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가 5월 24일에 개봉한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저임금 이주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Justice for Janitors(J4J : 청소부들에게 정의를) 캠페인에 근거했다.

주인공 마야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한 이주 노동자다. 이주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자신들에게 굴욕감을 주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관리자, 해고와 국외 추방 위협에 시달린다. 그러나 마야와 동료들이 J4J의 조직자 샘(아드리안 브로디 분)을 통해 노조에 가입하면서 이 모든 것들이 변한다.

켄 로치의 스타일대로 아드리안 브로디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여러 집회와 행진에 참여했고 노조 활동가들과 함께 지냈다. 실제로 J4J는 영화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미국 노동자들에게 승리를 안겨 준 실제 조직 방법들에 근거하고 있어 현실감 있다. 빌딩 청소 노동자들은 파티장에 침입해 사장들에게 ‘악덕사장 트로피'를 건네 준다. 활동가들은 사장들의 점심 식사를 방해하고 그들에게 공개적인 망신을 준다. 이 장면들은 통쾌하다. 그리고 행진과 시위는 시내 중심가의 빌딩 로비를 점거할 때 최고조에 이른다.

〈빵과 장미〉의 모든 논쟁들은 현실의 모순들을 보여 준다. 저임금 노동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노조의 하급 조직자와 노조 상층 관료 집단의 갈등, 일부 노동자들이 승진과 더 나은 대우를 약속하는 관리자에게 매수될 가능성, 파업 지속으로 발생하는 가족의 압력과 불안감, 그리고 그들이 행동에 나설 때 느끼는 노동자의 힘. 이처럼 〈빵과 장미〉에는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에서 볼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이 있다.

〈빵과 장미〉는 특히 비정규직·여성·미조직·이주 노동자 등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조직하고 싸워야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줄 것이다.

〈빵과 장미〉의 모델이 된 파업들

정건

비벌리힐스 서편, 작은 동산 위 마천루가 센추리시티다. 번쩍이는 대리석과 마호가니 가구들, 화려한 정장들 …. 영화 스타들이 그들의 에이전트와 함께 잡담하고 시간당 1천 달러짜리 변호사들과 소송을 꾸미는 미국 연예 산업의 일번지다. 바로 이 곳에서 12년 전 6월 이주 노동자 출신―대부분 맥시코와 엘살바도르―의 빌딩 청소부들이 파업, 행진, 농성, 연대를 통해 값진 승리를 쟁취했다. 1990년 6월 15일(이후 Justice for Janitors Day로 제정) 영화처럼 “Si, se puede!(그래, 우린 할 수 있어)” 미국 최초로 농장 노조를 세운 세자르 차베스와 동료들이 외쳐 유명해진 구호를 외치는 4백여 명의 J4J 회원들이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이 허가받은 행진 경로를 따라 비벌리힐스의 경계를 지날 무렵 폭동 진압 경찰이 들이닥쳐 곤봉 세례를 퍼부었다. 두개골이 파열되고 임신중인 노동자가 유산하는 등 피투성이가 된 노동자들 앞에서 경찰은 요란하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즐거워했다. 경찰 만행이 있었지만 파업은 노동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노동자들은 위축되지 않고 더 전투적이고 더 소란스럽게 항의했고 여론은 노동자들을 지지했다. 결국 센추리시티의 저명한 거주자들이 사장들에게 노조를 인정하라고 촉구하게 된 것이다. 이후 수년 동안 빌딩 청소, 호텔, 전기, 건설, 항만 노동자 들의 연대가 확산됐다. 이것을 가리켜 마이크 데이비스는 “미국의 노동이 다시 운동이 되었다”고 말했다. 2000년 4월에는 LA 전역에서 빌딩 청소 노동자들이 3주 동안 파업했다. 거리에서 수천 명이 요란한 카니발, 북을 울리는 행진, 게릴라 행동 들을 벌여 시간당 70센트의 임금 인상을 쟁취했다. 이들의 성공은 〈LA 위클리〉가 지적한대로 “LA를 개조”했다. 파업 노동자들이 대부분 여성이어서 “새천년의 새로운 여성운동”이란 찬사도 받았다. 노조들의 연대는 1940년대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1912년의 로렌스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빵과 장미” 구호는 1912년 메사추세츠 주 로렌스의 직물 노동자 파업에서 유래했다. 당시 파업에서 여성, 남성, 다양한 이민자 집단들은 놀라운 연대를 건설했다.

로렌스의 직물 산업 사장들은 주로 여성과 어린이 들을 고용했다. 사장들은 노동자들이 형편없는 보수를 받고도 저항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막기 위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민자들을 고용했다. 그러나 사장들의 계산은 틀렸다. 1912년 1월 2만 명의 노동자들이 30센트 임금 삭감에 맞서 파업했다. 노동자들은 작업장을 봉쇄했고 이 전술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수천 명의 파업 노동자들이 참가한 대중 집회에서 파업에 대한 질문과 결정이 이뤄졌다. 다른 언어를 쓰는 집단마다 대표자를 선출해 파업위원회를 구성했고 여성들도 선출됐다.

파업위원회는 6개의 물자 배급소와 11개의 급식소를 운영했다. 그리고 학교가 파업 노동자들의 자식들에게 부모들이 반미적 파업을 한다고 가르치자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은 아이들의 집회를 조직했다. 경찰과 회사측 깡패들의 위협 때문에 아이들이 위험해지자 전국에서 파업을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로렌스에 모여들어 파업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을 돌보았다.

제임스 오펜하이머가 이 노동자들의 배너에 적힌 구호에서 제목을 따와 파업 노동자들을 위한 “빵과 장미”라는 노래를 지었다.

고된 노동의 정신이 작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알았다. 그래, 우리는 빵을 위해 싸운다. 그러나 장미를 위해서도 싸운다.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할 때 더 위대한 날들이 오리라.

여성의 봉기는 인류의 봉기를 의미한다. 이제 노예도 게으름뱅이도 한 명의 안락을 위한 열 명도 없다. 그러나 삶의 영광을 누리며 : 빵과 장미, 빵과 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