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과 한국군 파병, 한미FTA 협상 등은 정치적 대표성의 위기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주류 정치가 대다수 사람들의 의사를 무시했기 때문에 그들과 주류 정치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생겨났다. 이것은 한 목소리로 신자유주의와 전쟁을 지지하는 정치 엘리트와, 주류 정치가 자신의 견해와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보는 대중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근본적인 간극의 상징이다.

이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대안 부재감(感)을 느끼는 한편,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갈망한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을 포함해 진보진영은 주류 정치권에 도전해 정치적 대표체를 제공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세계적 사태 전개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집권한 뒤 전쟁을 지지하고 시장에 굴복하면서 생겨난 정치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급진좌파 정당들이 등장했다. 영국의 ‘리스펙트’, 독일의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 포르투갈의 ‘좌파블럭’, 브라질의 ‘사회주의와자유당’(P-SoL) 등이 그것이다.

새로운 급진좌파 정당들의 등장은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매우 정치적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운동의 정치적 대표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진보진영 선거연합

정치적 양극화 때문에 열우당이라는 빙산이 녹아내리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정치적 거처를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열우당과 민주노동당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착잡하고 모순된 생각 때문이다. “열우당은 정나미 떨어지고 한나라당은 죽어도 싫은데 민주노동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열우당을 지지할 수도 없고,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면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할 수 없을 것 같다.”

민주노동당은 이런 대중의 모순된 의식에 적절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러면 두 가지 편향을 피해야 한다.

먼저, ‘민주노동당으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부유(浮遊)하는 광범한 개혁적 대중을 민주노동당이라는 수단만으로는 붙들어맬 수 없다. 보통 때 대중 의식은 과거 경험과 급진적으로 단절하기보다는 불균등한 변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민주노동당만을 고집해서는 이런 대중 의식에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

그 반대로, 부유하는 광범한 개혁적 대중에 구애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이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주장 ― ‘사회연대전략’이나 그 유사품을 내놓아 당을 체제에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로 보이게 하기, 민주노총의 당 지분을 축소하기 등 ― 도 잘못됐다. 이상현 민주노동당 기관지위원장이 당 집권전략위원회 토론회에서 이런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온건화로는 신자유주의적 ‘반개혁’과 전쟁 등 때문에 “민란” 수준에 다다른 대중의 분노와 반감에 부응할 수 없다. 대중의 눈에는 기껏해야 열우당 ‘좌파’쯤으로 비칠 뿐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 단체들이 광범하게 결집하는 선거연합을 건설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선거연합의 기준은 전쟁과 신자유주의 반대, 한나라당뿐 아니라 열우당과 그 후신/변형 세력들 등 주류 정치권 반대이다).

한때 열우당 ‘개혁파’들이 차지했으나 지금은 정치적 공백으로 남아 있는 기반을 진보진영 선거연합으로 잠식해 들어갈 수 있다. 가령, 사회운동적 NGO들(이나 그 중 일부)이나 손석춘·임종인 등 지명도 있는 개인들이 진보진영 선거연합에 참여한다면 이들을 지지하는 개혁적 대중을 진보진영 쪽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민주노동당이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시간만 까먹는다면 열우당 후신들이 다시 이 기반을 재탈환하려 들 것이다.

다른 한편, 선거연합에는 민주노동당 밖 노동자·민중 정치 단체들도 포함돼야 한다. 예컨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부 선거에서 상당한 득표를 한 ‘노동자의힘’과 현장파들이 선거연합에 포함된다면 선진 노동자들의 광범한 결집이라는 상징적 효과를 톡톡히 낼 수 있을 것이다.

진보진영 선거연합은 진보진영이 주류 정치와는 다른 정치적 대표성을 제공하기 위해 단결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 양극화로 인한 정치 상황의 역동성 때문에 대선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둘 수도 있다.

1998년 베네수엘라의 대선 경험이 그랬다. 당시 베네수엘라 운동은 파편화돼 있거나 미미했다. 1989년 ‘카라카스 봉기’(카라카소)의 패배 후유증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낳은 사회적 위기는 대단히 심각했다. 지배자들의 신뢰성과 정당성이 땅에 떨어졌다. 우고 차베스가 사회주의운동당(MAS), 급진운동당(LCR), 공산당 일부 등과 선거연합인 ‘애국의 기둥’을 결성한 것은 이런 정치 배경에서였다. 그 결과 1958년 이래 유지돼 온 ‘민주행동당-기독교사회당’ 체제가 붕괴했다.

후보 선정 문제

민주노동당이 진보진영 선거연합을 진지하게 모색한다면 지금 거론되는 ‘개방형 국민경선제’를 재고하는 게 좋겠다.

‘개방형 국민경선제’는 민주노동당 후보 선정에 참가할 투표자의 폭을 비당원으로까지 넓힌 것이다. 그래서 당 밖 사람들에게 민주노동당을 ‘개방적’으로 비치게 하는 이점이 있다. 그럼에도 ‘개방형 국민경선제’는 ‘당원직선제’와 마찬가지로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를 선정하는 방안이다.

비당원까지 참가해 민주노동당 후보를 선출하는 방안이다 보니 두 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먼저, 수십만 명이 참가해 후보를 선출해 놓고는 그 후보에게 후보 단일화를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라며 주저앉히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다른 한편, 비당원들도 참가해 민주노동당 후보를 선출하는 바람에 그 후보가 사실상 진보진영 전체의 후보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그리 되면 다른 진보 단체들이 후보 단일화 논의에 참여할 엄두를 못 낼 수도 있다.

민주노동당은 프랑스 좌파들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올해 4월 대선을 앞두고 프랑스 운동은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다. 2005년에 유럽헌법을 부결시킨 거대한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있었음에도 그 운동의 정치적 대표체를 건설하지 못했다는 점은 뼈아픈 실책이다. 각 단체들이 자체 후보를 먼저 정하면서 ―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은 올리비에 브장스노를, 공산당은 마리-조르쥬 뷔페를, NGO들은 조제 보베를 정했다 ― 후보 단일화 논의에 소극적으로 임한 것이 실패 원인 중 하나였다.

끝으로, 진보진영 선거연합은 2007년 대선에 공동 대응할 필요성에서 출발했지만, 공동의 경험과 대선 결과 등에 따라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연합체로 발전할 필요성이 제기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진보진영 선거연합은 2007년 대선 공동 대응이라는 목표에서 출발하되, 미래에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연합체로 발전할 전망을 배제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그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이 해소돼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의 해소는 한국 최초의 대중적 노동자 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의 역사적 성과를 청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둘은 ― 민주노동당과 상시적 연합체 ― 대립하지 않고 상호보완적으로 건설될 수 있다.

물론 미래에 대한 전망이 현재의 선거연합을 결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결코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2007년 대선 공동 대응이라는 한시적이고 제한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더 광범한 단결에 이바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