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전 민주노동당 의정정책실장은 최근 인터넷 언론 〈레디앙〉에 기고한 글에서 차베스와 박정희가 “너무 닮았다”고 주장했다. 박정희가 조국 근대화와 경제 성장을 위해 양원제를 단원제로 바꾸고, 국민투표를 통해 의회를 무력화하고, 개헌을 통해 연임제를 폐지하고, 언론과 정치적 반대자를 억압한 것이 차베스의 “독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0년 미국 대선 때 부시가 고어보다 50만 표나 적게 얻고도 대통령직을 도둑질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양원제가 단원제보다 더 민주적이라고 볼 근거는 전혀 없다. 또, 차베스는 박정희와 달리 “의회를 무력화”하지 않았고(‘포고령 입법권’도 의회의 견제를 받게 돼 있다), 연임제도 폐지하지 않았고, 언론과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지도 않았다.

채진원 실장은 차베스의 “다수 독재”가 “포퓰리즘의 대표적인 타입으로 소수 독재만큼 위험하다”고 강변한다. 또, “민주주의는 단순히 양적인 ‘쪽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다양성의 표출과 … 토론과 공론장을 통한 질적인 숙의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수 독재”, “양적인 ‘쪽수’”가 민주주의의 요체임을 인정하지 않고 다양성과 토론을 얘기하는 것은 마치 소수파에게 특권이라도 있는 양 떼쓰는 아나키스트들의 태도이다. 그리고 〈조선일보〉의 용어법과 달리, 마르크스주의의 용어법에서 ‘포퓰리즘’은 대중 영합주의가 아니라 계급 동맹을 뜻한다. 그런데 차베스가 지배계급의 일부와 동맹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실, “다양성의 표출, 토론과 공론장을 통한 질적인 숙의와 합의”는 베네수엘라에서 만개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대중의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와 동원을 바탕으로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민주주의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한계를 강요하는 것은 차베스가 아니라 베네수엘라 지배계급과 미국 제국주의이다.

국민 다수의 의사를 거스른 채 민주주의를 억압한 박정희와 집권 이후 8년 동안 11차례 크고 작은 선거에서 국민 다수의 지지를 거듭거듭 확인한 차베스가 어떻게 비슷한가?

무엇보다, 박정희는 빈곤을 퇴치한답시고 노동자·농민 대중을 착취하고 억압해 자본을 축적하고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차베스는 무상의료·무상교육, 토지 개혁, 빈민 주거권 보장 등 노동자·농민·도시빈민의 생활조건을 향상시키는 진정한 사회 개혁 조처들을 시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빈곤을 끝장내는 방법은 빈민에게 권력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역설하며 민중 권력과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사회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차베스가 실시하는 조처들과 추구하는 목표는 한국의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도 박정희와 비슷하다고 말해야 하는가? 이렇게 형식적 유사성만을 앞세워 내용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형식주의적 사고의 전형이다.

민주노동당

채진원 실장은 또,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가 “포퓰리즘에 기초한 자원 민족주의와 친(親)시장경제에 가깝”고 “반미·반자본·반세계화는 과장된 레토릭[미사여구]”일 뿐이라고 깎아내린다.

그러나 차베스는 막대한 석유 판매 수입(收入)을 국내 경제 개발 재원으로만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쿠바와 볼리비아에 지원할 뿐 아니라 미국 빈민들에게도 싸게 제공하고 있다.

또, 비교우위나 국제경쟁력 같은 시장 논리와 이윤 지상주의에 근거한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 협정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와 공공성 추구를 통해 대중의 이익을 도모하는 대안 무역 체제(‘미주 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식 대안’, ALBA)를 추진하고 있다. ALBA가 한계가 있음에도 “친시장경제에 가까운” 것이 아님은 인정해야 공정한 평가일 것이다.

