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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지난해 연말 MBC의 한미FTA 여론조사 결과는 찬성 42.8퍼센트, 반대 43.8퍼센트였다. 여론조사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찬반이 비슷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전략에 대해서는 알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게 사회에 이익"이라며 한미FTA에 대한 반대나 심지어 문제 제기조차 원천 봉쇄하려 한다. 이 때문에 "군사정권 때나 볼 수 있는 독재"라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한미FTA체결지원단'을 만들어 수십억 원씩 써가며 한미FTA 찬성 광고를 내보내면서도, 한미FTA 반대 광고는 "일방적 주장이나 설명"이 담겨 있다며 허가해 주지 않았다.

또, 최근 한미FTA범국본이 개최하려 한 7차협상 반대 집회를 금지하고 경찰 5천여 명을 동원해 원천 봉쇄하는 등 민주주의의 기본적 권리인 '집회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적 기본권을 억누르는 모습은 과거 독재 정권들을 연상시키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국가의 모순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론상으로 신자유주의 국가는 강력한 사유재산권과 법치,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신자유주의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이런 제도들과 이를 뒷받침하는 개인의 신체·표현·선택의 자유 등을 지켜야 한다.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는 사유화와 규제 완화를 비롯한 경쟁 강화가 생산성을 끊임없이 향상시켜 인간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먼저 아랫목이 따뜻해진 뒤에 윗목도 따뜻해지듯, 생산성이 계속 증가하면 먼저 부자들이 혜택을 얻지만 곧 빈민들도 혜택을 얻게 돼 모든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이 인간 복지의 유일한 해법이라면 민주적 제도는 무슨 필요가 있을까? 단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고 국가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면 민주적 결정은 의미가 없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교육·의료·주택·연금 등 공공 서비스 사유화에 열을 올리고 공적 영역을 축소한다. 결국 의회를 비롯한 민주적 제도들에서 논의해야 할 것들이 줄어들고 민주주의는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한미FTA에서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투자자 국가 소송제'다. 국가의 공공 정책 때문에 기업이 예상했던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되면 국가가 그 피해를 보상해 줘야 한다. 따라서 공공 정책에 대한 논의 자체가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국가가 부동산 시장에 개입해 집값을 안정시키거나 저렴한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원리상 개인이 선택할 자유가 있다면, 사람들은 시장을 통한 해결이 아니라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집값 안정을 위해 정부 개입을 촉구하거나 식품 안전을 위해 광우병 위험 쇠고기의 수입에 반대할 수도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민주적 통제와 감시는 잠재적으로 자유 시장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자들은 전문가와 엘리트에 의한 통치를 선호한다. 이는 현실에서 의회 등 민주적 제도보다 사법부와 행정부가 더 큰 권한을 갖는 정부를 훨씬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에 분명한 한계를 두길 원하고, 핵심 결정을 중앙은행(국제 수준에서는 IMF·세계은행)처럼 민주적 통제로부터 '독립적인'기구들에 맡겨버리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노무현 정부가 FTA 협상에 관한 매우 빈약한 정보만 의회에 제공하고, 당연히 공개돼야 할 협상 정보가 알려지자 '비밀 문건 유출'운운하며 호들갑을 떨어 의회조차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자유 시장과 대중의 자유가 충돌하는 곳에서 신자유주의 시대 민주주의의 모순이 드러난다.

신자유주의도 결국 고전적 자유주의가 부딪혔던 딜레마, 즉 자유주의의 유토피아는 권위주의에 의지해서만 지탱될 수 있다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차이점은 고전적 자유주의가 봉건제를 타파하는 진보였다면, 시장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에 직면한 신자유주의는 대중의 자유를 부정하는 반동이라는 점이다. 한미FTA 반대 집회를 원천 봉쇄하는 노무현 정부처럼, 전 세계의 신자유주의 정부들은 필요하다면 물리력을 사용해 신자유주의 반대자들을 억압하고 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기 훨씬 전부터 자유민주주의를 빈약하고 초라하다고 비판해 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회를 비롯한 민주적 제도들은 사기업·경찰·군대·사법부 같은 진정한 권력이 있는 곳들을 거의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이런 빈약한 민주주의조차 더욱 초라하고 볼품없게 만들고 있고, 바로 여기서 대중의 분노가 폭발할 수 있다.

변혁가들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참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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