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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균의 메스를 들이대며:
한미FTA와 한국의 반신자유주의 운동

한미FTA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한국 정부는 그 타결 가능성을 낙관한다고 선전한다. 한국 사회운동의 반대는 당연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협상타결 가능성이 높음에도 한국정부나 한미FTA 협상을 추진하는 쪽도 그 결과에 그리 만족하는 듯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3월 8일의 8차 협상을 앞두고 이경태 대외경제협력연구원(KIEP) 원장은 한미FTA 협상에 대해 “높은 수준의 빅딜이 아니라 중간 수준의 딜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한국측 협상단도 “꼭 100점이라야 되나요. 안 되는 부분은 들어내고 80~90점만 되도 되면 되는 거죠” 하고 말하고 다닌단다.

노무현 대통령도 “미국과 동조화를 통해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리고 일자리를 만들어 줄 욕심이었으나 … 우리측이 협상을 너무 잘 해 잘 안 열어주고 미국도 애를 별로 안 써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한미FTA 협상에 대해 보수진영에 변명을 해야 할 상황이다. 이런 FTA를 왜 하느냐고 볼멘 소리를 하는 보수 언론조차 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미FTA 반대 운동이다. 한미FTA 반대 운동은 부침이 있었다. 그러나 한미FTA 반대 여론은 여전히 높다. 협상이 너무 졸속이라는 여론은 70퍼센트가 넘는다. 이 상황에서 지지율 10퍼센트 대의 노무현 정부가 애초에 노렸던 것처럼 ‘한 방으로 싹쓸이’하는 ‘높은 수준의 FTA’ 추진은 위험하다.

“국내에서 반발이 너무 심해 제대로 개방되는 분야가 없다”는 협상단의 푸념은 단지 엄살만은 아니다.

두번째는 미국 측의 상황 변화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반대에 힘입어 상하 양원을 장악한 미국 민주당이 부시 행정부에 무역협상추진권(TPA)을 연장해 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보니 시간이 없다. 더욱이 보호무역주의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이 미국의 “다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말든지”식의 FTA 협상 방식을 더욱 강화했다.

따라서 한국정부도 불만이다. 우선 방송·항공·항만·가스·우체국 등 정부 조달분야의 공기업 사유화가 제한될 듯하다. 한미FTA의 최대 노림수였던 공공분야 사유화가 제한되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닌다.

쇠고기 협상도 아직까지는 난항이다. 이른바 ‘뼛조각 논쟁’에서 한국 정부가 그나마 버티는 척이라도 하고 있는 것은 한미FTA 반대 운동의 작지만 의미 있는 승리다.

다른 분야도 되는데까지만 하자는 협상타결 분위기가 크다. 요컨대 한미FTA 반대운동은 협상을 결렬시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 진행을 늦추고 수준을 제한시켰다.

제한

물론 이런 ‘중간 수준’의 FTA만으로도 한국 민중이 당할 피해는 ‘중간 수준’이 결코 아니다. 미국이 요구 수준을 낮추었다는 의약품 분야 하나만 보자.

최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말레이시아 법무장관에게 미-말레이시아 FTA가 일반의약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보장하라고 공식 권고했다. 매우 보수적인 세계보건기구조차 FTA가 최소 15년 동안 누적적으로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한미FTA가 ‘중간 수준’으로 맺어져도 향후 5년 동안 추가비용이 10조 원이 넘는다. 현재 건강보험 약제비가 연 7조 원인데 추가비용이 1년에 2조 원이라는 것이 ‘중간 수준’의 FTA다.

또 광우병 ‘뼛조각 논쟁’을 보자. 국제적으로 공인된 실험을 통해 갈비뼈의 골수가 광우병 전염성이 있음이 확인됐다. 그런데 미국은 그 전염성이 확인된 소 한 마리의 나이가 38개월이었다는 점을 들어 30개월 미만의 소뼈는 안전하다는 것이다.

제한적인 공기업 민영화? 그러나 “공기업의 상업적 운영원칙”은 한미FTA 합의 사항이다. 공공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이 금지된다. 이것은 명확히 공기업 사유화의 1단계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중간 수준’의 FTA다.

더욱이 한미FTA가 체결되면 지금 수준 이상의 공적 규제나 공공서비스 영역 확대가 불가능해진다. FTA의 원칙인 이른바 래쳇(미늘톱니)방식인데 쉽게 말해 ‘낙장불입’ 원칙이다. FTA 조항에서 유보되도 ‘현재유보’가 되면 현재 이상으로 규제나 영역 확대가 불가능하다. 설사 ‘미래유보’가 돼도 국내 법률이 바뀌면 유보 조항은 의미가 없다.

한미FTA 협정이 이른바 ‘중간 수준’의 FTA가 된다 해도 국내의 ‘자발적 자유화 조치’, 즉 알아서 하는 신자유주의 조치가 결합되는 순간 그것은 ‘중간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한미 양국 정부의 현재 전략은, 일단 되는만큼 한미FTA를 체결해 두고 나머지는 후속 조치들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즉 “중간 수준의 한미FTA + 자발적 자유화 조치”가 현재 한국 정부의 FTA 전략이다. 그리고 여기에 다른 FTA, 예를 들어 EU 또는 중국과의 FTA가 더해질 것이다.

낙장불입

결국 협정 체결을 앞둔 한미FTA 반대 운동은 온전히 한국의 사회운동에 그 성패가 걸려 있다.

여기서 이제까지의 한미FTA 반대 운동을 돌이켜 보자.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대로 한미FTA 반대 운동은 아직 협정 체결을 저지할 정도까지 성장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못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저들의 한미FTA 협상 전략을 바꾸어 놓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의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우리 앞에는 한미FTA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추진되는 자발적 신자유주의 조치들, 즉 연금 개악, 노사관계 로드맵, 공공서비스 시장화가 놓여 있으며 또 다른 중요 FTA들이 놓여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한미FTA 반대 투쟁과 또 다른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을 대중적으로 확산시켜 이를 발판으로 한국의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을 발전시켜 나갈 전망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비관도 낙관도 할 때가 아니다. 한국의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은 이제 시작이고 우리는 지금 전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