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1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은 고이즈미

 

이정구

일본 총리 고이즈미가 취임 1주년을 맞이해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4월 10일 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인 렌고(聯合)가 조직한 고용 안정 보장을 위한 집회에서 고이즈미 정부 타도 구호가 나왔다. 4월 18일 후생노동성 앞에서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고이즈미 개혁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관례인 “춘투”에서 노동자들이 불만을 드러내고 고이즈미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래 일본의 노동 관행은 노동자들의 전투성에 대한 사장들의 양보로 확립된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였다. 그런데 10년 불황의 여파로 대량 해고가 새로운 관행이 되고 있다. 닛산자동차는 1999년 이래로 2만 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일본의 실업률은 5퍼센트를 웃돌고 있다. 이 수치는 1953년 이래 가장 높은 것이다.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0.4퍼센트였다. 올해도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1990년대 초 거품의 붕괴 이후 금융권의 부실채권 규모가 계속 누적되고 있다. 지금 부실채권 규모는 40조 엔에 이른다. 부도 기업 수도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선뜻 부실채권을 정리하지도 못한다. 부실채권을 정리하면 도산업체가 증가하고 금융 공황이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이즈미의 구조조정이 계속 지지부진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2월 16일 “현재 일본의 불황은 1930년대의 미국 대공황 때보다도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전 경제기획청 장관 사카이야(堺屋太一)는 “일본이 제2의 아르헨티나가 될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고이즈미는 일본 경제의 구조조정을 약속하고 집권했다. 그는 취임하면서 “성역 없는 구조개혁”을 외쳤지만 그의 말은 공염불이 되고 있다. 국영기업 사유화나 우정(우체국)사업 개방이 국회 족의원(族議員 : 특정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을 지칭)들의 반발로 한 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외무부 개혁을 표방했던 다나카 마키코 외상은 관료들의 반발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취임 초 90퍼센트에 이르던 고이즈미 지지율은 지금은 40퍼센트대로 추락했다. 신용평가 회사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일본의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한 것은 고이즈미 시장 개혁에 대한 국제 자본가들의 신뢰 저하를 반영한다.

유사법제 3개 법안고이즈미의 지지율 하락은 4월 28일 보궐선거에서도 드러났다. 세 군데 선거에서 자민당은 참패는 모면했다. 그러나 자민당이 강세인 니가타현 참의원 선거와 도쿠시마현 지사 선거에서 자민당은 패배했다.

장기적인 경제 침체가 일본 사회를 양극화시키고 있다. 노동자들이 고이즈미 반대를 외치며 무대의 전면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는 반면 지배계급은 더욱 우경화하고 있다.

고이즈미는 작년에 이어 올 4월 21일에도 총리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또, 4월 29일에는 동티모르에 파견된 평화유지군(PKO)을 방문하여 병사들을 위무했다. 지금 일본은 유사법제(有事法制) 3개 법안(무력공격사태법안, 자위대법 개정안, 안보회의 설치법 개정안)을 두고 일대 격전이 벌어질 조짐이다. 일본은 1999년 주변사태법을 통해 유사시에 한반도나 대만 등 주변국에 개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 후속판인 유사법제는 “무력 공격이 발생했거나 예측되는 사태”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중국이나 북한 같은 나라를 겨냥하고 있다. 더욱이 이 법은 유사시 총리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해 국가 총동원 체제를 구축할 수 있어서 언론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할 여지가 많다. 실제로 지금 후쿠다 관방장관은 공공 복지를 빌미로 유사법제를 반대하는 집회나 보도 등을 금지하려 한다.

그러나 침략 전쟁 의도가 담긴 유사법제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다.

지난 4월 19일 히비고쿠 야외음악당에서 20개 노조의 조합원을 포함해 5천 명이 참여한 ‘STOP! 유사법제 4·19 대집회’가 열렸다. 또, 4월 28일에는 일본 방위청 앞에서 반전 시위가 벌어졌다. 육해공 교통운송 관련 14개 노조는 5월 20일에 오사카 센죠 공원에서 개최할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유사법제 반대 투쟁의 절정은 5월 24일 도쿄 메이지 공원에서 열릴 ‘STOP 유사법제’ 대집회와 5월 26일 국회 앞에서 열릴 항의 시위다. 지난 4월 19일 집회 때의 참가 단체(종교 단체와 시민단체 그리고 육해공항만노조 20개 단체, 전노협, 전노련, 전일본교직원조합 등 노조 단체)가 5월 24일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메이 데이에 일본 렌고와 전국노동조합총연합(전노련)이 주최한  전국 450여 개 지역  집회에 70여만 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전노련은 8만 명이 모인 도쿄 중앙공원 집회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정권을 맡을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경제 침체와 이로 인한 계급 갈등의 심화, 즉 지배자들의 노동자 공격과 군국주의화 그리고 이에 맞서는 노동자 저항은 일본에서도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적 좌파에게도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