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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노무현을 차베스에 비길 건가?

노무현 정부 평가와 진보진영의 대선 방안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노무현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한나라당과 조중동에 의해 “포위된” 근본적 한계,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초강대국 미국의 입김 등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았던 참여정부가 그나마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변명과 옹호는 지구 반대편에서 끊임없이 개혁을 추진하고 “21세기의 사회주의”를 대안 사회 모델로 주창하는 차베스에 비춰보면 군색하기 그지없다.

노무현이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하다가 우익에게 굴복해 개혁을 포기했다면, 차베스는 “49개 개혁 입법”을 추진하다가 우익의 군사 쿠데타로 생명까지 잃을 뻔했다.

노무현은 끊임없이 조중동 탓을 늘어놓지만, 한미FTA 같은 쟁점에서는 조중동도 노무현을 지지했다. 또, 노무현에게는 처음부터 〈한겨레〉나 KBS 같은 우호적 언론도 있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에서는 부시 1세의 친구이며 “라틴아메리카의 루퍼트 머독”이라고 불리는 미디어 재벌 구스타보 시스네로스가 소유한 베네비전 등 모든 공중파 방송과 거의 모든 신문이 끊임없이 차베스를 물어뜯었다.

한미FTA

노무현은 한미FTA 반대를 쇄국으로 몰아세우고 국민 다수의 의사를 무시한 채 한미FTA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

그러나 차베스는 한국보다 10여 년 먼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고 무역의존도도 더 높은 베네수엘라에서 신자유주의를 정면으로 거슬러 미주자유무역협정(FTAA)이 아니라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식 대안’(ALBA)이라는 대안 무역 체제를 추구하고 있다.

노무현은 2002년 대통령 선거 즈음에 “반미면 어떠냐”고 호기를 부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자아냈지만 대통령 취임 직후 미국 방문 때는 “정치범 수용소” 운운하며 친미 사대주의자와 마찬가지 태도를 보였다. 그는 여중생 사망 항의 운동, 미국의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 등에서 드러난 대중의 강대국 패권주의 반대 염원을 배신하고 이라크 전쟁 지원과 한미동맹 강화에 매달렸다.

베네수엘라도 미국의 뒷마당 라틴아메리카에서 오랜 친미 국가였고, 경제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석유가 대부분 미국으로 수출되는 등 경제적 의존도 심각한 나라이다. 그럼에도 차베스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비난하고 지난해 유엔 총회 연설에서는 부시를 악마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과 빈민가 흑인들을 위해 겨울철 난방유를 싸게 공급하는 등 미국의 지배자들과 보통 민중을 구별하면서, 부시와 미국의 패권주의에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속시원하게 대변해 왔다.

노무현과 차베스의 이런 차이는 둘의 정치적 기반 구축의 진정성 차이와 관계 있다.

차베스는 군사 쿠데타와 자본가들의 경제적 사보타주, 대통령 소환 국민투표 등 주요 계급투쟁을 거치며 점차 좌경화하고 대중에게 호소하고 대중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반면 노무현은 행정부뿐 아니라 의회까지 장악했으면서도 “삼성 공화국”, “시장 권력”을 추종하고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추진하며 사이비 개혁 세력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이 역사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의 최근 역사는 그 말이 진실임을 여실히 보여 준다. 마르크스는 또, 비록 스스로 선택한 조건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서일지라도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현실의 인간들이라고 말했다. 그 현실의 인간들의 여망을 구현하는 리더로서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역사의 진보에 일조해 왔다. 노무현은 그 반대로 끝났음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