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는 미국 노동운동사를 다룬 명저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창작과비평사)로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는 미국 거주 사회주의자이다. 도시 환경 문제를 다룬 논문 “슬럼투성이 지구”(《창비》 2004년)도 번역돼 있다. 최근에는 《야만인들을 칭송하며: 제국 비판》(In Praise of Barbarians: Essays against Empire)과 《미국-멕시코 국경의 인종차별과 국가 폭력에 반대하는 투쟁》(No One Is Illegal: Fighting Racism and State Violence on the U.S.-Mexico Border)을 출판했다.

1949년 이래 미국 주류 외교가의 이론적 입장이 지금처럼 통일된 적은 없었다. 오늘날 그들은 베이커·해밀턴의 초당파 그룹이 내놓은 계획과 다자주의적 제국주의를 지지한다.

조지 부시 1세와 빌 클린턴 정부 시절 요직을 맡았던 인사들이 모두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이 점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과 극적으로 대조된다. 당시에는 냉전주의자들 사이에 살벌한 논쟁이 벌어졌다.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은 정치적으로는 신용을 잃었고 지적으로는 주변화됐다.

그러나 그들의 궁극적 목표인 이란 공격은 매우 가능성이 큰 듯하다.

민주당의 중간선거 승리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책은 적어도 지금 당장은 여전히 [고립된] 지하 벙커에서 결정되고 있다.

조지 부시 2세(딕 체니의 꼭두각시)는 1945년 초의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패배나 개인적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현실주의적” 합의의 승리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난장판이 된 이라크에서 단계적으로 철군 ― 이것이 가능하다면 ― 하되 유럽 그리고 아마도 일본과의 협력을 통한 군사 개입은 더욱 강조하는 것일 것이다.

[이 점에서] 아프가니스탄 ― 폐허가 된 채 마약상들과 대량 학살자들이 지배하는 또 다른 나라 ― 은 현실주의자들의 유토피아이자 모든 곳에서 벌여야 할 “좋은 전쟁”의 표본이다.

1960∼70년대 동안 베트남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은 냉전 반공주의라는 도그마를 잠시나마 재고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논쟁은 “영리한” 제국주의냐 “멍청한” 제국주의냐 하는 것일 뿐이다.

부시의 이라크 정책에 대한 민주당의 비판은 아프가니스탄과 아프리카의 북동부 지역에 대한 개입, 팔레스타인 억압 등을 포함하는 이른바 ‘대(對)테러 전쟁’의 더 광범한 맥락을 강조하는 데 맞춰져 있다.

또 다른 역설이 있다.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 지위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대중의 압도적 반전 투표 덕분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때와 달리 지금은 정치인들을 강제할 전국적 반전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2002∼2003년 동안 전쟁몰이에 맞서 극적으로 떠오른 광범한 기층 운동은 2004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동안 하워드 딘 지지 운동으로 흡수됐고, 그 뒤 존 케리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완전히 와해됐다.

제국주의

비록 조직된 반전 운동 세력이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하긴 했지만, 운동은 전국적 운동으로서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잃었다.

다행히도 지난달 말 워싱턴에서 벌어진 매우 크고 엄숙한 시위는 이제껏 내가 목격한 미국의 시위 가운데 현 시대의 암울함을 가장 냉철하게 의식한 시위였고, 이는 전국적 운동이 부활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반면, ‘하원 흑인의원연맹’과 소수의 진정한 진보주의자들을 제외하면 민주당 의원들은 부시가 오사마 빈 라덴을 죽이거나 체포하는 데 그다지 열의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끝내는 데 진정한 관심이 없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이나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 등에 대한 민주당과 부시 정부의 견해 차이는 매우 작고 갈수록 좁아지고 있을 뿐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군 병사의 3분의 1만이 미국의 이라크 전략을 지지한다.

주(州)방위군을 이라크에 대거 배치한 데다 이런 “아버지 군인들”의 사망률이 높은 탓에 대중의 불만이 엄청나게 커졌다.

나는 샌디에이고에 살고 있는데, 이 곳은 미국에서 가장 군사화된 도시들 중 하나다.

나는 젊은 수병들이나 해병대원들과 대화를 통해 모종의 철군 움직임이 없다면 올 여름이 끝날 무렵 파업이나 사실상의 사병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당장, 에런 와타다 중위라는 저항의 상징이 있다. 그는 이라크 복무를 거부한 최초의 미군 장교다.

그는 [이라크] 전쟁이 “부도덕하고 불법적이며 … [이라크 파병은] 전쟁 범죄 동참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복무를 거부했다.

2월 5일 워싱턴 포트루이스 기지에서 그의 군사재판이 시작됐다.

이 재판은 군대 내 저항 운동의 초점이 되고 있다.[지난 2월 7일 군사법원은 ‘무효심리’를 선고했고, 이것은 와타다 중위의 승리를 뜻한다. ─ 〈맞불〉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