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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인터뷰 - \"노무현은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인터뷰 - "노무현은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편집자 주] 노무현의 급부상은 한국 정치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다. 노무현이 노동자에게 모종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애초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명계남 회장과도 인터뷰를 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김덕엽 정리

이제 김대중 정권은 최소한의 지지 기반만이 남아 있는 사실상 허공에 떠 있는 정권이 됐습니다. 그런데 같은 당의 노무현에 대한 지지는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노무현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항간에 나도는 ‘노풍’의 진원지에 대해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대별로 보자면 20∼40대 초반에서 노풍이 불고 있습니다. 직종별로는 1987년 6월 항쟁의 중심 부대였던 ‘넥타이 부대’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IMF 이후 모든 노동자들이 신자유주의 공세에 억눌려 왔습니다. 사무직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눈에 띄지 않게 억눌려 왔습니다. 억눌려 온 사람들이 폭발한 결과가 바로 노무현 바람입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이 이것을 왜 받아 안지 못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힘이 그것을 안을 만큼 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민주노동당이 장래의 대안 세력이지 현재 민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당이 아니라고 보는 거죠. 지금 20∼40대 초반의 사무·금융직 중심의 계층에서 부는 노풍은 길게 보면 민주노동당 지지로 옮아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노풍을 곤혹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의 길을 열어 주는 과정으로 봐야 합니다. 만약, 노무현 씨가 대통령에 당선돼 2년쯤 지나고 나면 그 한계가 드러날 겁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시스템을 깨뜨릴 수 없기 때문이죠. 그 때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어디에 기대야 할까? 민주노동당밖에 없다.’ 하고 생각할 겁니다. 민주노동당이 우리 나라 진보 정치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연일 노무현을 ‘급진 좌파’로 몰고 있습니다. 이인제는 노무현이 민주노동당 후보에나 적합하다고 말했습니다. 노무현이 좌파라고 보십니까?

이회창 씨와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말하는 ‘좌파’는 우리가 말하는 좌파와 개념부터가 다릅니다. 냉전 논리에 몰입해 상대방을 근거 없이 비방·공격할 때 쓰는 용어가 ‘좌파’입니다. 진보 입장에서 보면 노무현은 좌파가 아닙니다. 노무현 씨를 다른 민주당 후보와 견주어 볼 때 개혁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노무현 씨만을 놓고 개혁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먼저 민주당의 개혁이 개혁이냐 아니냐를 봐야 합니다. 민주당의 개혁은 민중의 처지에서 볼 때 개혁이 아니라 반개혁입니다. 김대중 정권은 신자유주의 바탕 위에서 정책을 세우고 또 추진합니다. IMF가 요구한 대로죠. 일방적인 금융 개방, 공기업의 사유화 및 해외 매각, 알짜 대기업의 해외 매각, ‘노동 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대량 해고, 이게 바로 민주당의 개혁입니다. 이게 어떻게 개혁입니까? 반개혁이죠. 우리가 말하는 개혁은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이나 보수 언론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을 좌파로 몰아세우지만 이들은 진보도 좌파도 아닙니다.

노무현의 부상은 민주노동당 선거 운동에 어려움을 줄 것 같습니다. 특히 노무현과 민주노동당의 지지 기반이 일부 겹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노무현과 어떻게 차별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과 민주노동당의 지지 기반이 겹친다고 말합니다. ‘노무현 씨가 노동자 편에 서 있는 사람 아니냐?’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무엇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까?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는 세계화, 뉴욕 월가에 자리잡고 있는 초국적 금융자본가들이 전파하는 신자유주의 때문에 고통을 당하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전도사가 누굽니까? 김대중 정권이고, 정당으로 보자면 집권당인 민주당입니다. 노무현 씨는 뭐라 그럽니까?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겠다.” 하고 말합니다. 더욱이 노무현 씨는 민주당 내 대통령 후보 경선을 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후보입니다. 민주당은 어떤 당입니까? IMF 요구 사항을 무비판적으로 흔쾌히, 과도하게 수용한 당입니다. 김대중 정부가 어쩔 수 없이 신자유주의 전도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이들 자신이 시장경제 지상주의자입니다. 시장경제 지상주의자들과 민주노동당의 지지 기반이 어떻게 겹칠 수 있겠습니까?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교수 출신의 아시아 문제 전문가 찰머스 존슨은 두 달 전쯤 〈LA 타임스〉에 이렇게 썼습니다. “한국 정부는 워싱턴의 꼭두각시인 IMF의 요구사항인 신자유주의를 거부하지 않으면 제2의 외환위기에 직면한다.” 노무현 씨에 대한 지지를 고민하는 사람은 이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겁니다.

‘성찰과 연대 : 사회포럼 2002’에 참가한 단체들은 단체로서 노무현에 대한 “비판적 지지”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일각에서는 “비판적 지지”가 만만치 않게 흐르고 있는 듯합니다.

