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여성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변화는 주로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선진국에서 두드러졌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공업화가 생활방식과 사고방식 등을 크게 바꾸었다.

그 전까지 여성들이 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진 일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허물어졌다.

20세기 초만 해도 미국·영국·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 여성은 투표권조차 없었다. 그래서 당시 여성 해방 운동의 주요 요구 가운데 하나는 여성 참정권이었다.

여성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가장 부유한 여성들만이 대학에 갈 기회가 있었고, 초기에는 여성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대학 당국에 맞서 싸웠다. 서구에서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여성의 고등교육 기회가 확대됐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여성의 고등교육이 크게 확대됐다. 1960년대에 대학에 가는 여성은 극소수였으나 오늘날은 80퍼센트의 여성이 대학에 간다(2005년). 대학 재학생 중 여성 비율은 50퍼센트를 넘어섰다(2005년).

과거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었으나, 지금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학업 성취도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언론은 각종 국가고시에서 여성들이 높은 성적을 거두는 ‘여풍’ 얘기를 하곤 한다.

그러나, 지난 세기에 여성의 삶에서 일어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집 밖에서 유급으로 일하는 여성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한국의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비록 서구보다 10~20퍼센트 이상 낮지만, 이제 50퍼센트를 넘어섰다.

이 중 임금 노동자 여성들은 전체 노동인구의 41퍼센트를 차지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취업 여성의 다수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결혼한 여성이 다수다.

여전한 불평등

여성이 집 밖의 노동에 참여함에 따라 삶의 다른 측면들, 즉 결혼이나 성 등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예컨대, 1960년대 여성들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결혼해 평균 6명의 아이를 낳은 반면, 오늘날 여성들은 20대 후반에 결혼해 한 명의 아이를 낳는다. 고등학교에서 여전히 혼전 순결을 강조하는 구시대적 교육을 하고 있지만, 젊은이들의 성 관념은 갈수록 개방적으로 되고 있다. 동거와 독신의 증가, 결혼율 감소와 이혼 증가 등 성과 결혼, 출산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은 크게 바뀌고 있다.

이렇듯 교육과 취업의 기회가 확대되고 여성 차별적 법률이나 제도도 꽤 바뀌는 등 오늘날의 여성은 대체로 자기 어머니나 할머니 세대보다 좀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됐다.

그러나 여성 해방은 아직 요원하다. 남녀고용평등법이 도입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고용· 승진·임금 등에서 여성 차별은 여전히 심각하다. 여성의 임금은 남성 임금의 63퍼센트에 불과하다. 여성 노동자의 70퍼센트가 임금과 노동조건이 형편없는 비정규직이다.

오늘날 안정되고 보수가 좋은 일자리 구하기는 남녀 모두에게 별따기이지만, 여성들은 더욱 어렵다. 1980~90년대에 많은 여성들이 취업한 사무·서비스 분야는 저임금과 기약 없는 승진 기회, 노동법조차 적용되지 않는 나쁜 작업 환경이 특징인 곳이 태반이다. 금융권에서는 1990년대에 폐지된 ‘여은행원제’가 최근 ‘분리직군제’의 형태로 되살아나 여성 노동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여성 취업이 확대됐지만, 양육의 주된 책임은 여전히 개별 여성들이 지고 있다. 취업 여성들은 직장에서 과중한 노동을 하면서도 청소와 빨래, 아이 돌보기도 해야 하는 ‘이중 부담’에 시달린다.

낙태는 여전히 불법이라서 대다수 여성들은 안전한 시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알지 못한 채, 적잖은 비용을 치르며 죄책감 속에 쉬쉬 해야 한다.

여성 해방

성은 개방되고 있지만, 갈수록 상품화하면서 성적 착취와 왜곡도 늘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여성의 몸을 눈요깃거리로 묘사하는 경향이 1990년대 들어 폭증해 여성들의 스트레스도 폭증하고 있다. 드라마·광고·패션쇼·영화 등에서 대다수 여성들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체와 외모를 이상적 모습으로 강요하는 바람에 많은 여성들이 무리한 다이어트와 성형수술로 고통받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다.

가정폭력방지법과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여성 구타와 강간, 성추행은 여전히 소름끼칠 만큼 자주 일어난다.

이렇게 여성 차별이 광범한 현실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류 언론은 여성 정치인이 늘어나면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국가 요직에 여성 참여가 늘어나면 남녀가 더 평등해지는 데 약간의 진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친자본가 여성 정치인이 노동계급 여성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명숙 총리,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등이 이미 보여 줬다. 한명숙과 면담을 하러 찾아간 KTX 여승무원들은 전원 연행됐고, 강금실도 이주 여성들을 단속·추방하는 데서 여느 남성 법무부장관과 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여성이자 흑인인 콘돌리자 라이스가 부시 정부의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동안에도 미국의 흑인 여성들은 여전히 대부분 가장 가난하고 차별받는 집단으로 남아 있다.

남녀간 격차 감소가 곧 여성 해방의 진전을 뜻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는 성별 소득격차가 꾸준히 줄었는데, 그 이유는 여성의 평균임금이 증가했기 때문이 아니라 남성의 임금이 여성의 임금보다 빨리 하락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 정책이 확산된 결과, 여성들 사이에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여성과 남성의 소득격차는 여전하지만, 남성 노동자들과 여성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보다 여성들의 계급간 격차가 훨씬 더 크다.

‘계급을 뛰어넘는 단결’은 20세기 초 여성운동에서도 불가능했는데, 양극화가 심화된 오늘날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3천만 원짜리 명품 핸드백을 갖고 다니고 자신의 아이를 보모에게 맡겨 키울 수 있는 여성과, 그 집에서 채 1백만 원도 못 받고 아이 돌보기와 집안 일을 하는 여성의 처지가 같을 수 없다.

자본주의 계급 구조에 도전하기를 회피하는 여성운동은 여성 해방에 이르는 진정한 길을 찾지 못한다. 자본주의 국가와 기업주가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기 위해 여성 차별을 끊임없이 부추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여성 해방 운동은 착취받고 천대받는 사람들 모두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일부가 돼야 한다. 여성들이 겪는 특별한 억압에 맞서 싸울 뿐 아니라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더 광범한 사회운동(반전·반신자유주의 운동)에 적극 참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를 마비시킬 잠재력을 지닌 노동계급의 투쟁에 주목하고, 노동계급 운동에서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가 단결할 수 있는 요구와 투쟁 방식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