지난해 유엔 연설에서 그랬듯이 차베스는 미국 지배자들과 평범한 미국인들을 구분하고 후자를 지원과 연대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소박한 반미주의자가 아니라, 완전히 일관되진 못해도 국제주의를 실천하는 사회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다. 차베스는 스탈린에 맞서 혁명의 국제적 확산을 주장한 트로츠키가 옳았고, 자신은 트로츠키의 사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차베스는 2005년 1월 세계사회포럼(WSF)에서 “자본주의 안에서는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오직 사회주의로만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최근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지옥에 떨어지고 싶은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따라가면 된다. 우리는 여기 지상에 천국을 건설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주의를 추구한다.”

물론 차베스가 주창하는 사회주의의 상(像)이나 시장과 국가의 관계, 민중 권력과 기존 국가 권력의 관계 등에 모호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군사 쿠데타로 목숨을 잃을 뻔했고 자본가들의 경제적 사보타주로 정권이 날아갈 뻔한 위험과 시련을 무릅쓰면서도 지금까지 차베스가 실천해 온 바를 살펴볼 때 그의 말을 데마고기를 위한 레토릭으로만 보는 것은 지나친 폄훼이다.

선거 혁명

한편,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이 엮은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와 ‘새사연’ 연구원들이 쓴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는 차베스나 ‘볼리바르 식 혁명’의 성과와 의의를 흠뻑 공감한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할 만하다.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이 신자유주의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시장의 자유와 기업 이윤 추구에 방해가 되는 것을 모조리 제거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시대에 베네수엘라의 경험은 신자유주의가 아닌 대안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몽상이 아님을 웅변한다.

또, 차베스의 ‘볼리바르 식 혁명’과 ‘21세기 사회주의’는 제국주의·신자유주의·자본주의에 반대할 뿐 아니라 그 대안으로 분명하게 사회주의를 내세운다는 점에서도 대안세계화 운동의 일보 전진을 위한 중대한 이정표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열정적인 대중 동원과 참여를 바탕으로 사회 변혁을 추구하며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현실성을 보여 주는 베네수엘라의 경험은 정말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이 책들, 특히 ‘차베스의 상상력, 21세기 혁명의 방식’이라는 부제가 붙은 새사연의 책은 베네수엘라의 사례와 경험을 자세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한국 사회에 주는 정치적 함의를 나름대로 찾아내고 이를 한국의 현실에 적용하려 애쓴 노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정치적 결론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다소 부정확한 교훈들을 제시하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예컨대, 제헌의회 전술이나 선거 혁명 노선이 그렇다. 두 책의 저자들은, 조금씩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차베스가 제헌의회를 통해 사회주의의 법률적 기초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정치적 세력 관계를 일거에 바꿔 놓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99년 제정된 새 헌법은 노동권과 사회 공공성 보장뿐 아니라 사유재산과 자유시장도 옹호하는 등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모순은 적대적 계급세력 간의 불가피한 타협을 반영한다.

또, 새 헌법에 따라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차베스 지지파가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지만, 차베스는 2001년 말 49개 개혁 입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하고 포고령 입법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었다. 선출되지 않은 진정한 권력, 지배계급의 권력이 국회 밖에서 강력하게 버티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결국 새 헌법과 새 선거 실시에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세력 관계 때문에 급기야 2002년 4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차베스는 생명의 기로에 서기까지 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베네수엘라의 경험은 의회나 대통령 선거 승리만으로는 사회 변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즉, “선거 혁명”의 한계를 보여 준 것이다.

또, 이 책들은 베네수엘라에서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결정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한다. 집권 당시 차베스의 정치는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모종의 ‘제3의 길’ 개념이었다가 2005년 1월이 돼서야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했는데도, 이 책들을 보면 차베스가 처음부터 분명한 사회주의 정치를 추구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경험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자본주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시장과 자본을 철폐하거나 적대시하지 않고 새로운 체제 내로 끌어들이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시장사회주의적’ 주장도 이론의 여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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