한 번쯤 노무현 바람이 어떤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죠. 노동자들 가운데 노풍에 현혹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노무현 지지는 1997년 김대중 씨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다릅니다. 그 때는 정권 교체를 위한 비판적 지지였어요. 군사 독재 정권이나 그 유산을 이어받은 세력, 수구 보수 세력에 반대해 보수 정당이지만 야당으로 정권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였죠. 그 때 개혁은 진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노무현 씨에 대한 신(新)비판적 지지는 그 때와 성격이 다릅니다. 지금 보수 정치권에 있는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보다 좀더 낫다고 하는 사람을 지지한다고 해서 근본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인가를 봐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씨앗을 뿌리는 농부가 돼야 합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수확할 수 없습니다. 현 단계에서 민주노동당이 집권할 힘이 없다 해도 우리는 민주노동당을 가꾸고 키워 나가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가 모아졌을 때 민주노동당이 사람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권 대표께서는 2001년 창당 1주년 기념 대의원대회 이후 〈문화일보〉와 가진 인터뷰(2001년 3월 26일치)에서 “민중의 생활 안정과 개혁 입법 추진을 위해 여야 소장파 개혁 세력과 연대할 방침”이라고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올해 제2기 민주노동당 대표 당선 이후 〈문화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소위 “개혁파” 노무현과 연대할 뜻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처음 얘기는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 행위를 두고 한 말입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이나 부패방지법, 이자제한법을 두고 한 말입니다. 개혁적 성격을 갖는 세력들, 이런 법에 완전한 동의는 아니지만 지지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격려하고 고무해 우리가 내건 법을 입법하기 위해서죠. 올해 제가 말한 뜻은 선거 행위를 두고 한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과 연대하라는 주문을 합니다. 그런데 한쪽은 신자유주의를 선호하고 다른 한쪽은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데 어떻게 연대하겠습니까. 권영길이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든가 아니면 소위 “개혁” 세력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연대할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현 시점에서 권영길의 생명은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개혁 세력과 연대하라는 말은 제 생명을 버리라는 말과 같습니다.

대표께서는 당 대표 경선에서 노동자 기반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당 내에는 여전히 노동자 중심성보다는 다양한 사회 세력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사람들[포퓰리스트들]이 많습니다. 올해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주되게 공략[견인]해야 하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공략 대상의 문제보다는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에서 뭘 얻어야 하느냐는 물음으로 봅니다. 저는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에서 표를 얼마나 얻을지에 대해 말한 바 없습니다. 그렇게 얘기해서도 안 됩니다. 민주노동당은 지방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의 중심 부대를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동자들을 중심 부대로 세워 내는 것이죠. 노동자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고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투표하는, 즉 계급 투표를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우리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정당은 민주노동당’이라고 인식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인식이 넓게 형성되면 세상이 바뀌는 것 아니겠습니까? 노동자들이 중심 부대가 되면 민주노동당의 대선은 승리한 것입니다. 이런 바탕에서 민주노동당은 한 단계 도약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을 어떻게 중심 부대로 세울 수 있습니까?

노동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뭐겠습니까? 양대 노총이 노동법 개악 없는 주5일제를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철도·가스·발전의 사유화 반대 투쟁이 있었죠. 그럼 보세요. 국가 기간 산업 사유화를 누가 반대하고 있습니까? 노동법 개악 없는 주5일 근무제를 위해 누가 싸우고 있습니까? 시장경제 지상주의자들인 보수 정치권에 반대하는 세력이 누구입니까? 민주노동당입니다. 민주노동당에 표를 던지는 것은 사표가 아닙니다. 서울시장·부산시장·시의원·국회의원·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당선되지 못해도 민주노동당이 얼마나 표를 얻었느냐가 바로 세상을 바꾸는 씨앗입니다. 1백만 표를 받으면 1백만 표의 씨앗이 될 것이고, 2백만 표를 받으면 그만큼 세상을 앞당기는 씨앗이 될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의 집권은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가는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씨앗을 많이 뿌려야 합니다.

요즘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를 앞두고 뤼뜨 우브리에르(노동자 투쟁당: LO)의 아를레뜨 라기예르 후보가 약진하고 있습니다. 라기예르는 사회당 후보 리오넬 조스팽을 우파인 자크 시라크와 별 차이가 없다고 비판해 조스팽의 표밭인 좌파 유권자층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라기예르는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결선 투표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조스팽을 찍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라고까지 주장했습니다. 조스팽은 라기예르의 압력을 받아 좌선회한 공약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뤼뜨 우브리에르의 선거 전략을 우리 나라 대통령 선거에 적용할 수 있습니까?

저는 7년 동안 파리 특파원을 지냈습니다. 제가 파리에 있을 때부터 아를레뜨 라기예르는 대선에 출마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1970년대부터 출마했습니다. 계속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어떨 땐 표를 1퍼센트 정도 얻기도 했죠. 뤼뜨 우브리에르, 노동자 투쟁당은 계속 후보를 냈고 매번 라기에르가 출마했죠. 우리 나라 같으면 라기에르를 보고 대통령 병에 걸렸다고 하겠죠. 그러나 라기에르가 왜 계속 출마하겠습니까? 자신들의 주장을 끊임없이 알려 나가기 위해서 출마하는 것이죠. 우리가 주목할 점은 지금은 라기에르가 조스팽을 맹공격하지만 1980년대에는 프랑스 공산당이 사회당을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2차 결선 투표에 가면 유권자들은 좌파는 좌파에게 우파는 우파에게 표를 던집니다. 1차 투표에서는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라기에르도 그런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에게도 노동자·민중의 목소리, 진정한 통일의 목소리를 내는 정당이 필요합니다. 보수 수구 세력이 노무현 씨더러 좌파나 진보주의자라고 말하는데 민주노동당이 대선 후보를 내, 진짜 진보주의자는 여기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이 대선에 참여하면 노무현 씨는 진보주의자나 좌파로 공격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