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는 국제적으로 피억압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반개혁’이 절대 질서처럼 돼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볼리바르 식 혁명’이 대안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베네수엘라의 실험이 주목받는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중요한 참조 사례가 되는 듯하다.

“베네수엘라 식 선거연합을 벤치마킹”해 진보진영 선거연합을 결성하자는 주장도 있다(2월 21일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가 주최한 ‘민주진보진영의 2007년 대선 전략’ 토론회). 이번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선거 돌파구를 내기 위해 적극 고려해 봄직하다.

1998년 말 주지사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베네수엘라 진보진영은 선거연합 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사회주의운동당’(MAS)과 ‘만민을 위한 조국’(PPT)은 분열까지 했다. 선거 공동 대응이 자신의 급진적 강령을 낮추고 조직의 독자성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또, 차베스에 대한 정치적 의심도 상당히 컸다.

그러나 마침내 ‘제5공화국운동’, MAS, PPT, 공산당 등이 참가한 ‘애국의 기둥’이 결성됐다. 절박한 단결 요구 때문에 ‘애국의 기둥’ 참가 단체들은 11월 주지사 선거에서 소속 정당에 대한 충성심을 접고 지역구마다 단일 후보를 내기로 합의했다. 12월 대선에서는 차베스를 진보진영 단일 후보로 내세웠다.

그 결과, 1958년 이래 베네수엘라를 독점해 지배해 온 민주행동당-기독교사회당 양당 체제가 무너졌다.

“무장 혁명의 시대”는 지났는가

선거를 통해 집권한 차베스 정권의 개혁 실험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베네수엘라의 “선거 혁명”에 주목한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선거를 통한 혁명적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차베스의 실험은 생생하게 증언해 준다”고 말했다. “무장 혁명의 시대는 지났”고 “선거 혁명이 옳은 노선”이라는 것이다.

물론 베네수엘라에서는 진정한 개혁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개혁들은 게릴라 투쟁이라는 뜻에서 “무장 혁명”에 의해 획득된 것은 아니다. 무장 게릴라라는 소수에 의한 ‘혁명’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아래로부터의 혁명 개념과 관계가 없다.

그러나 개혁은 소수(대략 25퍼센트)에게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선거 혁명”이 고전적인 의미의 혁명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은 여전히 건재하다. 베네비전과 글로보비전 같은 미디어 제국들의 건재가 이를 증명한다. 기존 국가 기구들이 대부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국가 기구는 대통령의 요구를 무시하고 개혁에 브레이크를 건다. 베네수엘라 “혁명” 과정의 모순이자 “선거를 통한 혁명적 전환”이 산통을 겪는 까닭이다.

세 번에 걸친 차베스 제거 기도가 연거푸 실패했고 지난해 말 대선에서도 차베스에게 참패했기 때문에 부르주아 야당들은 당분간 찌그러져 있을 듯하다. 그럼에도 베네수엘라 부르주아 계급 자체는 거의 손상되지 않았다. 각종 개혁 조처들이 석유 수입(收入)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그들의 부(富)도 고스란히 보전될 뿐 아니라 심지어 더 증대하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도시빈민·농민이 부르주아지한테서 양보를 얻어내려면 여전히 투쟁해야 한다. 대중 운동이 강력하게 전진한다면, 혼란에 빠져 있는 국가 기구와 재앙적인 오판 때문에 주요 정치적 전투들에서 패배한 부르주아지한테서 중요한 양보를 따낼 수 있다.

그러나 혁명은 자본주의적 기존 국가 기구에 의지해 완수될 수 없다. 국가 기구는 기껏해야 건성으로 개혁을 실행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개혁에 저항할 것이다.

일부 좌파 장관들은 노동자와 농민의 요구에 양보하곤 했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탄압이 있었다. 예컨대, 2005년 11월 다국적기업들에 맞서 투쟁하고 있던 금광 광부들 중 14명이 무장갱단에게 살해당했다. 광부들은 대형 차베스 사진을 들고 행진했다. 그러자 군대 ― 이들도 차베스 지지자들일 것이다 ― 가 광부들을 공격했다.

20세기 노동자 운동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개혁과 혁명에 관한 논쟁이 베네수엘라 대중 운동 안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은 이런 모순 때문이다.

‘볼리바르 식 혁명’의 두 구성 요소

“선거 혁명”을 강조하는 것은 ‘볼리바르 식 혁명’을 이루는 상이한 두 구성 요소 중 한 측면에 주목하는 것이다. 즉, 계몽된 상층 개혁가들이 대중에 개혁을 하사한다는 관점을 지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급진화와 ‘볼리바르 식 혁명’에는 상이한 두 구성 요소가 존재한다. 하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선 노동자·도시빈민·농민·원주민의 대중 운동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 자본주의 발전 같은 포퓰리스트 정책을 지지하는 지식인과 중간계급(일부 장교들을 포함해)이 초점이다. 이들은 미국 제국주의에 도전한다. 그와 동시에, 대중 운동을 통제의 대상으로 여긴다.

두 구성 요소는 서로 영향을 미친다. 중간계급 정치인이나 장교들이 주도하는 반제국주의적 도전은 대중 저항을 고무했다. 차베스 전복 기도에 맞서 대중이 즉각 방어 운동에 나선 것이 그 예다.

그럼에도 사태전개의 논리는 두 구성 요소를 상이한 방향으로 몰고간다. 국민 경제 발전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제국주의와 토착 부르주아지의 단절을 바란다. 또, 개발에 필요한 잉여 축적의 문제와 대면한다. 이들에게 대중의 경제적 요구는 제국주의의 압력만큼이나 큰 장애물이 된다.

한때 정부 차관을 지냈던 롤랑 데니스는 이렇게 말했다. “차베스는 사회주의를 우리가 건설해야 할 사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의 적들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적은 언제나 제국주의이지, 보통 국민 부르주아지를 공격하지 않는다.”

이것은 “혁명” 과정을 방해하는 정책이다.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위해 고안된 기존 국가 기구를 통해 자본주의와 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기껏해야 불완전한 ‘혼합경제’를 만들 것이다. 그리 되면 부자들은 더 부유해질 것이고, 노동자와 빈민은 세계 유가가 하락할 때까지 각종 사회 개혁 프로그램에 의지해 연명하게 될 것이다.

물론 차베스의 개혁은 대중 의식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대중 스스로 자주적인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장차 옛 국가와 자본의 영향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대항 권력을 건설해야 한다.

베네수엘라의 “선거 혁명”이 과거 제3세계 급진적 민족주의 정권들의 실패나 칠레 아옌데 정권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대중이 단지 민족주의 지도자들의 팬클럽에 머물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미국 제국주의는 지난 6년 동안 자신의 뒷마당인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진 투쟁의 파고에 깜짝 놀랐다. 이라크 수렁으로 말미암아 힘이 약해진 탓에 한동안 군사적 개입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사태를 수수방관하며 자신의 영향력이 계속 약해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반동 세력을 다시 조직할 것이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라틴아메리카에서 대중 반란의 물결이 일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베네수엘라의 “선거 혁명”과 혁명 담론은 진정한 혁명으로 전환해야 한다.

📱 스마트폰 앱으로 〈노동자 연대〉를 만나 보세요!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아이폰 앱 다운로드

📮 매일 아침 이메일로 〈노동자 연대〉를 구독하세요! 아이폰 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