 입증돼야 할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들이 모랄레스 정부를 무턱대고 비난하는 초좌파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대중과의 괴리를 낳을 뿐이다. 이런 태도를 취하는 급진 좌파 조직으로는 코차밤바 ‘민중 주의회’구성에서 일정한 구실을 했던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볼리비아(SOB-Bolivia)‘경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모랄레스 정부를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곤란하다. 일례로, 오스트레일리아의 급진좌파 주간지 〈그린 레프트〉의 라틴아메리카 주필(主筆) 페드로 푸엔테스는 우익에 맞선 볼리비아 대중운동의 단결 필요성을 강조한 나머지 코차밤바 투쟁에서 모랄레스가 우익 주지사를 두둔한 것을 비판하지 않았다. 볼리비아 운동이 서로 비판하면서 분열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푸엔테스는 ‘민중 주정부’를 “일부 트로츠키주의 무리들의 모험주의”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태도다. 애초에 MAS 지지자들인 코카 재배 농민들도 민중 주의회를 지지했고, 이에 고무된 반우익 투쟁은 라파스의 엘알토까지 확산됐다.

이런 태도의 더 큰 문제는 모랄레스 정부와 대중운동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여 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는 볼리비아 동남부 까미리 주민 투쟁에 대한 모랄레스 정부의 대응이다.

까미리 주민들은 보상 없는 천연가스 국유화를 요구하며 아르헨티나로 향하는 도로를 점거했다. 이 투쟁의 지도자인 미르코 오르가스는 까미리가 속한 차코 지역이 볼리비아 최대 가스 매장지인데도 지역 주민들이 아무런 혜택도 입지 못한 것이 이 투쟁을 시작한 이유라고 말했다.

군대가 강제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시위대 두 명이 사망했다. 모랄레스 정부는 군대의 ‘과잉 진압’을 비판하고 진상 조사를 약속했지만, 주민들의 요구는 무시했다. 모랄레스 정부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운동에는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곤 한다.

따라서 대중운동 조직은 우파로부터 모랄레스 정부를 방어하면서도 모랄레스 정부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성을 지키고 더 많은 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다만, 볼리비아의 혁명적 변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대중 조직들 아이마라[페루와 볼리비아의 원주민] 권리 운동, 볼리비아 노총(COB), 지역빈민운동(FEJUVE) 등 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례로, 가장 전투적인 대중 운동 조직으로 손꼽히는 COB조차 친모랄레스 지도부와 좀 더 독립적인 지도부로 분열해 있다. 이번 코차밤바 투쟁에서도 COB 지도부는 모랄레스 정부와는 다른 대안을 일관되게 내놓지 못했다.

이는 급진화하는 볼리비아의 대중운동을 더 한층 진전시키려면 혁명적 변혁을 일관되게 추구하는 정치조직이 필요함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