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일본 정부는 재일조선인(국적을 불문하고 민족을 총칭)을 치안 탄압의 대상으로 삼아 외국인등록법과 출입국관리법으로 감시·관리해 왔다. 또, 민족 운동도 탄압해왔다. 해방 직후를 제외하면, 최근 약 1년 동안 일본 정부는 사상 최고로 악랄한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2005년 10월부터 2007년 2월 6일까지 총련 본부 4곳, 총련 지부 2곳, 상공회 5곳, 학교 1곳, 단체 1곳, 가택 39곳을 수사해 총련 전임자와 동포 13명을 체포했다.

특히 올해 들어 탄압이 더 심해졌다. 1월 28일 경찰은 ‘전자적 공정 증서 원본 부실기재’를 핑계로 민족 교육의 장인 시가조선초급학교에 난입했다. 2월 6일에는 ‘세무사법 위반’을 구실로 총련 효고현 본부와 효고현 상공회 등을 6백 명의 수사관과 기동대를 동원해 강제 수색했다. 6자회담이 일정한 성과를 거둔 뒤인 2월 14일에도 또다시 홋카이도 상공회를 강제 수사했다.

또 언론을 동원해 총련을 비난하려 한다. 탄압에 항의한 동포가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에 고통받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총련 탄압은 일본 정부의 대북 적대 정책과 밀접하게 결합돼 있다. 2006년 7월 5일 북한 미사일 발사 훈련 직후 일본 정부는 9개 항목의 대항 조치를 발표하고 준(準)전시법 성격을 갖는 ‘특정선박입항금지법’을 발동해 만경봉92호의 입항을 금지했다. 이 때문에 조국을 방문할 수 없게 된 학생이 7백96명, 비행기로 우회할 수밖에 없게 된 학생이 5백31명이나 된다.

그와 동시에 일본 정부는 ‘조선’적(籍)을 가진 재일조선인 동포의 재입국을 규제했다.(1947년 외국인등록령에 따라, 재일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갖더라도 ‘외국인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1952년 일본 정부는 그 때까지 일본국적자였던 옛 식민지 출신자를 무국적 상태로 추방했고, 외국인등록령을 법률에 인계해 현재도 ‘조선’적(籍)을 가진 사람이 계속 태어난다. 생존·거주·이동 등의 자유를 부정했기 때문에 재입국도 허가가 필요하다.)

한편, 2005년 4월과 11월 총무성은 총련 관련 시설의 ‘공익성 유무 등을 엄정히 판단’하라는 통지를 전달했고, 2006년 7월 5일 이후 각 지자체는 [총련 관련 시설에 대한] 고정자산세 감면을 잇따라 취소하고 있다.

납치 문제

경찰청 장관은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납치 피해자 귀국을 위해 북한이 일본과 교섭할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경찰청의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기까지 당하다니’라는 생각이 들 만큼 북한 자금원을 사건화하고 그 실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곤란해할 사건의 수사·적발에 전력을 다할 것이다.”

북한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정치적·자의적으로 총련을 탄압했다는 사실을 경찰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아베 정권에게 납치 문제는 지지율 획득을 위한 비장의 카드인 것이다.

아베 정권은 ‘전후 체제로부터 탈각’을 내세우며 헌법 개악, 교육 ‘개혁’ 등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정착시키는 한편 이에 따라 요동치는 사회를 재봉합해 ‘전쟁 국가’를 완성하려 한다.

