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여성 해방을 말했을 때, 그는 단지 남녀 평등만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엥겔스는 경제적 필요나 답답한 성 도덕에 의해 성(性)의 관계가 억눌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유로운 세상을 말했다.

엥겔스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성이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음을 인정한 극소수 중 한 명이었다.

오늘날 여성 삶의 변화로 성과 가족 관계에 대한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어머니의 수가 전 세계에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20년에 이르면 영국의 모든 가구 중 40퍼센트가 여성이 가장일 것이다.그러나 아이를 혼자 키우는 어머니들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 최빈곤층이다. 최근 세계식량계획(WFP)의 한 보고서는 여성 가장 가구가 ‘극빈층’에 속할 확률이 남성 가장 가구보다 두 배나 높다고 지적했다. 이는 남반구뿐 아니라 부유한 북반구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아동과 노인 돌봄 노동에 대한 국가 지원이 삭감됐다. 그래서, 중간계급 가족들은 주로 남반구 출신 여성들을 고용해서 대처했지만, 그 여성들은 정작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유럽에서 이주자 가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4년 6퍼센트에서 1987년 52퍼센트로 증가했다.

미국에서는 합법적인 보모 중 40퍼센트가 이민자들이다. 아마 실제 비율은 훨씬 높을 것이다.

만약 이민자 가정부가 없다면, ‘포스트 페미니즘’[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더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전문직·관리직 여성을 위한 이론] 여성학자와 여성 기업 경영자들은 1960년대 여성 운동의 경우처럼 국가 지원을 요구하며 싸우거나 자기 어머니 세대처럼 집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노동계급 가족의 경우 30년 전보다 남성이 집안 일을 더 많이 하면서 여성의 집안 일이 줄었다.

그러나 노동시간 증가와 빠듯한 경제 사정 때문에 가족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늘었다.

성의 측면에서 보면, “남자가 다림질을 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거나, “여자는 남자보다 똑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처럼 가족에 근거한 다양한 인습이 여전히 존재한다.

여성 몸의 상품화와 함께 이런 인습이 진정한 성해방 관념을 해친다.

물론 성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과거의 수치심과 고통보다는 훨씬 낫다.

그러나 여성은 여전히 광고와 포르노 영화에서 개성을 박탈당한 대상으로 남아 있다. ‘가슴이 큰 여성이 더 매력적이다’가 여전히 유력한 원칙이다.

케이트 모스[유명한 슈퍼 모델]는 현대 여성의 이상인 마른 몸을 패션쇼에서 실컷 보여 준 뒤에 랩댄스[누드 댄서가 관객의 무릎에 앉아 추는 선정적인 춤] 클럽을 종종 방문한다고 한다. 그러면 ‘포스트 페미니스트’들은 그것이 성해방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젊은 여성들은 이상적 몸매를 만들기 위해 끼니를 거르고, 가슴을 성형하려고 돈을 모으고, 데이트 중에 강간당했을 때 누구에게 하소연할지 몰라 답답해 한다.

10대 임신과 성병이 증가하지만 성교육은 여전히 근엄하고 모범적인 가족 모형에 기초해 있다.

많은 여성은 성 개방과 경제적 빈곤의 끔찍한 결합을 경험한다.

1995년 베이징 여성회의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도시 여성 열 명 중 한 명이 살면서 성매매 경험을 한다.

알바니아에서는 경제 붕괴로 10만 명의 여성이 해외 윤락가로 팔려갔다.

어떤 나라는 성 관광 수입에 의존한다. 타이에서는 50만 명의 소녀가 성 산업에서 일한다.

여성은 여전히 잔인한 폭력으로 고통받는다. 영국에서는 매주 두 명의 여성이 파트너나 옛 파트너에게 살해당한다.

비교적 근래에 여성이 임금 노동에 진출한 많은 사회에서, 여성을 구타하는 것은 여전히 ‘남성의 권리’로 여겨진다.

여성이 항상 억지로 이런 관념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여성 스스로 자신의 구실을 받아들인다.

1950년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수많은 여성이 남성을 사귀고 남성을 붙들 수 있는 법을 소개하는 내용이 가득한 잡지를 구입한다.

요즘에는 가사 일이 줄었을지언정 더 많은 성적 기교와 성형수술이 필요하다. 여기에 자연스러운 것은 전혀 없다.

오랜 옛날 인류는 인위적으로 고정된 성적 역할 구분이나 여성 천대 없이 살았다고 엥겔스는 지적했다. 이런 사회는 무계급 사회이기도 했다.

러시아 혁명중에 볼셰비키는 사적 관계에 대한 교회와 국가의 간섭과 통제를 모두 철폐했다. 나중에 스탈린은 그런 성과를 없앴다. 그러나 우리가 개방적이고 자유롭고 진정으로 의미있는 성의 관계를 원한다면, 그런 사회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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