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5∼6일 뉴욕에서 열린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의 결과를 보며 많은 사람들은 희망을 품었다. 심지어 “북미 수교 가능성은 99.999…퍼센트”(〈자주민보〉)라는 성급한 논평도 나왔다.

물론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의 결과는 미국이 북한 핵 위기 심화를 당분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줬다. 2003년 6자회담이 시작됐을 때보다 부시의 처지가 여러모로 나빠져서다. 이라크 전쟁은 늪에 빠졌고, 이 틈을 타 북한은 핵실험을 했다. 그래서 미국 지배계급 일부는 부시의 대외정책을 비난한다. 동북아에서 미국 패권도 그 때만 못하다. 이 때문에 6자회담에서 미국의 운신의 폭이 좁아진 건 사실이다.

2005년 9·19 공동선언을 파탄으로 몰고갔던 BDA(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의 북한 계좌 동결 해제 여부 문제도 방식이 어찌되든 해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크리스토퍼 힐은 “북미 양측이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만들어내기 위한 ‘메커니즘’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테러지원국

그러나 이번 회의는 2·13 합의의 진전된 측면을 담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불확실성도 반영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도 미국은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일단 덮으려 했지만 여전히 불씨로 이용할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크리스토퍼 힐은 “이 프로그램은 반드시 규명해 전모를 알아낼 것”이라고 다짐했고, 나아가 “북한이 이란과 미사일 기술 거래를 해” 온 것이 “정말 우려스럽다”고도 했다.

테러지원국 해제도 불투명하다.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과 테러지원국 해제의 관계를 둘러싸고 미국 지배계급 사이에서는 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북한이 집요하게 요구한 경수로 문제에서도 미국의 입장은 “북한이 비핵화를 달성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로 들어오면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미 수교 문제도 2·13합의 수준에서 논의됐다. 물론 “핵 폐기가 전제”된 것이어서 앞으로 가야 할 길은 한참 남았다. 크리스토퍼 힐은 이번 회의가 끝난 후 “핵을 가진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는 상상하기 힘들다”고 못박았다. 이는 미국의 전통적 입장으로, 북한과 언제나 갈등을 빚어 온 문제다.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와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가 파탄났던 과정을 애써 외면한 채 북미 수교를 낙관한다. 과거와 달리 2·13합의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어기고 대결적 자세로 회귀할 수 없도록 구조화”(〈진보정치〉313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6자회담이 처음 시작될 때도 나왔던 것이다.

제네바 기본합의와 북미공동코뮤니케 파탄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미 수교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원래 미국이 북한 핵을 문제 삼은 이유가 북한 핵 자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동북아 지역 패권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을 묶어둘 빌미로 북한 핵을 이용해 왔다. 그 때문에 미국은 북한을 무력으로 제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면적인 관계 정상화에 나서지도 않는 ‘현상 유지’를 추구해 왔다.

북한 관료도 미국의 북한 핵 정책이 실제로는 중국을 겨냥한다는 사실을 안다. 이번 회의에서 김계관은 “중국은 우리를 이용만 하려고 한다”며 중국을 비판했다. 북한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자신의 존재가 미국에 이익이 될 수도 있다며 은근히 몸값을 과시한 것이다.

설령 북한이 핵 시설·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해도 핵무기 폐기와 국교 정상화·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은 전혀 별개 문제일 수 있다.

한편, 미국은 북한이 바라는 대로 핵무기 폐기 전 관계정상화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경우에 따라 동아시아 열강은 이를 미국 패권의 약화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관계정상화 없는 핵무기 폐기는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 체제 보장(관계정상화) 자체가 자동으로 동북아시아 평화를 보장한다는 주장도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미국과 한국은 주한미군 철수 등의 과제가 평화협정의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일찌감치 못박아 놓았다. 미국은 군대 철수는커녕 주한·주일 미군 재편으로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미국·일본·중국, 심지어 한국도 모두 제국주의 경쟁 체제 속에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군비증강에 열을 올린다. 이것은 북한의 위협 때문이 아니다.

사실, 현재 북한이 원하는 것은 세계 체제 편입이지 변혁이 아니다. 따라서 동북아 주요 열강의 군비경쟁 폐지·핵무기 폐지·주한미군 철수 같은 과제는 오직 제국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으로만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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