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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이주노동자 선별 ‘합법화’ 방안:
단속을 중단하고 모든 이주노동자를 전면 합법화하라!

지난 3월 30일 법무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선별 ‘합법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법무부가 이런 안을 내놓은 것은 그동안 고수해 온 단속추방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다. 법무부는 2007년까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를 4만 명까지 줄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으나 지금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는 21만 명에 육박한다.

정부는 2004~2006년까지 9만 1천6백49명을 단속해 7만 5천9백 명을 강제 추방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죽었고, 여수 ‘보호소’ 화재 참사는 정부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참혹하게 보여 줬다.

정부는 여수 화재 참사로 여론의 거센 비난과 항의에 직면했다. 전국의 80여 개 단체가 항의 운동을 벌였다.

국제적 항의도 이어졌다. 미국·일본·홍콩·네덜란드 등 17개 해외 단체들이 한국 정부를 규탄했다. 3월 30일에 열린 유럽 미등록 이주노동자 운동 단체 총회 때 한국 정부의 야만적 정책을 알리는 캠페인도 있었다. 한국 정부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망신을 당했고,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노무현에게 항의서한을 보냈다.

이런 항의 때문에 법무부는 서둘러 매우 미진하나마 선별 ‘합법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이다. 사실 지난해부터 법무부는 단속 정책만으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름의 방안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진지한 시도가 아니었고, 단속 정책 중단을 뜻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부가 압력에 밀려 이런 안이라도 내놓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운동이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의 내용과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

책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이 필요해 이주노동자들을 대거 받아들여 놓고 정작 이들의 권리는 모두 부정해 왔다. 이것이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의 핵심이다.

1990년대 초반 정부는 입국 규제를 대폭 완화해 이주노동자들이 관광 비자 등으로 들어와 취업하도록 했다. 그 후 정부가 도입한 외국 노동력 수입 제도인 산업연수제, 고용허가제 모두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인정하지 않거나 사실상 행사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정책들 때문에 한국 경제의 맨 밑바닥을 일궈 온 이주노동자들은 온갖 차별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따라서 합법화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희생해 온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돌려주라는 정당한 요구다. 이것은 모든 이주노동자를 조건 없이 합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수년 간 지속된 단속에 시달리던 이주노동자들은 법무부의 ‘합법화’ 방안이 나오자 불안한 신분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법무부는 현재 고용허가제에 따라 인력송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9개 국가(필리핀·베트남·태국·몽골·우즈베키스탄·인도네시아·파키스탄·스리랑카·캄보디아)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전체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34.7퍼센트)들을 출국시킨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재입국을 허용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지난 2003년에 있은 선별 ‘합법화’의 재판이다. ‘선별’은 이주노동자들을 분열시킬 것이다. 대상에서 제외되는 이주노동자들은 커다란 절망을 맛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외노협과 같은 이주노동자 운동 내 일부 단체들이 이 방안을 현실적인 방안이라며 환영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출국 후 재입국’ 방식도 문제다. 지난 2003년에도 이 말을 믿고 출국했다가 들어오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이 1만 6천 명이나 된다. 이주노동자들은 재입국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출입국 경비뿐 아니라 출국 후에 현지 사정에 따라 브로커 비용 등을 마련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현 고용허가제로 이들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것도 문제다. 고용허가제는 독소조항이 많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계속 양산하고 있다. 올해 유엔 이주민 특별 보고관도 '단기간 체류 허용(3년)', '1년 단위 고용주와의 재계약 의무', '직장 이동 금지'같은 조항들이 문제라며 고용허가제를 개정하라고 한 바 있다.

이 점에서 [법무부 방안으로] “신분의 약점 때문에 끊임없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현실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외노협 이철승 목사의 논평은 환상을 부추기는 것이다. 우리 운동은 전체 이주노동자들의 단결과 권리 옹호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법무부에게 현행법 내에서 전면 합법화가 어렵다면 필요한 법을 개정하거나 신설하라고 요구하면서 싸워야 한다. 이번 여수 참사 항의 운동의 핵심 사항이었던 단속 중단과 외국인 수용소 폐쇄 운동과 함께 조건 없는 전면 합법화 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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