그러나 고이즈미 정권의 개혁[우정(우체국)의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밀려난 지방 보수층의 지지를 받는 아베 정권은 ‘저항 세력’을 복당(復黨)시켜 지지율이 급락했다. 또, 아베 정권은 고이즈미 정권의 지지율 상승을 도운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시장에서의 타격을 우려하는 일본 재계의 강한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규제 철폐를 시작으로 한 노동 정책도 지지율을 깎아먹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집권 초기 63퍼센트였던 아베 정권 지지율은 계속 하락해 올해 2월 중순에는 ‘지지하지 않는다’(40퍼센트)가 ‘지지한다’(37퍼센트)를 넘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정권의 지지율을 상승시킬 수 있는 것이 납치 문제다. 같은 조사에서, 81퍼센트가 ‘납치 문제가 진전되지 않으면 일본은 북한에 에너지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총리의 결정을 ‘높이 평가한다’고 답했다. 아베는 납치 문제 등 대북 강경 발언을 반복해 여론의 지지를 얻어 마침내 총리가 된 인물이다.

무엇보다 총련 탄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4년 ‘핵 의혹’, 1998년 ‘대포동 소동’, 2002년 ‘9·17’[북일정상회담 ― 북한이 납북자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나 일본 정부는 북한 정부의 사실 확인이 부족하고 부정확하다며 공세적 입장을 취했다] 등의 시기마다 [일본 정부는] 대북 적대 정책과 연동하는 형태로 총련을 정치적으로 탄압했다.

냉전 후 미국은 동아시아 시장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구실로 북한 문제를 다뤄 왔다. 또, 일본도 198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다국적기업화에 대응해 군사력을 세계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전쟁 국가’화를 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북한의 위협’을 들고 나온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계급을 분단하는 식민지주의와의 투쟁

그러나 총련 정치 탄압에 항의하는 일본 내 좌파는 극히 소수다. 최대 세력인 일본공산당은 오히려 납치 문제 추궁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총련 탄압에는 침묵하고 있다.(해방 후 공산당을 재건할 때, 재일조선인이 지대한 공헌을 했고 가장 헌신적으로 싸웠음에도 일본 공산당은 해방 후 총련 탄압에 조직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민족 학교 강제 폐쇄에 항의하는 조선인 당원을 ‘민족주의적 편향’이라고 비난했다. 1955년 총련 결성과 함께 조선인 당원이 대거 탈퇴한 것은 일본공산당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아베 정권은 ‘북한의 위협’을 부추기며 일본 노동자·민중에게 조선인과 연대하지 말라고 선동하고 있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일본 노동자·민중 다수는 총련 탄압에 항의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에서 비롯한 불만이 북한이나 재일조선인에게 향하는 경우가 있다. 일반인이 조선인을 폭행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조선 학교 학생 폭행 사건은 1989년 ‘빠찡꼬 의혹’, 1994년·1998년·2002년의 시기마다 급증해 왔다. 지난해 7월 5일 미사일 발사 직후 3주 동안 1백21건, 10월 9일 핵실험 이후 나흘 동안에만 49건의 피해가 보고됐다. 아이치현에서는 한 중년 남성이 “조선인은 죽어라!”라는 폭언을 퍼붓고 폭력을 휘둘러 한 중학생의 턱에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혔다.

이러다 보니 일본에서는 재일조선인과 일본인의 연대가 잘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노동자 계급의 연대를 구축하고 일본 노동자의 정치의식을 환기하려면 이런 뿌리 깊은 배외주의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따라서 재일조선인 차별에 항의하고 일본 정부에게 아시아 식민지 지배·침략전쟁에 대한 진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투쟁은 일본 내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제다.

한국인들에게 바란다 - 국민주의의 극복을

총련 탄압은 한국인들에게 자국 국민주의의 재고를 요구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처음부터 재일조선인에 대해 기민[백성을 버리는] 정책을 채택해 왔다. 그뿐 아니라 일본 정부와 결탁해 유학생을 정치범으로 구속하는 등 재일조선인 운동 탄압에 손을 빌려 줬다. 그리고 한일조약을 통해 재일조선인을 분단했다. 이런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사회 변혁의 뜻을 품은 이들은 한국 정부가 독도 문제를 ‘반일(反日)’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정치 도구로 삼는 것과는 달리, 연대의 대상으로 재일조선인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